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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대에 걸친 스승과 제자가 만나 담소를 나누고 있다. 사진은 순서대로 어곡초 이춘화 교사, 보광중 이정호 교장, 양산초 양영진 교사의 모습.
ⓒ 엄아현 기자
학창 시절 생활의 좌표가 되었던 스승. '스승'이라는 단어는 '부모'만큼이나 가슴 뭉클한 감동과 추억을 담고 있다. 일반인들도 그러할진대 교직에 몸담고 있는 교사들이 느끼는 스승의 의미는 분명 남다를 것이다.

교직 생활이 힘들 때마다 스승을 향한 존경심을 되뇌며 백묵을 다시금 손에 쥔다는 그들. 스승의 날을 맞아 3대에 걸쳐 서로에게 스승이 되어준 교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30여년간 한 학교에서 5천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보광중 이정호(56세) 교장, 이정호 교장의 제자이면서 양영진 교사의 스승이기도 한 어곡초 이춘화(44세) 교사, 그리고 두 사람 모두의 제자인 양산초 양영진(29세) 교사.

이들이 스승의 날을 5일 앞둔 지난 목요일(10일) 보광중 운동장에서 모였다. 이춘화 교사와 양영진 교사가 초등학교 수업을 마친 뒤 이정호 교장을 찾아간 것. 5월 햇살이 따뜻한 오후 시간 나눠진 스승과 교사의 만남, 이들이 나누는 담소를 살짝 엿들어 본다.

# 만남

이정호 교장 : 아이고, 춘화, 영진이 웬일이야? 스승의 날이라고 이렇게 찾아온 거야? 행사 때나 연수할 때 자주 보는데 번거롭게 먼 길을 또 왔어? 아무튼 너무 반갑네, 반가워.

이춘화 교사 : 영진이가 카네이션 사들고 저희 학교로 왔지 뭐예요? 저도 갑자기 선생님이 뵙고 싶어서 이렇게 영진이랑 같이 왔어요. 오랜만에 모교도 너무 보고 싶었구요.

양영진 교사 : 선생님, 안녕하셨어요? 여전히 건강해 보이시네요. 이렇게 3대가 함께 모이니 정말 좋아요. 저는 선생님이 두 분이나 계셔서 조금 부담이 되지만요.(웃음)

# 꿈

이춘화 교사 : 선생님, 영진이가 고등학교 때도 꿈이 카센터 사장이라고 했어요? 초등학교 때 자기는 꼭 카센터 사장이 돼서 돈 많이 벌어 부자될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는데. 이렇게 교사가 됐네요.

이정호 교장 : 춘화도 꿈이 교사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맞다. 기억난다. 멋진 여성 군인이 되고 싶다고 그랬지. 그래도 대학은 꼭 교대를 가야 한다며 고3때 공부 열심히 했잖아.

양영진 교사 : 와~ 진짜요? 이춘화 선생님 꿈이 여군이셨어요? 하긴 선생님 성격이 딱 여군 감이시긴 해요.

# 추억

이춘화 교사 : 학교가 참 많이 변한 것 같아요. 제가 고3때니깐 82년도쯤이었나요? 그때는 정말 앞뒤가 다 논밭이라서 학교 주변이 허허벌판이었는데. 선생님, 기억나세요? 선생님 당직이셨을 때 공부 잘하고 있나 확인하신다고 밤 11시에 일일이 애들 집을 방문하셨잖아요. 우리는 선생님 당직 때만 되면 얼마나 긴장했었는데요.

이정호 교장 : 하하. 그랬지. 그때 자다가 잠옷 거꾸로 입고 뛰쳐 나온 녀석도 많았지. 특히 너희 5회 졸업생들이 정말 짓궂었지. 신혼집에 와서 밥 달라고 막 조르는데 집사람한테 미안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지. 그래도 30년 교직생활 하면서 그 시절이 가장 즐겁고 행복했었던 것 같아.

양영진 교사: 제가 초등학교 때도 이춘화 선생님이 초임지 첫 담임이셨어요. 그때 운전면허를 막 따셨는데 제가 태워달라고 조르는 바람에 고생 많이 하셨다고 지금까지 구박하세요. 그렇죠? 선생님~

# 잊혀지는 스승의 날

양영진 교사 : 요즘 스승의 날 휴교하는 학교가 너무 많아요. 제가 이정호 선생님께, 그리고 이춘화 선생님께 스승의 날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부르며 어린 마음에 고마움을 전했던 그 추억이 이제는 없어지는 건가요? 정말 안타까워요.

이춘화 교사 : 학교는 단순히 아이들에게 지식 전달만 하는 곳이 아니잖아. 특히 초등학교는 보육 기능도 함께 하는데, 스승의 날 휴교를 해버리면 맞벌이 학부모들은 당장 아이 점심 고민도 해야 해요. 몇몇 교사들의 불순한 행동을 마치 모든 교사들의 문제인 양 침소봉대해서 해석하는 것이 큰 문제인 것 같아.

이정호 교장 : 예전에는 자기집 감나무에 열린 감을 가지 채 꺾어 와서는 스승의 날 선물이라고 주곤 했지. 그러면 교실 뒤에 걸어 놓고 홍시가 되면 반 아이들이랑 다같이 맛있게 먹었는데. 너희는 그런 살갑고 아기자기한 추억이 없겠구나. 시대가 변한다고 사제지간의 정이 변하는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 힘

이춘화 교사 : 선생님, 지난해에 교육상 받으셨을 때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해요. 양산이 좋아, 보광중·고가 좋아 30여년 교육자의 길을 한결같이 이곳에서만 걸어오셨으니 선생님이 바로 양산의 스승이세요. 저도 양산에서 끝까지 교직생활을 하고 싶어요. 그렇게 하도록 노력도 할 거구요.

양영진 교사 : 저 역시도 제 고향 양산에서 두 분 선생님처럼 오래도록 생활하고 싶어요. 이곳에서 교직생활을 하고 있으면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기거든요. 나에게는 든든한 후원자와 버팀목이 되어 주실 두 분 선생님이 계시다는 생각 때문에요. 보이지 않는 힘이 바로 이런 것인가 봐요.

이정호 교장 : 그래, 내 제자들이 교사가 되고, 또 지역에서 큰 인물이 되는 모습을 30년간 지켜봐왔지. 내 인생의 모든 추억이 이곳에 있는데 내가 어떻게 떠날 수 있겠니. 정년퇴임하는 그날까지 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거야. 오늘 찾아와 줘서 너무 고맙고 앞으로도 자주 보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자. 알았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양산시민신문 2007년 5월 15일(주간 제182호) 스승의 날 특집면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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