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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연예인들의 대부업 광고 출연, 광고 로그송의 부각 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유명연예인들의 대부업 광고 출연, 광고 로그송의 부각 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 러시앤캐시
한 가지 신기한 것이 있다면, 그 광고에 출연하는 연예인들의 유명도라고 해야겠다. 굳이 그 광고에 출연하지 않아도 이미 많은 돈을 벌었거나 명성을 누리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대중에게 보이는 이미지와 인기로 먹고 사는 그들, 왜 그런 선택을 한 것일까?

물론 보통의 광고보다 더 많은 액수의 광고출연료를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하루 이틀 연예활동을 할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한순간의 고액 출연료에 쌓아놓은 이미지를 맡긴다는 사실이 석연치 않기도 하다.

특히나 그들 중에는 한미FTA 협상을 계기로 스크린쿼터를 지키기 위해 다양한 집회활동을 벌이며 스크린쿼터 유지의 명분을 호소하던 영화배우도 있어 필자의 의문은 더욱 커졌다. 그는 그 광고 출연을 계기로, 그 열정적인 활동의 설득력을 한순간에 잃고 말았다.

아무리 옳고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한다 해도, '사채광고' 출연 사실 그 자체만으로 대중은 그를 신뢰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연예인에게도 '정치적 관리'가 필요한 것이다.

국회의사당에서 하는 것만이 정치가 아니다. 본인의 처신이나 위치 설정, 표정 관리도 엄연히 정치다. 이미지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라면, 기본적인 정치적 관리는 늘 필요한 법이다.

어쨌든, 유명연예인들을 대거 동원한 광고들이 브라운관을 타고 시청자를 공략하면서, 대부업 광고는 이제 일상적인 것으로 자리잡은 듯하다. 그런 부분을 생각하다 보니, 드라마 <쩐의 전쟁>의 등장은 타이밍이 제법 절묘했다는 것을 느낀다.

그저 폭력배들이 채무자의 집으로 쳐들어가 집기를 부수는 이미지만 아련하게 다가오는 사채업. <쩐의 전쟁>은 그 모든 것을 보여줄 자세를 갖추는 듯하다.

'폭력'이라는 키워드, '본능'으로 바뀌다

사실 필자 개인적으로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어, 재무관리가 그다지 튼튼한 편은 못된다. 동전 한 닢조차 없어 배고픔을 그냥 이겨 내려고 노력했던 시절도 있었으며, 가까운 이들에게 돈을 빌려가면서 허덕이던 때도 있었다.

그런 반면, 필자 자신도 돈을 빌려줬다가 사실상 '떼먹힌' 기억도 있다. 돈이란 원래 돌고 도는 것. 필자는 그런 경험을 통해 그 진리를 깨달았다.

"카드빚 내지 마라", 만화에서의 강렬한 장면이 적절하게 각색됐다.
"카드빚 내지 마라", 만화에서의 강렬한 장면이 적절하게 각색됐다. ⓒ SBS
하지만, 때로는 '돌고 도는 것'이라는 진리가 먹히지 않을 때도 많다. 돈이 너무 많아 주체 못하는 사람의 지하금고에서 잠자고 있을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도 있을 것이며, 거액의 빚에 시달리지만, 수단과 방법을 다 해도 동전 한 닢 얻어올 곳이 없어 '막장'에 내몰린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만화 <쩐의 전쟁>을 보면, 아버지의 카드빚과 사채 빚에 짓눌린 '금나라(박신양 분)'가 그 말 많고 탈 많은 돈 때문에 어떤 여정을 겪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다소 극단적이지만, 생생한 면도 있다. 돈에 얽힌 살인 음모도 나오며, 거기에 엮여져 꼼짝없이 교도소로 가는 금나라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지난 16일부터 방영되는 드라마판 <쩐의 전쟁>은 '드라마'이기 때문에 그 인상적인 여정을 어떻게 표현할지 의문으로 남았던 드라마였다. 하지만 탁월하게 각색한 것 같다. 신용카드를 날카롭게 갈아 그것을 도구 삼아 자살한 아버지의 처절함도 적절하게 표현됐다는 사실이 꽤 놀라웠다.

그 탁월한 각색은, 만화에서 등장하는 그 폭력적인 장면들을 인간 본연의 깊숙한 심리를 드러내는 장면으로 전환하면서 빛을 발한다.

