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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는 정일용 한국기자협회장.
ⓒ 오마이뉴스 안홍기

"취재현장의 실상에 대한 현실인식에 큰 차이가 있다. 정부 당국자들이 취재 보도 현장의 실상이 어떤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만약 제대로 알고 있다면 이번과 같은 방안에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이라고 이름 붙일 수는 없을 것이다."

정일용 한국기자협회 회장은 이른바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을 강행하려는 정부 방침에 대해 한마디로 이렇게 정리했다. 뭘 몰라도 한참 모르고 있다는 이야기다.

기사송고실 및 브리핑룸 통폐합 조치에 대한 논란이 한창인 가운데 25일 서울 프레스센터 한국기자협회에서 정 회장을 만났다. 마침 이 문제와 관련해 이날 긴급하게 이뤄진 정부-언론단체 오찬 간담회 자리에 참석했던 김경호 기자협회 수석부회장도 잠시 자리를 같이했다.

김 부회장이 간담회 내용을 개략적으로 소개했다. 기자협회·언론노조·PD연합회·언론연대 등 언론단체 대표들은 각기 '원점에서 재검토'를 요청했지만, 정부쪽에서는 '선의의 취지'를 내세워 이해와 협조를 구했다고 한다.

"이렇게까지 반발이 거셀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는 말도 있었지만, 결론은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기본적으로는 강행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토론회 등을 열어 서로 의견을 나눠보자는 데는 견해를 같이했다.

그러나 이날 오전부터 청와대와 국정홍보처 고위 관계자들이 잇달아 방송 토론회와 시사프로그램에 적극 나서는 등 '공세적 방어'에 들어갔다.

"핵심은 기자실이 아니라 정보 공개 확대 여부"

- 현실인식에 차이가 있다고 했는데, 어떤 차이가 있다는 것인가?
"정부 당국자들이 취재 보도 현장의 실상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사무실 무단출입 이야기를 하는데, 2003년 브리핑제도 도입 이후 언제 사무실 무단출입으로 문제가 됐는지 묻고 싶다. 기자실 문제도 마찬가지다. 기자실은 이제 없다. 정부 스스로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는 기사송고실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마치 과거 기자실 문제를 슬쩍 끼워넣어 이번 조치를 합리화하려는 것 같다.

기자실이 문제가 돼 이번 조치를 취했다면 최근에 도대체 어떤 기자실이 문제가 됐는지, 어떤 게 문제가 됐는지를 분명하게 제시해야 맞다.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이 브리핑할 때 기자들이 재차 물었지만 제대로 답변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정부 당국자들은 무엇이 논란의 핵심인지 잘 모르는 것 같다. 기자실이나 브리핑룸은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 무슨 소린가. 청와대나 국정홍보처 관계자들은 언론과 기자들의 반발은 결국 기자실이 없어져 기자들이 불편해지기 때문이 아니냐는 식으로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게 문제의 핵심이 아니란 게 무슨 말인가.
"이번 문제가 자꾸 기자실이나 브리핑 제도 때문이라고 하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호도하는 것이다. 정부의 이번 조치가 정부의 정보 공개를 확대하는 쪽이냐, 아니면 그 반대냐가 문제의 핵심이다. 이번 조치는 명백하게 정보 공개 쪽과는 반대방향이다."

- 2003년 기자실 제도 개편(기사송고실)과 브리핑 제도 도입 때는 반대하지 않았다.
"그 때도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당시 제도 변경의 초점이 그동안 문제가 있었던 기자단과 기자실의 폐쇄성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받아들인 거다. 그 때도 브리핑 제도가 정보 공개를 꺼려하는 공무원사회의 폐쇄성을 더 강화하면 강화했지, 개선하는 쪽으로 가리라고는 보지 않았다.

지금 단계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공무원들이, 정부 부처가 과연 정보를 공개하는 데 얼마나 개방적인지, 적극적인지 먼저 따져보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는 과거 정권 때보다 나아진 게 없다. 다른 나라처럼 공무원과 관료들이 정보 공개에 적극적이고 개방적이라면 브리핑룸 없어도 된다."

-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 다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기치를 높이 내걸었는데, 공무원 사회의 이런 태도가 왜 바뀌지 않는다고 보는가?
"답답하다. 국가 정보에 대한 공무원들의 생각이 정말 바뀌지 않는 것 같다. 공무원들은 국가 정보를 마치 정부나 공무원들의 전유물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낸 생산물임에도 국가가 독점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이런 공무원들의 생각을 국민의 정부도, 참여 정부도 깨지 못했다. 기자실이나 브리핑룸 문제를 언급하면서 정부가 글로벌 스탠더드 이야기를 하는데, 다른 나라 공무원들의 정보 공개 의식은 어떤지, 그 스탠더드는 왜 따지지 않는지 궁금하다."

ⓒ 오마이뉴스 안홍기
- 정보공개법이 있지만 기자들이 얼마나 정보공개법을 활용하고 있느냐는 반문도 있다.
"기자들이 정보공개법을 이용해 특종을 할 수 있으면 왜 이용하지 않겠는가. 시민단체들의 오랜 노력 끝에 정보공개법이 10년 전에 제정됐지만 정보 공개 범위 등 정보 공개 여부를 사실상 정부 관료들이 자의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공개하지 않았을 때 이를 처벌하거나 규제할 방법이 없다."

