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볼산을 출발한 버스는 예수의 고향인 나사렛 쪽을 향하여 달리기 시작했다. 다음 관광예정지는 가나지역과 첫 번째 기적 기념교회였다. 가나는 나사렛에서 티베리아로 가는 길목, 나사렛 북동쪽 7km 지점에 있는 작은 도시다.
다볼산에서 가나로 가는 길. 낮은 구릉지역을 넘고 넘어 달리는 창밖으로 푸른 초원과 풀밭이 펼쳐진다. 작은 도시가 자리 잡은, 역시 별로 높지 않은 구릉지역으로 접어들자 길가에 기념교회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가나에 도착한 것이다.
작은 도시였지만 도로를 달리는 차량들의 통행량은 상당히 많은 편이어서 큰 길가에 버스를 세워놓고 조심스럽게 길을 건넜다. 시가지는 도로 아래쪽의 낮은 지역으로 넓게 펼쳐져 있었다.
길을 건넌 우리 일행들이 골목 입구에 들어섰다. 그때 길가 가게에서 나온 건장한 남자 한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아랍어로 우리들에게 인사를 한다.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손짓과 웃는 표정이 상당히 친근감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는 가이드에게도 뭐라고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가이드도 그를 잘 알고 있는지 역시 웃으며 손을 흔들어 인사를 나누고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나올 때 자기네 가게에 꼭 들러 달랍니다."
이스라엘에 살고 있기 때문일까? 상술이 보통이 아니었다. 관광을 마치고 나올 때 자기네 가게에 들러 가도록 미리 찜을 해놓는 솜씨가 그랬다. 유대인들의 상술을 배웠을까? 유대인들의 상술은 세계적으로 소문난 수준이 아니던가.
주변이 주택가인 골목길 한가운데에 상당히 커다란 바윗돌이 방치되어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꼭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골목 안으로 들어서자 가까운 곳에 교회가 자리 잡고 있었다.
건축 양식은 이스라엘 지역의 다른 교회들과 많이 비슷했지만 앞쪽의 양쪽 지붕이 뾰족하게 솟아있는 것과 지붕 위의 조각상이 인상적이었다. 현재의 이 교회는 1879년에 프란치스코 교회에서 성경 신약 요한복음 2장 1절 12절 중 혼인잔치에서 예수가 물로 포도주를 만들었다는 구절의 혼인잔치가 열렸다고 전해지는 곳의 터를 매입하여 1881년에 세운 교회라고 한다.
성경에 의하면 예수가 40일간의 금식 후에 그의 어머니와 제자들과 함께 초대받은 이곳 가나의 한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지자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잔치 손님들에게 마시게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런데 이 혼인잔치에서 행한 기적이 예수의 생애에서 첫 번째로 행한 기적이어서 그것을 기념하여 세운 이 교회를 첫 번째 기적교회라고 부르는 것이다.
교회 내부로 들어서자 그리 넓지 않은 교회엔 마리아 상으로 보이는 어린아이를 안고 서있는 여인상이 세워져 있고 앞쪽에는 예의 제단이 마련되어 있었다. 특이한 것은 지하실 바닥에 고대 유대인들의 유적과 함께 그들이 새겨 놓았다는 아랍어 문자가 남아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역시 고대인들이 사용했다는 돌로 만들어진 포도주 항아리가 보존되어 있어서 예수 당시의 포도주항아리를 연상케 했다.
그런데 기적을 행한 현장인 가나라는 이름은 오늘날 최소한 3개의 마을이 같은 이름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가나(KAFR KANNA)는 티베리아길의 나사렛 외곽지역이라는 바로 이 지역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교회를 둘러보고 밖으로 나왔다. 바윗덩어리가 있는 예의 좁은 골목길을 지나 입구로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들어갈 때부터 우리일행들을 찜(?)해 놓고 반기던 아랍인 가게 주인이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 저 가게 앞의 태극기 좀 봐요? 저 가게주인 참 대단하다."
모두들 그의 손짓을 바라보며 가게 앞으로 다가가다가 앞장서 걷던 여성 일행 한 명이 놀란 듯 감탄을 한다.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바로 태극기였다. 가게입구 출입문 앞에 커다란 태극기가 비스듬하게 걸려 있었던 것이다.
