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한국 음식을 처음 접한 것은 미국에서 한국어 강의를 수강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국어 교수님께서 수업시간에 조그맣게 자른 구운 김을 가져오셔서 학생들에게 돌리셨어요. 선생님께서 그게 "해초(seaweed)"라고 말씀하시자마자, 학생들은 대부분 얼른 내려놓고 맛도 보지 않으려 했습니다. 몇 명은 역겨운 표정을 지어보이기까지 하더군요. 작은 조각을 하나 집어 맛보니 놀랍게도 아주 고소하고 맛있었습니다. 그때까지 먹어본 음식 중에 그와 비슷한 맛이 나는 것도 없었습니다. 제가 맛있게 먹는 걸 보고 옆에 있던 학생들이 모두 자기 것을 건네주었습니다. 그 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한국 음식은 한국과 저를 연결하는 중요한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을 만날 때는 항상 음식을 서로 나누었고 그를 통해 한국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음식 문화를 배우면서,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와 비교함으로써 미국 문화와 제가 자란 보통 미국 가정의 문화도 객관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음식과의 첫 만남... 맛있잖아 한국어 수업 시간에 일어났던 작은 사건은 지금까지도 유효한 세 가지 교훈을 주었습니다. 첫째, 한국 음식은 맛있다는 것. 둘째, 색다르고 낯선 음식이라고 해서 맛도 보지 않으려는 소심한 태도는 어리석다는 것. 셋째, 미국 사람들은 대개 다른 문화를 배우고 자신을 변화시키는 데는 인색하면서도 미국 문화를 외국에 전하고 가르치는 것은 즐겨한다는 것입니다(미국인에게 세계화란 일방적인 미국화를 의미한답니다).나중에 한국에 가서 살게 되면서 한국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되었지만, 저는 모든 외국인이 그러하듯 우선 한국 음식에 적응해야 했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냐 하면, 미각을 넓히고 미국식과는 다른 식사예절을 익히고 음식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야 했습니다. 저보다 먼저 한국에 와서 살고 있던 미국인 친구 하나가 한국 음식은 대부분 엄청나게 매운데, 적응하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다고 제게 조언해주었습니다. 한 가지는 매일 김치를 조금씩 먹어서 서서히 매운 맛에 길이 드는 법이고, 다른 하나는 죽으나 사나 김치를 계속 먹는 방식 즉 아침에도 김치를, 점심에도 김치를, 저녁에도 김치를, 그리고 간식도 물론 김치로 먹는 방법이라고요. 그럼 한 열흘 정도는 음식 지옥에 있는 것 같지만 그러고 나면 한국 음식에 중독되든지 죽든지 둘 중의 하나가 되는데, 어떤 결과가 되든지 간에 더 이상 김치는 문제가 아닐 거라고 농담을 덧붙였습니다. 저는 이 두 번째 방식을 택했습니다. 한국의 '시골인심'... 미국이었다면? 당시 저는 시골에서 살고 있었는데, 촌동네로 가끔 산책을 나가서 농부들이나 마을 사람들과 만나 한국어를 연습하곤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과 낯을 익히자 사람들은 종종 저를 불러 점심을 나누거나 간식을 주곤 했습니다. 처음에는 저는 그저 얘기나 나눌 생각이었는데 농부 아저씨들은 한 번도 예외 없이 제게 음식을 대접해주셨고 그래서 포기김치, 밥(보리밥·조밥·콩밥 등)과 반찬, 막걸리를 참 많이 얻어먹었습니다. 함께 둘러앉아 먹는 소박한 나눔을 보면서 저는 한국 음식뿐 아니라 사람 사는 도리, 예의범절, 해학과 웃음, 일상생활의 방식 등 한국 사회의 여러 면모를 배웠고 한국인의 인정을 느꼈습니다. 아저씨들은 제가 어떤 반찬을 특히 잘 먹는다 싶으면 그 반찬을 슬쩍슬쩍 제 앞으로 밀어주곤 했습니다. 그래서 밥을 먹다 보면 맛있는 반찬이 어느새 다 제 앞에 모여 있었어요. 어렸을 때 우리 어머니가 그랬던 것을 빼면 미국에서는 제가 밥 먹는데 이렇게 유심히 보고 마음을 써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한국에서는 손님을 식사에 초대했으면 손님이 식사를 잘 하는지 끝까지 지켜보는 것이 관습인 것 같았습니다. 또 한 번은 길을 가고 있는데 아홉 살이나 열 살 쯤 되어 보이는 어린이 예닐곱 명이 우르르 몰려왔습니다. 각기 자기소개를 하고 인사를 하더니 '아저씨'는 차가 있는지, 텔레비전이 있는지, 몇 살인지 등등 질문을 했습니다.(처음에는 '아저씨'가 누군가 했어요. '왜 우리 외삼촌에 대해 물어보는 거지?' 그러다 '나를 보고 아저씨라고 하는구나'하고 한참 만에야 알아들었어요.) 그 중 한 명이 "아저씨 우리 집에 놀러가실래요?"하고 초대해서 다 같이 그 어린이네 집으로 몰려갔습니다. 집에는 마침 부모님이 계시지 않았는데, 그 어린이는 부모님이 안 계신다고 해서 초대한 손님을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지 부엌에 들어가 밥 한 그릇과 '알타리무(총각무)' 김치 한 접시를 담아내왔습니다('알타리무' 김치는 지금도 제가 제일 좋아하는 김치입니다). 