인간은 배가 고프면 못할게 없는 동물이다. 그리고 그 배고픔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바로 '돈'이다. 돈은 우리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
인간은 배가 고프면 못할게 없는 동물이다. 그리고 그 배고픔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바로 '돈'이다. 돈은 우리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 ⓒ SBS
돈은 당연히 없고, 아무리 생각해도 먹을 것 하나 얻어먹을 길이 없다면, 길에 버려진 상한 음식이라도 주워 먹는 것이 인간이란 동물이다. '있을 때'는 한껏 폼을 잡지만, '없을 때'는 처절해지는 동물이 인간이다.

<쩐의 전쟁>은 그렇듯 '폭력'이라는 키워드를 '본능'으로 바꿔버린다. 너무나도 배가 고픈 나머지 남이 먹던 음식도 게걸스럽게 먹어대며, 쓰레기통도 들춰보게 된다.

살인음모 장면보다는 그런 장면들이 더 현실적인 측면이 강하다. 안 그래도 박신양의 물 만난 연기에 힘입어 그 장면은 누리꾼 사이에서 화제가 된 듯하다.

충격적인가? 물론 그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도 있다. '돈'의 파도에 휩쓸리면 누구라도 그렇게 될 수 있다. 돈은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전설적인 사채업자 '독고철(신구)'은 강조한다. "돈에는 인간이 숨어있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돈에는 인간의 처절함과 적나라한 본능이 숨어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돈이 심술을 부리면, 인간은 그 처절함과 적나라함을 미친 듯이 드러낸다. "나는 서류가 아닌, 인간 그 자체를 보며 돈을 빌려준다"는 독고철의 한 마디가 그래서 무게 있게 다가온다.

베일 속에 가려진 사채업의 이면

일본만화 <사채꾼 우시지마>를 봤던 만화 독자라면, '머리에 피도 안마를 나이(?)에 불과한' 사채꾼 '우시지마'의 항변을 기억한다. "모르는 소리 하지 마라. 우리는 채무자가 더 무섭다."

만화 <쩐의 전쟁>에서 '금나라'가 본격적으로 사채업을 하면서 독자에게 전달해주는 이야기도 그와 비슷하다. "돈 받을 놈은 돈 줄 놈보다 배의 노력을 해야 한다."

'독고철'이 가르쳐주는 사채업의 비결도 사실 그 부분에 포인트가 맞춰져 있다. 인간의 무의식적인 심리도 한눈에 파악할 줄 알아야 하며, 돈을 받기 위해서라면 쪽팔림 같은 느낌은 아예 지우고 무슨 짓이라도 해야 한다.

드라마판이 그리는 금나라의 '수습 사채업자 시절'은 시작에 불과하다. 만화에서는 더 기막힌 장면들도 많았다.

<쩐의 전쟁>이 그리는 사채업의 '고단함(?)'은 어떻게 보면 사채업자들의 빛 좋은 개살구 같은 항변으로 보일 수도 있다.

돈? 그건 쪽팔림도 못느끼게 한다. 절실해지면, 쪽팔림 따위는 문제되지 않는다.
돈? 그건 쪽팔림도 못느끼게 한다. 절실해지면, 쪽팔림 따위는 문제되지 않는다. ⓒ SBS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돈이 그렇게 무서운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기 위한 장면이라고 본다. 생각해보자. 돈처럼 인간을 갈 데까지 보내버리는 물건은 단언컨대 있을 수 없다.

사채로 인해 평범한 일상이 송두리째 무너진 채, 피눈물을 흘리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반면에 치밀하게 머리를 굴려 안전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심지어는 그 무서운 사채업자들을 농락하며, 돈을 떼먹는 대담한 사람들도 일부 있다.

돈은 그렇듯 내면에 숨겨진 인간의 다양한 표정과 심리, 그리고 간의 크기를 드러내 주는 솔직한 물건이다. 돈은 힘이며, 힘이 내지르는 방향은 언제나 직선이다. 다만, 그 직선은 그 방향을 조절하는 사람의 마음가짐과 선악에 따라 얼마든지 도착지점을 달리할 수 있다.

돈 놓고 돈 먹는 세상, 우리는 그렇게 무서운 물건의 힘에 흠뻑 빠져 아옹다옹하는 것일 수도 있다.

드라마 <쩐의 전쟁>, 15세 이상의 시청자들이 시청할 수 있다는 등급 내에서는 정말 가보는 데까지 유감없이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유명연예인이 등장해 "무이자∼"를 외쳐도, 금세 무서운 돈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만큼, 딱 그만큼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쩐의전쟁#사채#무이자#대출광고#박신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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