모두들 눈을 동그랗게 떴다. 태극기라니, 머나먼 이국땅의 작은 가게 앞에서 태극기를 만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낮선 모습이라면 우리나라에서라면 당연히 높은 곳에 걸어놓는 것이 태극기인데, 이 가게에서는 가게입구 출입문 옆에 걸어 놓았다는 것이었다.
이 아랍인 가게 주인은 이곳을 많이 찾는 한국인 관광객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이런 상술을 발휘했을 것이다. 그러나 뻔히 속 보이는 상술임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반가워하는 것은 이곳이 우리나라에서는 너무나 머나먼 이국땅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아랍인 가게주인의 상술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우리일행들이 가게 안으로 우르르 몰려 들어가자 어느새 준비해 놓았는지 붉은 포도주가 담긴 예쁜 컵이 모두에게 돌려지는 것이었다.
"나는 술을 못하기 때문에 포도주도 안 되는데..."
술이라면 지레 겁을 먹는 여성일행이 두 손을 내젓는다. 그러자 가게 주인이 가이드에게 뭐라고 한마디 한다. 그러자 가이드가 나섰다. 이 포도주는 술이 아니라 알코올 성분이 전혀 없는 포도즙이라는 것이었다.
마셔보니 정말 그랬다. 약간 시큼 달콤한 것이 여간 맛이 좋은 게 아니었다. 가게에서 준비해 놓은 포도주들은 알코올 농도가 약간 짙은 것에서부터 전혀 없는 것까지 다양했는데 우리들에게 내놓은 것은 그냥 포도즙이었던 것이다. 가게 주인은 커다란 병을 앞에 내 놓고 마음껏 마시라고 권한다. 정말 친절하고 자상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아랍인 가게주인의 친절과 능숙한 상술은 효과가 매우 높았다. 이 가게에 들어간 일행들은 거의 모두 상당량의 기념품들을 구입했기 때문이다. 근처의 다른 가게들은 파리를 날리고 있었는데 이 가게엔 우리 일행 외에 다른 손님들도 연이어 들어오고 있었다.
아랍인 가게주인의 상술과 친절이 빚어낸 결과가 틀림없었다. 여행이 계속되는 동안 몇 군데의 가게들을 더 들르게 되었지만 이 후로 어느 곳에서도 이 아랍인만큼 능숙한 상술을 구사하고 친절한 사람은 만날 수 없었다.
가게에서 기념품들을 사들고 밖으로 나오자 이웃가게 주인들이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거리는 여전히 많은 차량들로 붐비고 있었지만 조용하고 평화로운 모습이다. 도로 아래편으로 보이는 시가지에는 여기저기 둥근 돔 지붕이 바라보이고 하얀 색칠을 한 주택들도 보인다.
이 지역은 이스라엘에서도 흔하지 않게 다른 종교를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곳이라고 한다. 이 작은 도시에는 그리스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 교회, 일반 아랍인들, 아랍인 회교도, 그리고 중세 때부터 대를 이어 거주한 유대교의 유대인들이 함께 살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주택들의 모습에서도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고 한다. 자세히 살펴보니 주택가 대부분의 하얀 집들 사이로 몇 개의 타원형 돔이 솟아 있는 것이 보인다. 저 주택들과 사원, 그리고 교회들의 모습이 이 지역 특유의 거미줄처럼 엉킨 종교 간의 갈등을 극복하고 공존하는 평화로운 모습이었던 것이다.
다양한 인종과 종교, 그리고 삶의 방식이나 문화가 다른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방법은 그 지역, 또는 그 사회가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일 것이다. 어떤 특정 집단이나 종교, 인종이 자신들만의 가치를 내세우는 아집이 갈등과 혼란을 야기 시키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인간들의 끝없는 욕심으로 빚어지는 전쟁과 범죄, 죄악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 사랑과 평화의 이름으로 온 예수가 첫 번째 기적을 행한 장소에 세워진 .첫 번째 기적 기념교회.가 있는 가나지역의 평화롭게 공존하는 삶의 모습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특별한 모습이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월22일부터 2주간 북아프리카 이집트 남부 나일강 중류의 룩소르에서 중동의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까지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