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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혹의 어부 권태환씨.
ⓒ 김정혜
▲ 미리 쳐놓은 그물을 걷어 올리는 모습.
ⓒ 김정혜

이 세상 어느 누구에게나 '하루'라는 시간은 공평하다. 돈을 많이 가졌다 하여 또는 큰 권력을 가졌다 하여 덤으로 몇 시간 더 얹어줄 수도 없는 것이 바로 '하루'라는 시간이다.

그러나 그 '하루'라는 시간이 너무 짧다는 사람도 있고, 너무 길어 지겨워 죽겠다는 사람도 있다. 왜일까?

그건 아마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하루를 보내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그것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최상의 삶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권태환씨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서른여섯살의 사내는 어부를 꿈꿨다

ⓒ 김정혜
ⓒ 김정혜
"황복어·장어·웅어·잉어가 잡힌다"

한강에 어부가 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긴가민가했다. 정말 고기가 잡힐지 궁금했다. 그래서 직접 눈으로 확인까지 했다.

권태환씨는 "많이 잡힐 때는 그물을 끌어올리기 힘들 정도"라고 말한다. 주로 잡히는 고기는 황복어·장어·웅어·잉어다. 요즘은 웅어가 제철이라 제일 맛있단다.

그렇다면 권씨는 이 고기들은 어디에 팔까. 김포나 대명포구 인근에 있는 주변 횟집이나 식당이 주거래처다. 알음알음으로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황복어는 암컷이 `kg당 10만원, 수컷이 4만원 선에 거래된다.

한 달 수입을 묻자 그는 "용돈으로 쓰면 넉넉하고, 밥벌이로는 모자라는 정도"라고 구체적인 액수는 공개하지 않았다. 권태환씨는 그물로 고기를 건져올리는 그날까지 어부 일을 계속하고 싶단다. / 김정혜 기자
서울이 고향인 올해 마흔의 권태환씨. 그의 직업은 한강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다. 어부의 삶이 무어 그리 행복할까 되물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그저 좋단다. 왜? 언젠가는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던 일이라서 그렇단다. 고기 잡는 일을 언젠가는 하고 싶었다? 소망이라고 말하기엔 소박하기 그지없고, 꿈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야심이 없는 건 아니었을까 궁금증이 인다.

"어릴 적 한강을 지날 때였어요. 어부가 그물을 걷어올리는 모습을 보았는데 걷어올린 그물 안에서 고기가 펄떡펄떡 뛰는 거예요. 그 모습을 본 순간, 갑자기 제 심장이 펄떡거리는 고기처럼 요동치기 시작했어요. 지금 생각해도 그때 그 느낌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하여간 그 이후로 꼭 한 번 나도 저렇게 고기를 잡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상한 건, 그 충동이 일시적인 게 아니라는 거예요. 살아오면서 불쑥불쑥 그런 충동에 사로잡혔어요. 그러다 서른 중반에 이르러서야 꿈을 이루게 되었지요."


남자 나이 서른여섯. 무언가를 시작하기엔 다소 늦은 나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태환씨는 36살에 어부가 되었다. 그 일이 과연 생계유지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 따져 보지도 않은 채.

그간 모은 돈으로 배를 장만하고 또 '내수면어업허가권'을 취득하여 한강어촌계의 일원이 되기까지 오로지 그의 머리 속에는 어부가 되고 싶다는 열망뿐이었다고 한다.

처음 한강 나간 날, 모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 김정혜
▲ 권태환씨의 동료.
ⓒ 김정혜
드디어 꿈이 이루어졌다. 그는 어부가 되었고 한강으로 배를 타고 나가 고기를 잡게 된 것이다. 현재 한강어촌계에 내수면어업허가권을 취득한 배가 모두 74척이나 된다.

얼마나 좋았을까를 묻는 것이 어째 우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적중했다. 처음 배를 타고 한강으로 나갈 때 어찌나 심장이 뛰던지 그리 요란한 배의 모터 소리조차도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처음 그물을 걷어올릴 땐 온 세상을 그것도, 색색이 아름다운 무지개 빛 세상을 걷어 올리는 것 같더란다. 구구절절 읊조리지 않아도 그때의 감동이 어떠했는지가 그때를 회상하는 그의 상기된 표정만으로도 충분히 짐작이 간다.

4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무지개빛 세상을 걷어 올린다는 그. 그의 세상 속엔 어떤 고기들이 펄떡거릴까. 웅어·황복어·뱀장어·누치·준치 뭐 그런 것들이란다. 생각 같아선 팔뚝에 힘이 불끈불끈 들어가도록 고기가 꽉 찬 그물을 끌어 올리고 싶지만 요즘엔 영 여의치 않다고 한다.

"요즘 들어 현저하게 물고기 수가 줄었어요. 아마도 모래 채취 때문인 것 같아요. 고기가 산란을 많이 해야 물고기 수도 늘어나는 법인데 모래 채취 때문에 제대로 산란을 할 수가 없어요. 또 모래 채취를 하다 보니 물속 플랑크톤이 자연 감소하게 되고 플랑크톤이 감소하다 보니 당연 물고기 수도 줄어들게 되지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모래가 빠져나간 강바닥은 순전히 뻘 투성이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물이 뻘 속에 묻히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요즘은 고기를 잡는 일보다 뻘 속에서 그물을 끌어 올리는 일이 더 많아요."


