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진보진영 시민사회세력의 정치세력화를 기치로 지난 15일 출범한 '통합과 번영을 위한 미래구상'에서 16일부터 6월 15일까지 30여일간 전국 순례에 나섰습니다. 이들은 이 기간 동안 버스를 타고 전국을 순회하면서 강연회, 토론회를 열며 '신당 창당'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한다는 계획입니다. 정대화 상지대 교수는 전국 순례 글을 <오마이뉴스>에 송고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편집자주>
▲ 김영삼 전 대통령의 5·18민주묘지 참배를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는 한총련 학생들.
ⓒ 오마이뉴스 강성관

광주…. 그 가슴 아픈 기억과 정체모를 설렘을 어찌 말로 표현하랴.

어두운 죽음의 시대
내 친구는 굵은 눈물 붉은 피 흘리며
역사가 부른다 멀고 험한 길을 북소리 울리며 사라져 간다.
친구는 멀리 갔어도 없다 해도 그 눈동자 별빛 속에 빛나네


몇 년 만에 광주항쟁 주간을 광주에서 보내게 되었다. 다시 금남로에 서니 많은 생각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문화전당으로 이름과 모습을 바꾼 전남도청도 예사롭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벌써 27년이 흘렀다. 20년이면 강산이 변하고 사건은 역사가 된다고 했으니 지난 27년은 매우 긴 세월이 아닐 수 없다.

80년대는 괴로움의 시대

우리는 87년 6월 민주항쟁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뿌리를 찾는다. 올해가 6월 민주항쟁 20주년인데 민주화 20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광주항쟁이 없었더라면 6월 민주항쟁도 없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그렇고, 실천적으로도 그렇고, 이 점에 대해서는 학계의 연구결과도 대체로 일치한다.

79년 10월 부마항쟁이 촉매가 되어 유신체제의 심장이 작동을 중단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서울의 봄'이 시작되었다. 그 봄의 마지막은 광주항쟁의 유혈로 막을 내렸다. 이렇게 그 열흘간의 치열했던 저항은 패배로 끝났다. 우리도 그렇게 생각했고 저들도 그렇게 생각했고 모두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기에 80년대는 괴로움의 시대였다.

그러나 괴로움은 단지 괴로움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과학 발명에서 혹은 기업 경영에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는데 광주항쟁은 이 교훈이 딱 들어맞는 사례가 되었다. 광주항쟁은 대학에 큰 변화를 몰고 왔다. 대학생들의 옷깃에 특권처럼 붙어있던 학교배지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여학생들의 치마가 바지로 바뀌고 구두가 운동화로 바뀌는 변화가 일어났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후 대학은 말 그대로 운동의 진원지가 되었고 저수지가 되었다. 대학의 모든 학습과 구호, 놀이와 행사는 군사독재를 향한 투쟁의 요구에 의해 재조직되었다. 화려한 70년대형 대학축제는 '대동제'로 이름을 바꾸었다. 유신체제 아래서도 쌍쌍파티가 있었지만 80년대의 대학가에는 화염병 투척이 오히려 즐거운 놀이가 되었다.

대학에서 한국현대사에 대한 학습과 토론이 진행되면서 "우리에게 미국은 무엇인가?", "해방운동사에서 북한과 김일성의 진실은 무엇인가?", "한반도는 왜 분단되었나?"와 같은 주제들이 짧은 시기였지만 '주류학문'으로 자리 잡았다.

매년 광주에 대한 기억은 5월을 계기로 강렬하게 확대 재생산되었고, 그 아픈 기억은 미국문화원 점거 등 '미국놈'에 대한 커다란 분노로 표출되었다. 이 일련의 반복적 경험 속에서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동지의 손 맞잡고"와 같은 동시대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6월 민주항쟁의 기관차 광주

대학의 상황은 대학 바깥의 정치권의 저항, 재야세력의 저항, 노동운동의 저항에 대중적 토대로 작용했다. 그 안팎의 연대가 85년 2·12총선에서 나타난 신민당 돌풍과 그 이후의 직선제 투쟁을 가능하게 했고, 결국 6월 민주항쟁으로까지 발전했다.

결국, 6월 민주항쟁의 출발점은 광주항쟁이고, 그 기관차는 광주이고, 학생들이 그 동력이 되었다. 결국, 6월 민주항쟁은 광주항쟁과 분리된 별개의 역사가 아니라 치열했던 광주항쟁의 꽃이자 결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 옛날 '폭도들의 난'으로 매도당했던 광주항쟁은 이미 오래전에 민중항쟁 혹은 민주화 운동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광주항쟁의 상징처럼 알려졌던 망월동 묘지는 5·18국립묘지로 단장되었고, 그 처절했던 날의 기억은 국가보훈처가 주관하고 대통령이 참석하는 국가기념일 행사로 격상되었다.

