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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155일 동안의 고공시위를 접고 내려온 윤인중 목사가 활짝 웃고 있다.
23일 155일 동안의 고공시위를 접고 내려온 윤인중 목사가 활짝 웃고 있다. ⓒ 박지훈
벽초 홍명희 소설 <임꺽정>의 무대인 인천 계양산. 아침 일찍 계양산에 오른 이들은 연례행사처럼 소나무 위로 손을 흔든다. 임꺽정같이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윤인중 목사는 12미터 소나무 위에서 등산객들을 반갑게 맞는다.

계양산을 지키기 위해 150여 일이 넘게 소나무 위에서 시위를 해왔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일상처럼 굳어진 광경이다. 그러나 이 일상의 광경을 이제 못 볼 것 같다. 윤인중 목사가 23일, 155일의 소나무 시위를 마치고 내려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26일 인천녹색연합 신정은 간사로 시작해 윤인중 목사까지 이어온 계양산 소나무 시위는 총 210일을 기록하고는 일단락됐다.

윤 목사는 왜 내려온 것일까. 23일 소나무 위에서 내려오기 전 <에큐메니안>과의 인터뷰에서 윤 목사는 "소나무 시위는 인천시민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는데 좋지만 결국 박수만 치게 한 결과를 초래했다"며 "시민 스스로가 계양산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운동을 전개키 위해 소나무 시위를 접게 됐다"고 말했다.

윤인중 목사를 지지하기 위해 나온 시민단체 회원.
윤인중 목사를 지지하기 위해 나온 시민단체 회원. ⓒ 박지훈
소나무 시위 이후의 활동 계획에 대해 윤 목사는 "시민들의 참여로 계양산 부지를 매입하는 내셔널트러스트(한 평 갖기) 운동과 함께 시청 주위를 매주 5일 동안 도는 24시간 릴레이 3보1배 운동을 펼쳐 기필코 롯데의 골프장 건설을 백지화 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지상에 내려오기 3시간 전 진행된 인터뷰에서 "내려오면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뭐냐"는 질문에 윤 목사는 "소나무 시위 초창기에는 목욕탕이 가장 가고 싶었지만 이젠 땅을 걷고 싶다"며 웃었다.

다음은 윤 목사와의 일문일답

-155일간의 소나무 시위를 마친 소감은.
"감개무량하다. 이 위에서 숲은 살아있음을 느꼈다. 때문에 롯데의 골프장 건설은 생명체를 힘으로 끊는 행위밖에 안 된다."

-올라오다 보니까 롯데건설에서 '계양산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겠다'라고 내건 플래카드를 봤다.
"그 분들 참 재밌다. 30만평 골프장 개발하겠다면서 원형 그대로 보존하겠다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 골프장 개발을 위해서라면 양잿물도 마실 사람들인 것 같다."

골프장 위해 1200여 톤 물 필요

-최근 골프장 폐해 사례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골프장 건설로 인한 가장 큰 폐해는 산림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27홀 골프장을 유지키 위해선 1200여 톤의 물이 필요하다. 계양산은 비가 며칠만 안 와도 물이 잘 마르는 곳이다. 지하수가 풍부한 산이 아닌데도 1200톤의 지하수를 뽑아 쓴다고 가정하면 지하 암반 침하 위험과 함께 이 일대 환경 농업은 절대 불가능하다."

-육체적 부담감이 소나무 시위 종료에 주요인으로 작용한 것 아닌가.
"육체적 문제로 인한 종료는 소극적 이유다. 소나무 시위는 골프장을 막겠다는 교회와 환경단체 의지를 충분히 보여줬으며 인천시민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정작 시민들은 박수부대로 전락, 계양산을 지키기 위한 실질적 주체가 되지 못했다. 박수만 치는 지지자가 아니라 시민들을 해결의 당사자 및 주체로 만들기 위한 운동의 변화 필요성을 느껴 소나무 시위를 종료한 것이다."

"개인이 부각되는 운동 바람직하지 않아"

-일각에서는 소나무 시위 종료에 대한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개인이 부각되는 것은 좋은 운동이 아니다. 지금 내가 펼쳐왔던 고공 시위는 선정적이고 자해적이며 위협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운동은 불가피할 때 하는 것이지 정상적인 활동을 통해 운동을 전개해나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본다. 사실 워낙 불가피해서 (소나무 위로) 올라왔지만 이게 꼭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바람직한 운동의 방향은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함께 토론하고 참여하는 것이다."

-이후 활동에 대한 구체적 계획은 세웠나.
"우선은 골프장 백지화 될 때까지 운동을 전개해 나갈 것이다. 이를 위해 지금 현재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 명의의 땅을 지역주민들이 매입하는 내셔널 트러스트(한 평 갖기) 운동을 전개해 나갈 것이며, 매주 5일 동안 인천 시청 주위에서 릴레이 3보1배를 펼칠 계획이다."

