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톰 아저씨의 오두막>과 <침묵의 봄>

미국 역사를 바꾸어 놓은 두 명의 여성이 있다. 한 명은 해리엇 비처 스토우인데,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그녀가 쓴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읽고서 흑인 노예들을 해방시켜주기로 결심했다는 일화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감명을 받은 링컨 대통령이 그녀를 백악관에 초청하여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이곳에 오신 당신을 환영합니다. 당신은 이 모든 것을 시작한 여성입니다. 이제 말씀해 주시지요."

그로부터 약 1세기가 지나서, 그러나 이번에는 백악관이 아니라 국회의사당에서 똑같은 말이 마이크를 통해서 흘러 나왔다. 말을 한 이는 공교롭게도 링컨 대통령과 이름이 똑같은 에이브러햄 리비코프 상원의원이었고, 조용히 앉아서 이 말을 경청한 이는 레이첼 카슨이었다.

그녀가 1년 전에 펴낸 책 <침묵의 봄>이 엄청난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자 국회 내에 환경 위기를 다룬 특별 소위원회가 구성되었는데, 그녀는 그 소위원회가 소집한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하고 있었던 것이다.

재치있게도 리비코프 상원의원은 링컨 대통령이 스토우 부인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다시 재현함으로써 자신이 의장을 맡고 있는 청문회의 역사적 의미를 부각시키려고 했다. 그의 말이 단순한 재치가 아니었음은 곧 입증되었다.

이후 미국 정부가 독성 살충제에 대해서 보다 엄격하고 강경한 입장을 취하는 정책을 채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변화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환경 문제를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선과 방향이 <침묵의 봄> 출간 이후 엄청나게 변했다는 점이다.

환경 문제는 피해 당사자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문제이며, '지금 여기'에서 더 나아가 지구의 미래까지도 좌우할 중차대한 문제라는 인식이 생겼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해서 보다 지속적이고 조직화된 방식으로 환경 문제를 다루는 시민운동, 즉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환경 운동이 태동하게 된 것이었다.

미국 역사를 바꾸어 놓은 두 명의 여성 중 또다른 한 명으로 레이첼 카슨이 거명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아니, 미국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 역사를 바꾸어 놓기도 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레이첼 카슨은 해리엇 비처 스토우보다 앞서 거명되어야 마땅하다. 비록 그녀가 스토우 부인보다 후대의 인물이긴 해도 말이다.

위대한 환경운동가, 그 이면의 인간적 고뇌 다뤄

ⓒ 도서출판 샨티
미국 조지 워싱턴대 환경 역사학 교수인 린다 리어가 쓴 <레이첼 카슨 평전>은 바로 이 역사적인 청문회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는 인상적인 도입부로 시작된다. 그리고 "이제 말씀해 주시지요"라는 상원 의원의 요청에 마치 자신이 응하기라도 하듯이, 린다 리어는 레이첼 카슨의 생애를 750쪽이 넘는 책에 꼼꼼하게 펼쳐놓는다.

아무리 역사적인 인물이라고는 해도 60년이 채 안 되는 삶을 살았던 한 여성의 평전치고는 분량이 좀 많다고 여겨질 정도이다. 사실, 이 책은 레이첼 카슨에 관한 전기적 사실 말고도 그녀의 삶에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은 인물들의 배경까지도 시시콜콜하게 밝혀 놓고 있어서 필요 이상으로 치밀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10년에 걸친 꼼꼼한 자료 조사와 공들인 집필로 레이첼 카슨의 생애를 거의 완벽하게 복원해 놓고 있어서, 그녀의 삶에 대해서 궁금함을 많이 가지고 있던 독자들에게는 이 책만한 것도 없을 듯 여겨진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의 생애를 다루고 있는 대부분의 평전들에서는 흔히 그들의 성취에만 주목해서 그러한 성취를 이루기 위해 그들이 희생시켜야만 했던 인간적인 면모가 무시되거나 조금만 다루어지는 경향이 많은데, 그러한 함정을 잘 비켜나가고 있다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최고의 과학저술 작가라는 화려한 명성 아래에서 레이첼 카슨이 겪어야 했던 삶의 그늘까지도 균형감있게 잘 그려내고 있다.

