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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일(토) 저녁 5시부터 늦은 밤까지 순천 동천 야외 공연장에서 놀이패 두엄자리 창립 20주년을 기념하는 ‘푸진 굿 푸진 삶 푸진 자리’ 공연이 약 300여명의 시민과 회원 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뜻깊게 치러졌다.
6월 2일(토) 저녁 5시부터 늦은 밤까지 순천 동천 야외 공연장에서 놀이패 두엄자리 창립 20주년을 기념하는 ‘푸진 굿 푸진 삶 푸진 자리’ 공연이 약 300여명의 시민과 회원 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뜻깊게 치러졌다. ⓒ 안준철
놀이패 두엄자리 회원들의 공연
놀이패 두엄자리 회원들의 공연 ⓒ 안준철
놀이패 두엄자리 창립 20주년이라! 그러고 보니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하는 것이 또 있다. 6월 항쟁이 바로 그것이다. 전교조의 전신인 전교협이 탄생한 것도 바로 그 해의 일이다. 1987년 그 해 순천의 6월은 뜨거웠고, 그 뜨거운 열기와 함성의 불씨는 그로부터 7년 전인 1980년 5월의 광주에서 날아온 것이었다.

그야말로 변혁의 시기였다. 강요당한 굴종과 침묵을 깨고 분연히 일어서기 위해 힘을 모아가던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당시 나는 첫 교단을 밟은 초임 교사였다. 어린 제자들이 데모 행렬에 끼어 있지 않나 살피러 시청 앞 광장에 나왔다가 민주화의 뜨거운 열기에 감염되어 그곳에 온 목적도 망각한 채 주먹을 불끈 쥐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신명나는 풍물놀이
신명나는 풍물놀이 ⓒ 안준철
풍물공연과 어우러진 춤사위
풍물공연과 어우러진 춤사위 ⓒ 안준철
그 무렵, 놀이패 두엄자리는 순천 YMCA 건물 지하실에서 외래문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퇴색해가는 우리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과 공동체 삶을 지향하는 시민문화예술 단체로서의 소중한 첫 걸음을 내딛는다.

'두엄'이 무엇인가? 똥오줌과 풀무더기와 짚더미가 뒤섞이고 엉키고 켜켜이 쌓인 것이 아닌가. 그러니 개인의 화려한 출세나 성공만을 꿈꾸는 사람들은 결코 '두엄자리'가 될 수 없다.

물론 두엄의 용도는 거름이다. 자본주의가 심화되면서 사람보다도 돈이 먼저인 삭막하고 팍팍해진 세상을 다시 인정과 문화로 기름지게 하기 위해서는 거름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두엄자리다.

올해로 스무 돌을 맞이하는 놀이패 두엄자리의 대표를 맡고 있는 천정영씨는 1987년 당시 고등학교 까까머리 학생이었다고 한다. 시민사회문화단체가 20년의 세월을 지역에서 활동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 있었을까? 그는 스스로에게 묻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이 뛰노는 모습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이 뛰노는 모습 ⓒ 안준철
어울마당
어울마당 ⓒ 안준철
"그건 아마도 '두엄자리'의 역사와 전통을 마련한 선배님들과 그 뜻을 이어가려는 후배들, 그리고 항상 두엄자리를 사랑해주고 응원해주신 여러 시민단체 회원님들과 순천시민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두엄자리'가 기꺼이 지역과 시민을 위한 거름이 되고자 했을 때 순천시민들도 그들을 위한 거름으로 존재해온 셈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공생의 관계인가! 놀이패 두엄자리에서 상쇠를 맡고 있는 강병우씨의 회고의 말에도 그런 공생의 논리가 느껴진다.

"솜털 보송보송한 20대 초반에 두엄과의 인연이 어느덧 불혹을 향해 달려갑니다. 청춘의 희로애락을 두엄의 품안에서 겪어 살아냈고 두엄의 기운으로 이쁜 각시도 얻고 두엄할매 점지 받아 토끼 같은 새끼들 낳아 오순도순 가정도 일궜으니 두엄에 진 빚은 도대체 언제 다 갚을지 모르겠네요."

푸진 굿 푸진 삶 푸진 자리
푸진 굿 푸진 삶 푸진 자리 ⓒ 안준철
놀이패 두엄자리 창립 20주년 기념 공연 '푸짓 굿 푸진 삶 푸진 자리'는 순천시 조곡동 농악단의 길놀이를 시작으로 성대한 막이 올랐다. 이어 축하공연은 황월어린이 공연단의 난타 공연, 민요와 판소리, 풍물패 '벗울림'의 영남 사물놀이 등의 순서로 이어져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축하공연이 외부인의 찬조출연으로 이루어진 공연이라면 어울마당은 30여명의 두엄자리 회원들이 꾸민 그야말로 푸지고 신명나는 자리였다. 윤미라 회원의 남도민요와 판소리를 시작으로, 두엄자리 '푸아세'의 진도설북놀이, 이수근 회원의 문동북춤, 그리고 공연자와 관객이 하나로 어울어진 대동풍물판굿이 이어지면서 잔치마당의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그런데 왜 하필 푸진 굿, 푸진 삶, 푸진 자리일까? 풍물굿의 미학은 '푸진 것, 나누는 것'이라고 양진성(임실 팔봉 굿보존 회장)님은 말한다. 그의 말을 더 들어보자.

"돈이 푸진 것이 아니라, 쌀이 푸진 것이 아니라, 사람이 푸지게 모여야 하고, 말도 푸져야 하고, 술도 푸져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삶과 마음이 제일로 푸져야 합니다. 그 푸진 것들이 모인 사람들 모두의 것으로 나눠지는 곳이 판이고, 나눠지게 하는 것, 그것이 풍물굿입니다."