- 앞서 정부 당국과 현실인식에 큰 차이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왜 그런 차이가 난다고 보는가? 언론인 출신들도 많은데.
"지금이라도 하루라도 경찰기자 해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지금도 기자들이 경찰서 돌면 간밤에 무슨 일 있었다고 이야기해주는 경찰들 없다. 경찰 당직실 찾아 무슨 사건 있었는지, 병원 응급실이나 영안실 돌며 어떤 사건·사고·죽음들이 있었는지는 일일이 챙겨보는 수밖에 없다. 기자들은 지금도 그런 일을 계속하고 있다.

경찰기자들에게는 바로 그런 곳이 현장이고, 또 다른 부처 출입 기자들에게는 바로 그 부처가 현장이다. 출입처 취재의 문제점을 많이 이야기하지만, 각 부처에 기자들이 몰리는 것은 지금도 그 곳이 정보가 가장 많고, 정보와 뉴스거리가 가장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정부 부처는 바로 그것이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현장이다."

"기자단·기자실, 자유언론 명맥 이은 측면 있다"

- 하지만 일부에서는 기사송고실이 여전히 폐쇄적인 과거와 같은 기자실로 운영되고 있다면서 언론이 이번 조치에 반발하기 이전에 폐쇄적 기자실 운영의 문제점 등을 먼저 고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어느 기자실이 그러느냐?"

- 국방부, 서울시경 기자실 같은 곳은 여전히 폐쇄적이라는 지적을 듣고 있다. 한 인터넷 신문 기자는 지금도 '그들만의 기자실'로 운영되고 있다고 분통을 터트리기도 하던데.
"어떤 문제가 있는지, 왜 그런 문제가 있는지 구체적으로 따져볼 부분이 있다고 본다. 기자실이나 기자단의 부정적인 측면들은 당연히 개선돼야 한다. 이를 위해 그동안 노력도 많이 해왔다. 그러나 기자단·기자실의 역사적 연원에 대해서, 그 긍정적 측면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과거 독재정권이나 군사정권 시절, 기자 개개인 혼자서는 할 수 없었던 취재 같은 것을 기자단과 기자실이라는 '집단적 위세'로 해내기도 하고, 그나마 자유언론의 명맥을 이었던 측면도 있다. '기자단' 하면 부정적인 측면만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관료사회의 폐쇄성이나 우리 사회의 현실을 볼 때 현재도 어느 정도는 필요한 대목도 있다. 그런 현실을 제대로 볼 필요가 있다."

- 오늘(25일) 오찬 간담회에서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이 공무원들과 일전을 불사할 각오로 정보 공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는데.
"글쎄, 과연 장관 혼자 만들겠다면 만들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그런 대책을 내놓겠다면, 왜 지금까지 내놓지 않았는지도 의문이다. 또 그런 대책을 내놓을 것이라면 먼저 그것을 보여주고, 말하자면 시행해서 이렇게 한다는 것을 분명히 확인해주고 브리핑룸 같은 것을 통폐합하겠다, 이렇게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뭐가 문제가 되겠는가."

- 그렇다면 정부가 왜 이런 방안을 강행했다고 보는가.
"아마 몇 가지 고민은 있었던 것 같다. 과거와 같은 정언(정치와 언론)유착의 고리를 끊어보겠다, 이런 생각이 있었지 않나 싶다. 그러나 이게 그 방법이 될 수는 없다. 정언유착의 고리를 끊는 것도 중요한 문제다. 그 문제야말로 정도를 걸어야 한다. 커다란 느티나무 밑에선 잡초가 자라지 못하는 이치를 왜 모르는지 답답하다."

- 일부 언론과 한나라당에서는 국정홍보처 폐지, 나아가 신문법 문제까지 들고 나오고 있다.
"국정홍보처 문제에 대해서는 말할 처지도, 때도 아니다. 정치적 공세의 성격이 짙다. 그래서는 안 된다. 4~5년 전인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노조가 기자실을 강제로 폐쇄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언론자유를 문제삼은 정당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일관성이 없다. 또 바로 얼마 전에 언론탄압 시비를 낳을 수 있는 법안을 만들겠다고 나섰던 당이 어느 당인가. 언론은 우리 사회에서 아주 중요한 분야다. 어떻게 하면 언론의 질을 높이고 본연의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진흥할 것인가 하는 점 등에서 언론정책은 필요하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 정부가 끝내 강행한다면?
"두고 봐야겠지만, 언론이나 기자들은 물론 나라 전체를 보더라도 국익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을 것이다."

- 기자협회에서 성명을 내면서 국가보안법부터 철폐하라고 했다. 이 문제와 국가보안법이 무슨 관계가 있는가.
"모든 비밀주의, 정보 통제의 뿌리는 바로 국가보안법이다. 언론 쪽에서 보자면 국가보안법을 그대로 두고서 언론 자유 운운하는 것은 기만이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근본부터 제약하고 억압하는 실정법이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언론 자유를 말하는 것은 맞지 않다. 정부의 구조적인 폐쇄성이나 비밀주의가 뿌리 깊은 것도 바로 이 국가보안법 때문이다. 지금 언론의 자유 문제를 놓고 이야기하는 분들, 정당, 언론, 국민들이라면 바로 이 문제에 더 관심을 두고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

한국기자협회는 5월 31일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저널리즘연구회와 공동으로 기자실문제를 다룰 긴급 세미나를 여는 한편 전국 기자들을 대상으로 정부 조치에 대한 여론조사도 실시할 예정이다. 6월 초에는 전국대의원대회를 열 계획이다."

#백병규#미디어워치#정일용#김창호#기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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