그러나 반대로 광주항쟁에 대한 민중적 열기는 예전과 달라졌다. 세월이 흘러서인지, 세상이 변해서인지, 아니면 민중의 행사를 국가가 대신해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광주에서 설명할 수 없는 허전함을 느꼈다.

90년대 후반까지 줄을 이었던 광주참배단의 행렬은 크게 준 대신 그 공백을 정치인들이 메우는 것처럼 보였다. 올해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광주를 찾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특히, 대선을 겨냥한 정치행렬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여기에는 한나라당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선을 꿈꾸는 모든 정치인들이 광주를 찾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러나 굳이 물어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개혁적인 인사들이 광주를 찾는 것은 '새로운 다짐' 정도로 애교 있게 보아 넘기면 될 것이다. 그러나 수구보수적인 인사들까지 광주에 오게 만드는 힘은 무엇일까? 달리 보면 그것이 광주항쟁의 힘인지도 모른다.

수구보수 인사들이 광주를 찾는 까닭

광주항쟁을 말하는 자리니 요즘 학생 이야기를 덧붙이는 것이 좋겠다. 일부 사람들이 학생들의 개인주의화나 보수적 경향에 대하여 목소리를 높이는 경향이 있다. 나는 대학에서 근무하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경향에 동의하지 않는바 아니지만, 그 해석방식과 문제의식에는 공감하지 않는다.

80년대 상황과 구별되는 학생들의 변화는 두 가지 시대상황의 산물이다. 하나는, 우리가 이룩한 민주화가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금은 군사독재 시절이 아닌 만큼 학생들이 삶을 던져서 투쟁할 이유가 없다.

또 하나는, 대학의 상황이 학생들을 억압하고 있다. 대부분의 고등학교 졸업자가 대학을 가는 반면 취업의 문은 지극히 좁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이 어학공부와 취직공부에 몰두하는 것을 나무랄 수 없다.

그렇다면 학생운동은 끝난 것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학생운동은 시대상황의 산물이지 젊은 대학생 개개인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절차적 민주화가 성취된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80년대식 운동을 기대하는 것은 학생운동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그런 만큼 시대가 요구하면 학생들은 다시 움직일 것이다. 다만, 그 방식은 80년대와 다르게 나타날 것이고, 기성세대의 요구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기성세대를 극복하는 방식으로 나타날 것이다.

시대가 요구하면 학생들은 다시 움직일 것이다

미래구상은 전국순례를 진행하면서 그 일환으로 다른 사회운동단체들과 협력하여 광주참배단을 조직하였다. 우리 순례단 일행은 서울에서 출발한 광주참배단과 합류하여 5·18국립묘지를 참배하면서 다시 한 번 27년 전의 광주를 생각하였다. 그리고 광주항쟁의 현재적 의미를 되새겨보았다.

한국전쟁과 분단의 구조가 해소되지 않는 한 해방 후 한국현대사가 미완성인 것처럼 한국의 민주주의가 완성되지 않는 한 광주항쟁 역시 미완의 것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광주는 여전히 미완의 상태로 존재하는 현재 진행형의 항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 전진 코리아

전진 코리아는 코리아의 전진을 위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코리아를 전진시킬 주체는 누구이고, 방략은 무엇이며,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목표는 무엇으로 설정하고 있을까? 전진 코리아와 손학규의 관계는 어떤 것일까? 여러 가지로 궁금하던 차에 전진 코리아 집행부를 만나게 되었다.

미래구상을 준비하면서 많은 사람과 단체를 만났지만 전진 코리아를 만나지는 못했다. 그 배경에는 아마도 손학규라는 특정 인물과 전진 코리아의 관계가 작용했는지도 모르겠다. 손학규라는 인물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구상이 특정 인물 중심의 정치운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부 정치인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보도 역시 작용했다. 그러나 막상 만나보니 보도로 알려졌던 내용은 사실과 달랐고 우리는 즐거운 분위기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진 코리아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건국대 경제학과 최배근 교수와는 오래 전부터 알고 지냈다. 일전에 최 교수로부터 전진 코리아에 대하여 이야기를 전해 듣고 순례중 광주에서 집행부 3명을 만났다. 우리가 순례중이어서 서울로 갈 수 없는 상황에서 이들 집행부 역시 광주항쟁주간에 광주로 온다고 하니 만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전진 코리아는 최배근 교수 외에 대우 근무경험을 가진 김윤과 디시 인사이드의 김유식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데 만나는 자리에는 김윤 외에 이왕배 운영위원과 정영훈 변호사가 동행했다. 몸이 불편한 관계로 최배근 교수는 참석하지 못했다. 광주에 도착한 다음날인 5월 19일 우리가 묵고 있는 코리아나 호텔에서 만났다. 미래구상에서는 김승국, 김종현, 정대화 세 사람이 참석했다.

