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에 저의 동양학 강의를 수강하던 학생들한테서 위키백과(위키피디아)를 요새 미국 대학생들이 참고문헌으로 많이 이용한다고 들었습니다.
"빠르고 쉽고 간단하거든요." 그 중 한명이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위키피디아란 게 뭔가 찾아봤습니다. "누구나 편집에 참여할 수 있는 공짜 백과 사전"이라고 스스로 내세우고 있더군요. 전문성도 교육정도 지능도 상관없이 누구나 편집할 수 있는 백과 사전이라니 얼마나 민주적인가요!
당시 한국 전쟁에 대해 연구하는 중이었기에 위키피디아의 한국전쟁에 관한 페이지를 좀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결과는 기막히는 것이었습니다.
위키피디아의 '한국전쟁'에는 한국인이 없었다
한국전쟁은 "민주 우방과 공산 세력사이의 대결"이었으며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분단을 '제안'하여 한국인들을 도왔다"고, "한반도를 무차별 폭격한 것은 오로지 한국인들을 '구하기' 위해서였다"고, 또 "미군들이 아주 용감하게 공산당을 쳐부수었다"는 식의 아주 길고 장황한 '논문'이 실려있었습니다.
한편 용감한 미군들이 중공군·인민군, 심지어 소련군까지 무찌르는 무용담과 무기 매니아들의 무기류에 관한 아주 전문적인 토론(예를 들어 셔먼 탱크·P51 무스탕기·F-86 세이버 젯트기 등)이 끝도 없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황당한 것은 미국의회가 전쟁을 선포한 적이 없기 때문에 한국전쟁은 사실상 전쟁이 아니었으며 단지 '충돌' 또는 '치안' 사건이었을 뿐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마치 미국의회만이 유일한 판단의 주체인 듯 말입니다.(저런 저런, 그 비참한 난리통을 겪은 한국인들에게 "당신들은 전쟁을 겪은 적이 없으니 착각말라"고 알려줘야 겠네요.)
위키피디아의 '논문'을 읽는 동안 이런 모든 이상한 것들보다 더 이상한 점을 한 가지 발견했는데 그것은 한국전쟁 논의에서 한국인이 완전히 빠져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한국전쟁동안 한국사람들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거나 아무런 주요 역할도 하지 않은 듯 말입니다.
남북한의 군인들, 그리고 김일성과 이승만이 간혹 등장할 뿐이며 한국 사람들은 단순히 수백만명의 '사망자'라는 통계수치로만 존재합니다. 아주머니들, 어린이들, 아버지들, 농부들, 마을 사람들 같은 보통 한국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반면 미국인들은 매 문단마다 행위주체이며 영웅이며 구원자로 등장합니다.
대부분 미국인이거나 유럽인인 위키피디아의 '편집자'들은 한국전쟁에 관한 글에 한국인은 포함시킬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한국전쟁은 첫째도 둘째도 모두 미국 군인들과 미국군의 막강한 역량, 그리고 미국의 대외정책을 논의할 하나의 제목일 뿐입니다. 한국인들이 누구보다도 많은 희생을 겪었고 누구보다도 많은 전사자를 낸 전쟁을 보는 시각치고는 참 이상한 시각이지요.
몇 주간의 첫 '전투'... 고치고 지우고 더하고
그러나 미국에서 오랜 세월을 산 저는, 바로 그 시각이 대부분의 미국인이 한국과 한국전쟁을 보는 시각이며 세계를 보는 시각이란 것을 알고 있습니다.
미국인들은 미국의 이해관계와 관련해서만 다른 나라에 관심을 둘 뿐입니다. 대부분의 위키피디아 '편집자'들이 이런 가정 하에서 글쓰기를 시작하기에 위키피디아 논문들은 아마추어 미국인 역사가들의 '삽질'이나, 정서적으로 미숙한 국수주의적 애국자들의 '탁월한 성능을 가진' 미제 살상무기에 대한 논의, 공산주의자들의 '잔학함'에 대한 과장된 이야기들, 그리고 운좋게도 미국의 폭격을 받아 해방된(?) 한국인을 비하하는 시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우리학교 학생을 비롯하여 미국 전역의 고등학생·대학생들이 한국전쟁에 대해 배우는 것이 고작 이런 뒤틀린 시각이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습니다. 그보다 더 나쁜건 이를 토대로 영어권 대학생들이 리포트나 기말논문을 써대고 있을 것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위키편집자들의 편협함과 옹졸함, 외국인 혐오증과 무지함과 싸우고자 위키피디아 편집에 뛰어들었습니다.
막상 편집을 시작하자 위키피디아란 곳이 사람들의 편협하고 잘못된 시각을 널리 전하는 것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자기와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지쳐빠지게 만드는 것도 가능한 곳이란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우선 저는 백여군데가 넘는 곳에 수정을 가했습니다. 일본의 식민지 수탈에 대한 언급이 전무했기에 이에 대한 설명을 가했고, 미국의 지지를 업고 이승만 정권이 1940년대말 자국민 만여명에 대한 민간인 대량학살을 자행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부연했습니다.
또한 북한의 침공은 냉전중이었던 당시 스탈린과 공산주의자들의 조종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한반도 내의 상황과 통일문제에 더 큰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첨가했고, 한국전쟁당시 미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다는 중요한 사실을 써넣었습니다.
몇주간이나 시간을 들여 틀린 부분은 고치거나 지우고 실례가 모자란 곳은 더하고 중요한 역사적 사실들을 챙겨넣으면서 중요한 공헌을 한 듯한 마음에 뿌듯했습니다.
