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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불구 낙태 허용' 발언으로 논란이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 집행위원장이 <오마이뉴스>에 글을 보냈다. 이 글에서 박 집행위원장은 장애인 단체 활동가로서, '당신의 2세가 장애아라면, 자신있게 낳겠는가'(5월 17일자 기사)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편집자주>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 회원들이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이명박 전 서울시장 사무실을 점거한 채 "이 전 시장은 '장애아 낙태' 발언에 대해 사과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박준규 기자님. 쓰신 글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이렇게 답변을 드리는 것은, 이 글이 박 기자님께서 표현하신 '투쟁 아닌 투쟁을 하는 일부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책임이라 느꼈기 때문입니다.

박 기자님께서 장애인으로 살면서 받은 시선과 상처를 토대로 쓴 글에 대해 저도 같은 장애인으로서 그 마음을 일부나마 이해하고 공감합니다. 장애인으로 태어난 혹은 중도에 장애인이 된 어느 누가 당당하게 "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장애인이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저 역시 중도에 장애를 입었습니다. '인생 조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죽고 싶었고, 나 때문에 눈물로 세월을 보내는 부모님을 지켜보는 것 또한 큰 고통이었습니다. "내 2세가 나 같은 장애인이라면 솔직히 자신이 없다"는 박 기자님의 고백은 제 고백이기도 합니다.

'자신 없다'는 것은 장애인의 삶이 비장애인에 비해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이죠. 그 예가 바로 박 기자님이 표현한 '타인의 시선'이며, 그로 인한 상처일 것입니다. 저도 장애를 처음 입었을 때 그 시선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 줄 알았습니다. 질기게도 떨어지지 않는 구더기가 늘 몸에 붙어 기어 다니는 느낌이었습니다. 정말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었습니다.

어찌할 수 없는 세상의 멸시에서 비롯된 고통을 막는 방법은 스스로 죽음을 택하거나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것이겠지요. 그것이 바로 자살과 낙태로 표현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주변에서 '생명은 귀하고 삶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들 당사자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그것은 오롯이 그가 짊어지고 가야할 '천형'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명박씨,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권고 첫 대상자될 뻔

▲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과 장애인부모회 등 18개 장애인단체 소속 회원들은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이명박 전 서울시장 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전시장은 '장애아 낙태' 발언에 대해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사진은 이 전 시장 사무실 진입을 시도하는 회원들을 경찰이 막고 있는 모습.
ⓒ 오마이뉴스 남소연

그러나 박 기자님,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보십시오.

너무 고통스러워 '사느냐. 죽느냐'를 스스로 선택하는 문제와 이 사회가 '장애인'에 대한 낙태를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문제는 다른 차원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령 아이가 세상에 불구로서 태어난다든지, 이런 불가피한 낙태는 용납이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라는 이명박씨의 발언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이명박씨의 발언은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무지와 편견, 차별의 상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씨가 평범한 시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기에 가볍게 여기지 않고 엄중하게 책임을 묻고자 투쟁했습니다.

먼저 이씨의 '불구'에 대한 발언입니다. 그 단어는 병신, 애자, 절름발이 등과 같이 장애인을 비하하는 수많은 단어 중 하나입니다. 의식했든 하지 않았든, 이씨는 공개적으로 장애인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그 영향력은 대단합니다. 한 개인이 의식했든 하지 않았든, 장애인에 대한 무지와 편견은 박 기자님과 내가 느꼈던 '천형'과도 같았던 모멸의 시선으로 돌아왔습니다.

확대해석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얼마 전 제정된 '장애인차별금지법' 중 장애인에 대한 무의식적인 비하 발언이 난무하기에 이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만약 올해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실행됐다면, 아마 이씨는 제32조 3항에 의해 시정권고를 받을 제1호 대상자가 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불구라는 말로 장애인을 비하한 것에 대해 이씨는 사과문에서 장애인 비하발언이었다는 것을 정확히 말하지 않고 애매모호하게 넘어가 버렸습니다. 전혀 그 심각함을 느끼지 않았거나 인식조차 하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저는 그것이 장애인에 대한 이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라 생각합니다.

낙태 대상은 아이가 아니라 사회의 장애인 차별

다음은 장애인에 대한 낙태 문제입니다(일반적인 낙태에 대한 찬반논쟁은 아닙니다).

이씨는 낙태를 반대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외조항으로 불구에 대한 낙태를 인정했습니다. 문제가 되니까 현행 모자보건법에 따라 압축해 설명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있었다고 변명했습니다. 참으로 비겁한 변명이라 생각합니다.

장애인에 대한 낙태를 허용하는 것이 이씨의 생각이든, 모자보건법에 의한 어쩔 수 없는 변명이든, 그것은 이씨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이 사회 주류의 생각을 반영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낙태는 반대하지만 예외적으로 장애아에 대한 낙태를 허용한다는 것은 바로 장애인에 대한 사회구조적인 배제와 분리, 그로 인한 차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며, 강한 자만이 살아남은 약육강식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장애인 살육을 합법적으로 진행했던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역사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철저하게 우생학적으로 태아의 생존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장애를 안고 태어날 아이의 고통을 그 부모에게 모두 전가해버리고, 이에 대한 선택에서 조금 배려해준 것이 낙태를 허용한 것입니다.

사실상 장애아가 감당해야 할 고통은 자신의 장애 때문이 아니라 이 사회가 만들어 놓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로 인해 발생합니다. 결국 낙태돼야 될 대상은 뱃속에 있는 아이가 아니라 이 세상의 장애인에 대한 차별입니다.

장애인인 내가 투쟁하는 이유

▲ 박경석 집행위원장(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이종호
박 기자님, 투쟁하는 사람들에게 장애아를 낳아서 키워보겠다고 장담할 수 있는지 묻겠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어느 누가 자신 있게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저도 장담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씨처럼 권력과 재산이 두둑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몸뚱어리 하나 상품으로 팔아먹고 살아야 하는 가진 것 없는 이들에게 그것은 더욱 어렵고 힘든 질문이겠지요. 그 고통의 무게가 만만치 않을 것은 분명하니까요.

그러나 한 가지는 장담할 수 있습니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고통 없는 삶은 누구에게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 고통의 무게가 이기지 못할 만큼 버거울지라도, 그 고통으로 인해 삶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장애인으로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기에 고통스럽지만 참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사회적 차별에 대해서는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바꾸고 싶습니다. 그것이 제가 투쟁하는 이유입니다.

박 기자님, 서로 방식은 달라도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

#박경석#이명박#낙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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