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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 열린터
정도전과 홍길동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첩의 자식이 답이다. 조선시대 첩의 자식으로 태어나 산다는 것은 차별과 천대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한을 안고 사는 인생이었다. 그들을 일컬어 서얼이라고 했다.

서얼 출신으로 이름 석 자를 남긴 이들이 또 누가 있을까. <동의보감>을 지은 허준, 허균의 스승이었던 손곡 이달, 실학자로 이름을 남긴 유득공, 이덕무, 박제가 등이 있다. 차별을 넘어 이름 석 자를 남겼지만 이들은 늘 서얼이란 한을 안고 살았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처한 입장에 따라 달라진다. 양반으로 태어나 온갖 영화를 누리며 사는 이가 바라보는 세상과, 서얼로 태어나 자신의 뜻을 펼칠 기회조차 얻기 힘든 이가 바라보는 세상은 다를 수밖에 없다. 세상을 제 뜻대로 살아간 이들이 중심이 되어 쓴 역사가 있다면, 그렇지 못한 이들이 바라본 역사도 있다.

규장각 교리 성대중도 서얼 출신이었다. 영, 정조의 문예 부흥기를 맞아 서얼에게도 벼슬길이 열렸지만 차별은 여전했다. '임금보다 더 무서운 습속'이 서얼의 관직 진출을 막고 있었다. 벼슬길에 올라 규장각 교리가 되었지만 성대중의 눈에는 아직도 차별의 벽은 높기만 했다.

서얼 출신 성대중은 자신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이야기 <청성잡기>를 남겼다. 주류는 아니지만 목숨 다할 때까지 아등바등 살아갔던 이들의 생생한 삶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서얼인 성대중의 글을 읽다보면 주류에서 밀려나 서러운 이들의 거친 숨결, 시큼한 땀 냄새를 물씬 느낄 수 있다.

힘 있는 자들에 대한 통렬한 풍자

임금, 벼슬아치, 선비, 서얼, 노비, 백정, 기생, 열녀, 도둑, 건달, 중, 거지 등 성대중이 그려낸 인물은 다양하다. 이 다양한 인물 중에서 힘 있는 자들의 허위와 위선을 조롱하고, 힘 없어 수모를 당하며 사는 이들의 애환을 감싸려는 성대중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양반의 상투를 잡고 끌어올리려다 말고 종놈이 다시 내 마누라를 건드리겠는지를 다짐받는다. 아무 때나 종놈의 마누라를 겁탈하는 주인의 못된 행위를 꾸짖는 것이다.

개가죽 옷을 입고 동냥하는 중을 붙잡아 온갖 수모를 주던 권세가가 있었다. 권세가 앞에서 꼼짝 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던 중은 지나가던 개 앞에 다가가 기상천외한 행동을 보인다. 개 앞으로 다가가 절을 하고, 지나온 곳과 이름, 나이 등을 얘기하며 권세가 앞에서 굽실대며 했던 행동을 그대로 되풀이했다. 그 행위를 꾸짖는 권세가 앞에서 중은 이렇게 대답한다.

"개털을 빌린 자도 오히려 사람을 위압해 절을 하게 하는데, 개털을 본래 지니고 있는 분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제가 참으로 죄를 두려워하여 감히 절하지 않을 수 없었고, 또 늦게 절한 죄를 빈 것입니다."(24쪽)

나라에서 운영하는 용호영 악대를 불러 잔치를 벌이는 거지, 가장 천한 백정들을 두려워하는 양반, 남자도 무서워 벌벌 떠는 호랑이와 싸워 이긴 여자, 임금의 잘못을 꾸짖는 첩 등등 야유와 조롱, 풍자와 해학, 분노와 애환이 넘치는 이야기가 끝도 없이 펼쳐진다.

글로 그린 조선 후기 풍속화

성대중의 글을 읽다보면 조선 후기 생활풍속의 모습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장희빈의 당숙 장현이 북경에서 배워온 투전이 날 새는 줄도 모르고 널리 확산되어 관에서 단속하는 이야기, 가채, 만선 등의 머리 장식 이야기, 군적에 이름만 올려놓고 봉급만 타 먹던 월급 도둑 이야기 등 다양하다.

김홍도와 신윤복의 풍속화가 조선 후기 서민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림으로 묘사했다면 규장각 교리 성대중은 조선 후기 서민들의 생활과 풍속을 글을 통해 실감나게 묘사했다. 낮은 곳에서 힘겹게 사는 이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함께, 조선 후기 서민들의 서럽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를 주옥처럼 펼쳐 보여주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궁궐 밖의 역사/ 성대중 지음 / 박소동 엮음 / 13000원


궁궐 밖의 역사 - 규장각 교리 성대중이 쓴

성대중 지음, 박소동 엮음, 열린터(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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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밖의 역사#성대중#박소동#열린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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