일차적으로 이 작업이 끝난 후 한동안 잊어버리고 있다가 몇주후 같은 웹사이트를 다시 찾아가보았습니다. 남들이 나의 훌륭한 공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자는 심사였죠.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렇게 시간을 들여 백여군데 고쳐놓은 게 거의 대부분 원상복구가 되어있었고, 미국은 무조건 옳고 북한은 무조건 사악하며 남한은 미국이 구해줘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존재로 돌이켜져 있었습니다. 거기다 "미제 대량살상무기 너무 멋지죠" 따위의 삽질성 엔트리도 거의 복구되었고요.
도로아미타불이 되어버린 나의 '편집투쟁'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어요. 다시 돌아가 처음 제가 고쳤던 부분을 다시 되살리고, 내용을 더하고, 참고문헌도 더 소상하게 밝히고, 다른 '편집자'들과 의견을 달리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아주 상세히 논리적인 설명까지 덧붙였습니다.
정말 우스꽝스러웠던 것은 제가 해당 논문에 '왜곡된 시각'을 첨가하고 있다는 항의와 비판을 받았던 것입니다. (주관적인 시각, 'POV'라고 줄여부르는 point of view는 위키피디아에서 크나큰 죄로 여겨집니다.)
위키피디아의 한국전쟁 논문에 대문사진으로 실려있던 것이 미해병대가 인천에 상륙하는 장면이었는데 제가 "한국전쟁을 대표하는 사진으로 부적절하다"고 지적하자 다른 편집자 한 명으로부터 "잘났소, 이미 지나간 역사를 공평하게 만들려고 하다니 당신 참 어리석구랴, 역사적 사실은 사실로 받아들이쇼"라는 감정적인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오마이뉴스>에 보낼 이 기사를 쓰면서 같은 사이트를 다시 가봤더니 그 사진은 그대로 걸려있고 "미해병대가 격렬한 전투를 벌이며 인천에 상륙하고 있다"는 사진제목이 써있었습니다.
저는 제목을 "미해병대 인천 상륙장면, 당시 적군의 저항을 거의받지 않았음"이라고 고쳤습니다. (당시 인천에 있던 북한군의 숫자는 수백명이 채 안됐고 상륙전 주민들이 대부분 잠들어 있던 시간에 융단폭격을 했기 때문에 상륙당시 거센 저항이 있었을 리가 없으나, 미국인들은 인천상륙작전이 마치 대단히 용감하고 지능적으로 놀라운 작전이었던 양 묘사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한 시간도 못되어 사진설명은 누군가가 "미해병대 인천에 상륙하다"라고 다시 바꾸어 놓았습니다.
위키피디아에 글쓰는 사람이 전부 저에게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반대하는 사람의 수가 훨씬 많았습니다. 두번째로 크게 수정을 보자 한동안 그대로 있는가 했더니 한두달 후에는 결국 제가 손보기 전의 상태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일부 제가 쓴 부분이 남아있기는 했지만 그 페이지를 자주 가지 않았던 동안 야금야금 지워져 거의 형체를 알아볼수 없게 되었더군요.
북한군은 조금씩 조금씩 '공산주의자'로 바뀌었고, 노근리는 더이상 '민간인 학살'이 아니고 사실여부도 확실치 않은 돌발 '사건'인 것으로 되었으며, "한국인들이 총에 맞거나 폭사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주장"이 있는 것으로 되었습니다.(공격의 주체를 확실히 표시하여 미군들이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들을 '학살'했다고 쓰면 일반적으로 '왜곡된 시각'으로 간주되며 따라서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지금도 때로 강박적인 제 성미를 못이겨 그 한국전쟁 논문이 있는 페이지를 가봅니다. 제가 쓴 문장은 항상 조금씩 조금씩 미국중심적이고 미국을 변호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있고 행동주체로서의 한국인들의 이야기는 지워져있습니다.
'지식의 민주주의'는 항상 좋기만 할까
요즘은 저는 학생들에게 위키피디아식의 지식형성과 미디어의 한계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위키피디아는 '함께 협동하여' 지식을 창출하는 것이 가치롭다고 주장하지만, 저는 위키피디아는 사실 지식의 민주주의란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산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지식의 민주주의가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도 말할 권리가 있다'라는 뜻이라면 말이죠.
저는 학생들에게 자기 의견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너희들과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너희가 옳다는 뜻도 아니다라고 합니다.
바보들이 모여서 말도 안되는 얘기를 떠들어대고 있을 때 다른 바보들의 의견을 또 더한다고 해서 그들의 의견의 질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라고, 지능지수(IQ) 70짜리 둘이 모여서 IQ 140이 되듯이 합해지는 것이 아니지 않냐라고 합니다. 비판적인 사고와 진지한 배움이 없으면 너희들의 의견도 '위키바보'들의 것과 다를 것이 없다고 못박습니다.
정치학자 글렌 틴더는 "사람들에게 마치 그들이 생각하는 것 같은 착각을 주는 사람은 사랑을 받지만 사람들을 실제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은 미움을 받게 마련이다"라고 했습니다. 틴더 박사도 위키피디아의 논문들을 편집하는 데 수많은 시간을 들인 것이 틀림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시지푸스의 돌을 굴려올리는 모습을 보시고 싶은 분은 위키피디아로 가서 제가 말씀드린 논문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저의 위키이름은 'hongkyongnae'입니다.
덧붙이는 글 | 데니스 하트 기자는 미국인으로, 미 오하이오주 켄트주립대학교 정치학 교수이며 오마이뉴스 해외통신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