한편, 공연장 주변으로 시민과 어린이를 위한 체험마당 부스가 설치되어 눈길을 끌었다. 떡치기, 전래놀이, 판화 찍기, 솟대 만들기, 압화 만들기 등의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한없이 밝아보였다. 특히 엄마의 손을 잡고 따라 나온 어린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주변 자연경관과 흥겨운 가락에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만 같았다.

그러니 어찌 하늘이 감동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행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끝날 때까지 금방 비라도 내릴 듯 하늘이 잔뜩 흐려 있었지만 하늘의 도우심으로 가방 속에 챙겨온 우산을 펴지 않아도 되었다. 오히려 구름 낀 흐린 하늘이 그늘을 만들어주어 푸진 굿 푸진 삶 푸진 자리가 가을날처럼 서늘해서 좋았다.

밤이 깊어지면서 자리를 뜬 시민들이 더러 있었지만 아예 무대로 뛰어 나가 덩실덩실 춤을 추며 신명을 더해가는 시민들도 많았다. 잠시 후, 강변에 드리워진 어둠 속에서 놀이패 두엄자리가 걸어온 20년의 역사가 환히 영상으로 드러났다. 어둠이 내리면 그 어둠으로 인해 밝아지는 것이 있음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지나온 20년 기념 영상을 함께 보며 환호하는 회원들
지나온 20년 기념 영상을 함께 보며 환호하는 회원들 ⓒ 안준철
놀이패 두엄자리가 지나온 행적이 그랬으리라. 거름이 필요한 곳에 거름이 되어주고자 기꺼이 거름이 되어 살다보니 스스로의 삶도 기름지게 되었으리라. 하지만 그 노정이 어찌 순탄하기만 했겠는가. 안내 책자에 적힌 회원들의 '덕담글'을 읽어보니 그 스무해의 과정이 만만치 않았음을 알것도 같다.

총무님이 카페에 올려놓은 '추억의 똥지'를 보며 YMCA 지하에서 함께 지냈던 많은 사람드를 기억해냈습니다. '전화 놓고 좋아하던 남숙 누나', '인도떡 영희', '외톨박이 숙지 누나', 고인이 되신 뜨나 마나 새우눈 운영이 형! 그리고 스물 세 살 청춘이었던 예전의 제 모습도. 모두들 두엄자리를 너무 사랑했습니다. 지독하게 회원들을 좋아해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 돌아본 길은 아름답지만 길을 해쳐가는 사람들은 아직도 힘듭니다. 행사를 준비하느라 모자라는 시간을 따로 내야했을 천대표, 황 총무 그리고 정회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굿판에서 만납시다. (이수근 회원)


그랬으리라. 그런 고된 시간들을 감내해 내고 입을 모아 끝내 '꿈의 찬가'를 부를 수 있었으리라. '우그러지고 찌그러지고 가슴 문드러진 모습에도/우뚝우뚝 키운 나무에 사랑의 열매 키우고/으라샤 으라샤 산들도 세워'서.

놀이패 두엄자리 천정영 대표와 그 첫 씨앗을 함께 뿌린 김기홍 시인
놀이패 두엄자리 천정영 대표와 그 첫 씨앗을 함께 뿌린 김기홍 시인 ⓒ 안준철
이날 행사의 막바지에 낭송한 김기홍 시인의 놀이패 두엄자리 20주년 창립을 기념하는 축시를 소개하며 글을 마칠까 한다. 놀이패 두엄자리와 회원 가족들의 무궁한 발전과 행복을 비는 마음 간절하다.

꿈의 찬가

김기홍(노동자 시인, 두엄자리 창립회원)

드디어 오시는구나, 정령들이여
거세게 때로는 부드럽게
따스한 바람 시원한 바람 앞세워
빗줄기 뒤 세워 오시는 소리 너무나 커서
지상에 딛는 발자욱 자욱마다
연초록 생명들 쑥쑥 불러내고
풀포기 나무 가지마다 천상의 꽃들 피워내는구나
마음으로 보라고 느끼라고
형형색색 색색의 향기 난장에 풀어놓는구나
정령들이여 이제는
꿈속에서도 님들 오는 향기 느끼나니
때로는 절망의 옷을 걸치고
때로는 좌절의 옷을 둘러쓰고
우그러지고 찌그러지고 가슴 문드러진 모습에도
우뚝우뚝 키운 나무에 사랑의 열매 키우고
으라샤 으라샤 산들도 세워
바람 풀고 물도 풀어
마름 가슴 죽은 강도 넉넉하게 살려내는 걸
중모리 중중모리 휘모리로 살려내
끝내 바라로 가는 길 일러주는 걸
마음마다 들어앉아 하나 되어 가는 길
늘 그 밑으로 밑거름 되신이여
자애로운 빛이여, 그대는
신명나는 세상을 향해 함께 가는 벗이여
희망이여 형제도 없는
우리 사랑의 씨앗이여

덧붙이는 글 | 지금 놀이패 두엄자리(대표 천정영)는 순천 YMCA 건물 지하실을 빌려 쓰던 처지에서 벗어나 순천시 인제동에 자체 연습장을 가지고 시민들을 위한 탈춤, 풍물, 민족극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시민, 학생, 노동자, 주부 등 각계각층을 대상으로 어렵게만 느껴지기 쉬운 우리의 풍물굿과 민요, 탈춤을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울 수 있도록 정기적인 강습을 진행한다. 이 외에도 전통혼례의 풍속을 계승하여 현대적인 감각에 맞게 발전시킨 새로운 민속 혼례마당을 비롯하여 정월대보름굿, 대동놀이마당 등을 정기공연하고 있으며, 회갑, 칠순, 집들이 등 각종 잔치마당에도 출행하고 있다. (연락처 061-742-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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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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