즉, 거대 화학 회사들이 고소를 걸어오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쉽사리 떨쳐내지 못한 질병(유방암)으로 인한 절망, 숨기고 싶은 가족 및 자신의 사생활이 노출되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 어린 조카와 늙은 어머니를 돌봐야 하는 부담감 등으로 레이첼 카슨은 자신의 대표작 <침묵의 봄>을 집필하고 출판하는 내내 마음이 평온하지 못했던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평전들에서는 그러한 성취가 오직 그 사람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인 양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레이첼 카슨이 남다른 성취를 이룰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던 많은 사람들의 역할과 영향 관계가 매우 치밀하고도 선명하게 나타나 있어서, 역사를 바꾸는 힘은 결코 위대한 개인 한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님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이를 위해서 이 책의 지은이 린다 리어는, 레이첼 카슨의 일기뿐만 아니라 그녀가 여러 사람들과 주고받은 편지들도 참조했으며 또한 그러한 사람들 중 생존해 있는 이들과 일일이 인터뷰를 하는 등 치밀한 추적과 취재를 했다고 한다.

이렇듯, 지은이 린다 리어의 놀랄 만한 열정과 헌신, 그리고 객관적이고도 치우침이 없는 균형 잡힌 시선에 힘입어 마치 살아있는 이를 마주하듯이 우리 시대에 레이첼 카슨을 다시 만날 수 있음은 이 책을 읽어나가는 크나큰 기쁨이다. 그리고 이 책의 책장을 덮을 때쯤에는 그 기쁨에 소중한 깨달음 하나를 더 추가하게 될 터이다.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긴 이 위대한 여성도 사실은 인간적으로 많은 고민을 했고 좌절도 했으며 상처도 입었고 결국은 평범한 여느 사람과 마찬가지로 병마에 시달리다 삶을 마쳤다는 것을. 우리가 특별하게 여기는 모든 위대함의 원천은 사실은 이렇게 평범함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것을.

그녀의 평범함을 위대함으로 이끈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간직하면서 추구했던,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자 했던 그녀의 오랜 꿈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그러기에, 레이첼 카슨의 삶이 성취로 여겨지는 것은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20세기를 변화시킨 100인' 중 한 사람으로 그녀의 이름이 올라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세계를 대표하는 100인의 석학들이 선정한 '20세기를 움직인 10권의 책' 중에 그녀의 대표작 <침묵의 봄>이 4위에 올라있기 때문도 아니다.

레이첼 카슨의 성취가 진정으로 성취인 것은 평생 꿈꾸었던 자신의 꿈을 마침내 이루었기 때문인 것이다. 레이첼 카슨은 자신의 꿈에 충실함으로써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미국 시민들과 지구상의 인류, 더 나아가 지구의 생태계에까지 봉사하는 삶을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레이첼 카슨 평전>은 꿈꾸는 삶의 소중함을 내게 다시 가르쳐주었다.

5월 27일은 레이첼 카슨 탄생 100주년

책을 다 읽고 나니, 인류의 역사 속에서 그녀를 가질 수 있었음이 축복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그녀는 벌써 오래 전에 망자가 되었지만, 그녀가 죽은 날을 기억하기보다는 그녀가 태어난 날을 기억함이 오히려 더 나아 보인다. 예수의 탄생일을 우리가 기억하고 축하하듯이. 부처님 오신날을 우리가 기억하고 축하하듯이.

그녀가 태어난 날이 1907년 5월 27일이니 이번 일요일(5월 27일)이 그녀가 태어난 지 꼭 100년이 되는 날이다. 그녀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미국에서는 여러가지 행사도 펼쳐지고 메릴랜드주를 비롯한 몇몇 지역에서는 5월 27일을 '레이첼 카슨 데이'로 공포하여 첫 기념행사를 가질 예정이라고도 한다. 뒤늦은 감이 있다.

하지만 태어난 지 100년이 지나서 다시 태어나는 레이첼 카슨의 꺾이지 않았던 꿈과 그 꿈에 충실했던 그녀의 삶은 우리가 별 생각 없이 누리고 있는 이 대자연을 다시 새롭게 바라보게끔 할 것이다. 또한 그 대자연 속에서 누려야 마땅한 우리의 삶이 지금 어디에 머무르고 있으며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를 되돌아보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우리가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꿈이 무엇이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나를 곰곰히 자문하도록 할 것이다. 이 봄이 다 가기 전에 린다 리어가 쓴 <레이첼 카슨 평전>을 읽는 것은 쉽게 답하기 어려운 그 물음의 답을 찾는 현명한 방법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레이첼 카슨 평전>

ㅇ린다 리어(Linda Lear) 지음
ㅇ김홍옥 옮김
ㅇ도서출판 샨티
ㅇ2004년 11월 1일 초판 1쇄
ㅇ값 28,000원 

이 기사는 인터넷서점 예스이십사의 독자리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레이첼 카슨 평전 - 시인의 마음으로 자연의 경이를 증언한 과학자

린다 리어 지음, 김홍옥 옮김, 샨티(2004)


#레이첼 카슨#침묵의 봄#린다 리어#환경운동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