서로가 대선국면의 선수(?)들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좋은 인연 때문인지 만나자마자 이야기는 본론으로 깊이 들어갔다. 김윤 대표가 먼저 전진 코리아에 대하여 우리가 궁금해 할만한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요지는 언론보도가 인물 중심으로 편향적이라는 것이었다.

전진 코리아는 한나라당 소속의 손학규라는 인물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손학규 전 지사의 한나라당 탈당과 일정한 관계를 갖게 되었고, 그것으로 인해 일정한 인연을 맺게 된 것일 뿐 손학규와 전진 코리아의 관계는 그 이상의 것이 아니라고 했다. 전진 코리아의 이러한 생각은 이들이 초기 활동과정에서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던 문국현, 정운찬, 박원순 등과도 소통을 진행해 왔다는 사실로 뒷받침되었다.

이날 만나서 들은 이야기와 전진 코리아의 토론회에서 발표된 자료를 토대로 판단해보면 전진 코리아는 전문경영인, 개혁정치인, 시민사회의 인사들이 중심이 된 새로운 정치를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합리적인 노동운동가도 포함되었다. 현재 참여하고 있거나 참여를 교섭중인 인사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지만 여기서는 거론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전진 코리아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알게 되었고, 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알게 되니 전진 코리아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더구나 언론으로 보도된 손학규와의 관계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이들이 특정인을 위한 조직이 아니라 운동적 관점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만나서 대화하고 소통한다는 것은 이래서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진 코리아 집행부 3인과의 만남은 시종 유쾌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약간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시대를 고민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 물론, 한미FTA에 관한 이야기에서는 막히는 부분이 있었다. 약간의 열띤 논쟁도 했지만 더 진행시키지는 않았다. 첫 만남이기도 했고 정책토론회 자리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점에 대해서는 추후의 과제로 남겨두자고 했다.

통합 전의 미래구상이 시민사회의 흐름을 받고 있고 통합과 번영이 70년대 긴조세대를 반영하고 있다면 전진 코리아는 80년대 운동의 정신에 더해서 경제와 개방에 대한 새로운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는 점이 특이했다. 대우 소속으로 10년가량 우크라이나에서 활동하면서 한국 바깥에서 한국과 세계를 본 김윤 대표의 경험이 많이 녹아 있는 견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을 가다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시대를 고민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은 더욱 그렇다. 내가 갖지 못한 장점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까지 더하니 의미가 더 커진다. 단점보다 장점을 보면서 장점의 누적적 축적을 통해서 단점을 해소하는 과정이 새로운 사회를 준비하는 자세일 것이다.

이야기는 다음의 만남을 기약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이날의 만남을 각자가 속한 단체에 전달하기로 하는 동시에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의미 있는 행사를 공동으로 추진하자고 했다. 김윤 대표가 아이디어를 정리해서 제안하기로 했다. 우리는 함께 호텔을 나와 햇살 환한 거리에서 악수를 하며 헤어졌다. / 정대화

덧붙이는 글 | 전국순례 방문지역 5월 26일 울산(현대자동차 방문 등) 5월 27일 포항(포항공대 교수 간담회 등) 5월 28일 안동(대선토론회 등) 5월 29일 대구(경북대 교수-영남개혁21 간담회 등) 5월 30일 대전(대학교수 간담회-충남대, 목원대 등) 5월 31일 천안(시민사회단체 간담회 등) 6월 01일 서산 홍성(시민사회단체 간담회 등) 6월 02일 전주(문국현 사장 강연 등) 6월 03일 익산 김제(시민사회단체 간담회 등) 6월 04일 청주(충북대/서원대 교수 간담회 등) 6월 05일 원주(토지문학관 박경리 선생 방문 등) 6월 06일 충주(건국대 교수 간담회 등) 6월 07일 춘천(정동영 강연(추진중) 등) 6월 08일 강릉(강릉대/관동대 교수 간담회 등)6월 09일 속초(전국순례 평가회 등) 6월 10일(귀경 및 순례단 일정 종료) 6월 13일(평택 간담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