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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이 열리는 아라비아해를 바라 보았다. 한 가로운 파도에 정박한 배들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 조태용
인도 배낭여행을 가겠다고 말을 꺼내자 아내가 제일 먼저 꺼낸 말은 이번에는 정말 갈 것이냐는 것이었다. 비행기표를 구입했다고 해도, 비자 신청을 했다고 해도 아내는 좀처럼 여행을 간다는 것을 믿지 못한다.

그동안 몇 번 해외 배낭여행을 가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지키지 못했다. 그래서 이미 양치기 소년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내와 나는 지리산에 내려와 살고 있다. 시골에서 살려고 하는 여성이 거의 없는 요즘, 도시에서 직장에 다니던 아내가 결혼하면서 시골로 내려와 주었다.

그것이 고마워서 시골에서 사는 대신 일년에 한 번 배낭여행을 가겠다고 결혼 전에 약속을 했다. 약속이라는 것이 말하기는 쉽지만 국내 여행도 아니고, 해외 배낭여행을 일년에 한 번씩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결혼 첫 해는 신혼여행을 핑계로 넘어가고, 그 다음해는 인도 배낭여행을 갈 것이라고 년 초부터 호언장담 했지만 결국 진도로 1박2일 여행가는 것으로 대신 했다. 그리고 다시 새해가 밝았고 작년처럼 또 인도로 배낭 여행을 갈 것이라고 말했던 참이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비행기 티켓이 집에 도착했다. 3월 28일 뭄바이행 오후 7시 비행기였다. 비행기 티켓을 보고도 아내는 비행기를 타봐야 안다면 믿지 않았다. 그리고 또 다시 며칠이 지나서 인도 비자도 도착했다.

인도 비자는 보통 6개월 멀티 비자로 6개월 동안 인도에 체류하고 더 이상 체류하고 싶으면 다른 나라에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야 한다. 그렇게 하면 총 1년 동안 인도에서 체류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인도 접경 국가를 여행하기 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시간은 흘러 비행기를 타야 하는 날이 점점 가까워 졌다.

"이번엔 정말 갈 거야?"
"비자도 받았고 비행기표도 있는데 정말이야."

아내는 여행 일주일을 남긴 상황에서도 여전히 믿지 않았다. 그리고 몇 번의 같은 질문과 대답이 이어지고 배낭을 싸면서도 비행기를 타봐야 안다는 말을 되풀이 했다.

이번 여행에서 사용한 배낭은 45리터 배낭과 10리터 작은 배낭이었다. 침낭 2개와 옷가지와 가이드북 한 권을 챙겼다. 배낭을 싸는 시간은 고작 2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비행기 티켓을 구매하는데 1시간, 비자 신청은 여행사로 여권만 보내면 된다. 그러니 실제로 준비한 시간은 총 3~4시간도 걸리지 않는 샘이다. 너무 간단했다.

꽤 오랫동안 가보고 싶어했던 배낭여행인데 실행으로 옮기고 나니 너무 쉬워서 허탈 할 지경이었다. 살다 보면 실제보다 더 어렵게 부풀려 있는 경우도 많고 정말 힘든 일을 가볍게 여기는 때도 있는 것 같다. 정말 하고자 한다면 도전하고 나서 후회해도 늦지 않는다. 해외 배낭여행은 실행하려는 의지만 있으면 너무 쉬운 것 중에 하나였다.

이번 여행은 인도와 네팔 두 군데에 20일씩 체류하기로 했다. 인도는 뭄바이에서 네팔로 가는 길목에 있는 도시를 주로 여행하고, 네팔에서는 포카라에서 안나 푸르나 트래킹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안나푸르나의 설산은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기도 했다.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천안을 넘어서자 굵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내는 이러다가 비가 많이 와서 비행기 못 타는 것 아니냐며 걱정을 했다. 비가 많이 와서 비행기가 이륙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이 정도 비는 걱정 할 것이 없다고, 했지만 해외 비행이 처음인 아내는 걱정이 되는 것 같았다. 인도의 무더운 날씨를 고려해서 입은 가벼운 옷차림 때문인지 오돌오돌 살갗에 돌기가 솟았다. 춥다.

"이제 정말 가는 거야. 그렇지?"
"아니야…. 비행기 타봐야 알아."

아내는 끝까지 비행기를 타봐야 안다며 습기로 보이지 않는 창문을 손으로 닦아내 비 줄기를 확인했다.

"비가 많이 오는데……."

아내는 여전히 걱정스럽게 말했다. 버스가 영종대교로 진입하자, 다행이 비가 그치고 어두운 구름 사이로 태양이 비쳤다. 영종도의 넓은 갯벌에 조금씩 고여있던 바닷물이 오후 햇살에 반짝였다.

비행기는 아내의 걱정과는 다르게 예정된 시간에 인천공항의 긴 활주로에서 하늘로 이륙했다. 기내에 설치된 텔레비전에는 비행기의 항로 표시가 보였다. 비행기는 인천을 떠나 목포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잠시 고향 마을의 상공을 지나쳤다.

혹 지금 고향에 게신 부모님이 마당에서 반짝거리면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고 있을 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어릴적 동네 동산에서 비행기가 지나간 자리에 생긴 꼬리 구름을 바라보던 시골 소년의 모습도 잠시 보이는듯 했다.

비행기는 2시간을 날아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에 도착했다. 여기서 다시 2시간을 기다려 비행기를 갈아 타야 했다. 갈아탄 뭄바이행 비행기 안에는 인도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기내식도 채식주의자를 위한 식사를 선택할 수 있었다. 점점 인도와 가까워 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하늘 위에서 잠시 잠이 들었다.

▲ 뭄바이를 대표하고 있는 상징적인 건축물인 인디아 게이트다. 아라비아해에 붙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1911년 영국의 조지5세와 그 부인이 방문 한 것을 기념하여 지은 건축물이다.
ⓒ 조태용
3월 29일 새벽 4시(인도와 한국은 3시간의 시간차가 있다). 뭄바이 빠뜨리트 쉬바지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지리산을 출발한 지 18시간만이었다. 아내는 드디어 우리가 인도에 왔음을 실감하는 것 같았다.

공항 밖으로 나오자 한여름 열대의 후덥지근한 더위가 훅 하고 밀려 들어왔다. 새벽의 신선한 공기 대신 까마귀들이 연신 울어대며 우리를 반겼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인디아 게이트로 갔다. 주변을 배회하는 우리에게 인도 사람이 다가와 물었다.

"Where are you going?"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인도에 가려했고 지금은 인도에 와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인도에 갈 것이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나는 아침이 열리는 아라비아해를 바라보았다. 한가로운 파도에 정박한 배들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지금 인도로 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농산물 직거래 장터 참거래 농민장터(www.farmmate.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인도, #배낭여행, #뭄바이, #아라비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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