부부가 함께 고기를 잡다

이야기를 듣다 문득, 어부로서의 가장을 아내는 대체 어떻게 생각할까 싶다. 지금의 어획량으로 봐선 분명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을 터. 같은 여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경제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오직 열망 하나만으로 어부가 된 남편이 그리 곱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러나 '부창부수'라는 말을 실감하고 만다. 미용실을 운영하는 권태환씨의 아내는 남편을 위해 '배조정면허증'까지 땄단다. 그리고 가끔 함께 한강으로 고기잡이를 나간다고 한다.

아내가 배를 조정해 미리 쳐놓은 그물이 있는 곳에 당도하면 남편은 그물을 끌어올린단다. 그런 날이면 금방이라도 한강으로 도로 뛰어들 듯이 펄떡거리는 고기를 그 자리에서 회를 쳐 부부가 함께 먹는단다.

그들의 행복한 모습이 저절로 그려진다. 행복이란 건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님을 아니, 오히려 너무 소박하고 평범한 것임을 권태환씨 부부를 보며 실감한다.

좋아서 하는 일이니 한강에서 고기 잡는 날은 매일 매일이 행복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가을은 무지무지 행복하단다. 어획량의 70~80%가 가을에 집중되는데 주로 장어가 많이 잡힌다고 한다. 또 장마철에도 장어가 많이 잡힌단다.

특히 비가 많이 내려 물이 한강 둑이라도 넘을 때면 그야말로 장어 풍년을 이룬다고 한다. 물속에 잠긴 수풀 속 먹이를 찾아 장어들이 모여들기 때문이라며 그 이유를 설명하는 권태환씨. 어찌나 신바람이 났는지. 어쩌면 낑낑거리며 장어를 끌어올렸던 작년의 흥분이 다시 되살아난 듯 하다.

ⓒ 김정혜
한강에서 잡힌 장어를 따라 내 가슴도 요동친다

문득. 권태환씨의 열정이 내게도 전이된 것일까. 한 번쯤 배를 타고 한강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그리고 어부가 끌어 올리는 그물 속 고기들의 싱싱한 펄떡거림을 좀 더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권태환씨가 고기를 잡는 곳은 김포대교 바로 밑. 김포대교를 건너며 차창을 통해 늘 내려만 보던 한강을 배를 타고 유람(?)하는 기분이라니.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다. 배 난간에서 조금만 고개를 뒤로 젖히니 바로 하늘이다. 금방이라도 한강과 맞닿을 듯 낮게 내려앉은 하늘가로 갈매기는 또 한가롭다. 미리 쳐놓은 그물들을 찾아 조정키로 이리저리 방향을 잡는 권태환씨.

그물을 걷어올리는 그의 옆얼굴이 약간 긴장된 듯 상기된 표정이다. 번번이 허탕이다. 내 눈엔 어른 팔뚝 만한 제법 큰 잉어가 잡혔는데도 그냥 놓아준다. 그의 눈엔 아무래도 작아 보이나 보다.

잠깐. 그의 얼굴이 환해진다. 제법 큰 장어다. 그물 속에서 힘차게 요동치는 장어를 바로 눈 앞에서 대하고 보니 내 가슴도 함께 요동친다. 잠깐 구름을 벗은 손바닥만 한 조각하늘처럼 환해진 그의 얼굴을 보며 감히 짐작해 본다.

그가 그렇게 어부가 되고 싶었던 건, 금방이라도 그물을 튀어 나갈 듯한 물고기들의 그 힘찬 요동을 그도 온 몸으로 함께 느끼고 싶었던 때문은 아닐까. 하여 그 힘찬 요동으로 매일 매일을 그렇게 신바람 나게 살고 싶었기 때문은 아닐까.

12군데의 그물을 걷어 올렸다. 수확이라고는 장어 한 마리가 전부다. 어부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참 난감할 수도 있으련만 권태환씨의 얼굴은 전혀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해맑다. 그 웃음이 보기 좋다.

"적게 잡힐 땐 적게 먹고, 많이 잡힐 땐 많이 먹고"

▲ 제법 큰 장어 한 마리를 잡았다.
ⓒ 김정혜
이렇게 잡아 밥 먹고 살겠느냐고 물었더니, 적게 잡힐 땐 적게 먹고 많이 잡힐 때 많이 먹으면 된단다.

지극히 타당한 이론이다. 그러나 그 타당한 이론조차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엔 부지기수이다. 그래서일까. 배 난간에 걸터앉아 욕심 없이 사는 삶이 곧 행복이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이 또한 보기 좋다.

보기 좋은 건 그뿐 아니다. 이 쪽에서 저 쪽으로 배가 움직일 때마다 기꺼이 함께 날아오르는가 하면 배가 멈추자 난간에 앉아 함께 쉬는 갈매기들. 적당한 감미로움으로 온 몸을 휘감는 시원한 바람. 손 뻗으면 금방이라 도 푹신한 구름 한 웅큼 잡혀 질 듯한 낮은 하늘.

거기다 그것들과 함께 어울려 앉아 마냥 사람좋은 웃음만 허허거리는 불혹의 어부. 한참, 그 보기 좋은 풍경에 빠져 있노라니 그들로부터 행복 바이러스가 전염된 듯 짜릿한 전율에 소름이 끼친다. 한강과 어부와 그리고 그들 위로 쏟아져 내리는 금빛 햇살 속으로 저만치 여름이 보인다.

#한강어촌계#어부#장어#권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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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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