"소나무 투쟁으로 살아계신 하나님 체험 할 수 있어"

윤인중 목사가 지내던 1.5평의 공간이 해체되고 있다.
윤인중 목사가 지내던 1.5평의 공간이 해체되고 있다. ⓒ 박지훈
-155일 동안 시위를 펼치며 잃은 것과 얻은 것은 무엇인가.
"특별하게 잃은 것은 없다. 다만 가족들과 교회 성도들, 대책위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신세를 져서 부담스럽고 죄송스러울 따름이다. 반면 숲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 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크게 얻은 것이다. 현대 시대 하나님의 가장 큰 말씀은 생명을 사랑하고 소중이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학교와 심지어 교회에서도 생명에 대한 소중함보다 아파트 평수가 중요하다고 공공연히 떠드는 세상이 됐다.

이제는 인권과 민주화 얘기하려면 평화와 생태를 포함해야 한다. 이것을 뺀다면 박정희 그린벨트 못하다고 본다. 또, 인간중심주의를 신앙적으로는 하나님 중심주의로, 세상적으로는 생명중심 사상으로 바꿔나가야 한다. 사실 사람들은 자연보호차원에서 쓰레기를 줍기 위해 올라온다. 그러나 자연보호 운동은 어폐가 있다. 쓰레기를 자연이 버린 건가. 아니다. 자연보호 운동이 아니라 인간허물 감추기 운동이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 자연에게 잘 못한 것을 회개하는 운동이 일어나야 할 때다."

-소나무 고공 시위 동안 윤 목사에 대한 지원은 어땠나.
"나를 위해 하루 10명 정도가 봉사했다. 세상에 이런 호강이 어디 있겠나.(웃음) 210일 동안 2천여 명이 나를 먹여 살리기 위해 동원된 것이다. 감사하고 미안할 따름이다."

-교회 차원의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그렇지 않다. 시민단체 한계는 금전적 부분이다. 대책위도 돈이 없어 고생했지만 지금은 흑자 상태다. 교회에서 헌금을 많이 보내줬기 때문이다. 시민단체에서도 이번 일을 계기로 교회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을 것이다."

-소나무 위에 살며 혼자라는 생각은 안 들었나.
"들었다. 다들 집으로 돌아가고 지킴이 1명 정도만 남은 시점에서 골프장 찬성 주민들이 와서 막말하고 돌까지 던질 때 마치 고립된 섬에 갇힌 기분이었다. 시민들이 조금이라도 더 지지하고 나서줬으면 하는 아쉬움도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

-소나무 시위를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은 있었나.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보다도 내려가는 문제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오는 11월6일이 소나무 시위 1년이 되는 날인데, 그 때까지 해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신앙적인 면에서도 어려움을 참고 잘 익히는 법을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대책위에서 내려오라고 했을 때 갈등을 했다. 내려가지 않겠다고 2번 정도 억지를 썼다. 그러나 처음 올라올 때도 억지 썼는데 이번에도 계속 억지 쓰면 매 맞을까봐.(웃음)"

내려오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것은 땅 걷는 것

소나무에서 내려온 윤인중 목사가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소나무에서 내려온 윤인중 목사가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 박지훈
-예전에 지상에 내려오면 목욕탕에 가장 먼저 가고 싶다고 했는데 지금도 그런가.
"비록 수건이지만 물을 묻혀 몸을 씻을 수 있기 때문에 목욕탕보다도 땅을 걷고 싶다는 욕구가 가장 강하다. 다음으론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고 싶다."

-롯데와의 싸움은 새로운 전기를 맞았는데 어떻게 전개될 것 같나.
"신격호 회장은 계양산을 인천시민에게 돌려줄 의사가 없다는 것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처음에는 이 땅을 기증하라고 요구했지만 이제는 치사하게 돌려달라고 하지 않고 아까 말했던 것처럼 이 땅을 매입할 계획이다. 내 욕심은 시민 10만여 명이 만원씩만 내 10억원을 조성했으면 한다. 사실 10억원은 부지 매입에 턱없이 부족하지만 전체를 사는 것이 아니라면 핵심 부지는 가능할 것 같다. 이를 위해 인천시에는 시민들이 이 땅을 살 수 있도록 공원부지로 지정해달라는 요구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윤 목사를 응원하는 이들에게 한 마디 해달라.
"투쟁이 10개월 정도가 되니까 몸도 마음도 모두 지친 상태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조금 더 힘을 낼 수밖에 없다. 힘 안들이고 하는 운동은 없다. 지금 힘든 순간이 언젠가는 큰 기쁨으로 다가올 것이다. 양심 있고 뜻있는 신앙인들과 시민들이 함께 해주길 부탁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에큐메니안(www.ecumenian.com)에도 실렸습니다.


#윤인중#소나무 시위#계양산#롯데#골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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