어린이들은 "외국인들은 매운 거 못 먹는다면서요?"하고 신기해하며 제가 맛있게 먹는 것을 구경했습니다. 이런 친절함을 미국에서 기대할 수 있을까요? 만약 아홉살짜리 어린이가 생판 모르는 사람, 그것도 외국인을 집에 데리고 왔다면 아마 이웃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했을 것이고 남의 집에 함부로 따라 들어간 외국인은 가택침입죄로 체포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나의 입맛은 정치적이다 한국에서 오래 살다보니 한국인들은 한국 음식을 통해 제게 한국 문화를 소개하려고 할뿐만 아니라 한국 음식으로써 타아를 구분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어디까지나 저는 외국인이고, 제가 한국 음식을 먹는 것은 제가 한국과 한국 문화를 받아들인다는 다분히 정치적인 표현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저를 음식점에 데리고 갈 때 주로 가는 곳은 갈비집, 삼겹살집 등 고기 전문점입니다. 미국 사람은 무조건 고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그런데 저는 사실 채식주의자입니다). 미국인들이 한국인이면 무조건 김치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겠죠. 음식과 민족 정체성 사이엔 사실 굉장히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재미 한국학자인 엄영래 박사의 논문에 따르면, 많은 미국인들에게는 외국 음식을 경멸하고 더럽고 이상하다고 보는 일종의 외국인 공포증이 있습니다. 미국은 이민으로 이루어진 다민족사회임에도 프랑스·독일 등 유럽 중부의 음식이 오랫동안 표준 음식이었고 이탈리아 음식·멕시코 음식·중국 음식 등이 주류 음식 문화에 편입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의식의 저변에 깔린 이런 외국인 혐오증 때문에 미국 사람들이 한국 음식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만난 미국인들이 거의 모두 한국 음식에서 불쾌한 냄새가 난다고 불평했습니다. 저는 "치즈랑 소시지 같은 음식을 먹는 우리는 남의 음식 냄새에 불평할 자격이 없다"고 농담삼아 대답합니다. 같은 음식이라도 누군가에겐 향기롭고 다른 사람에게는 혐오스러울 수 있는 법입니다. 한국 음식 중 미국인들이 냄새 얘기를 제일 많이 하는 것이 김치와 된장입니다. 여지연 노스웨스턴대학 교수의 저서에 의하면, 미군과 결혼해서 미국에 온 한국 여성들이 미국인 남편의 몰이해로 인해 한국 음식에 대한 향수에 많이 시달린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미국인 남편들이 집에서 한국 음식을 아예 만들지 못하게 하거나 김치를 냉장고에 넣지 말라고 한다고 합니다. 언젠가 한번은 학교에 김밥을 가지고 갔더니 일부 학생들이 미심쩍은 듯 손으로 집어서 코에다 대고 냄새를 맡아보며 "이 속에 뭐가 들었어요?"라고 물어보더군요. 성격이 이러한 사람들은 색다른 음식뿐만 아니라 다른 문화·종교·인종에 대한 수용과 관용이 많이 모자란 사람들입니다. 다는 아니지만 많은 미국인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이죠. 음식을 보면 사람을 알 수 있다... 관용 정신 부족한 미국인 그렇다면 한국 음식을 널리 알리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일단은 미국 사람들이 스스로 미지의 음식에 대한 공포를 버려야하겠지요. 얼마 전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에게 처음 김치를 맛보시게 했을 때 아버지는 "양말 냄새가 난다"고 하시더니 곧 익숙해져서 종종 김치를 찾으셨고 맥주 안주로도 많이 드셨어요. 한국 음식엔 사실 뛰어난 점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채소류의 조리방법이 아주 뛰어나고, 양념이 다양하고, 맛이 산뜻하고 복합적이고, 한 끼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조리한 반찬이 갖추어 나오며, 건강에 좋고, 맛들이면 중독성이 깊은 음식입니다. 제가 아는 유대계 평화운동가 한 분은 세상에 한국 음식처럼 맛있는 음식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분은 채식주의자라 데치고 삶고 굽고 부치고 절이고 볶아서 갖은 양념으로 맛을 낸 온갖 나물 반찬이 입맛에 딱 맞는다고 했습니다. 특이하게도 그 분에겐 한국 음식을 소개해준 사람도 없고 한국인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우연히 맛을 본 한국음식에 반해서 뉴욕의 한국식당에 가끔 혼자 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LA나 뉴욕시를 제외하면 맛있는 한국 음식점이 참 귀합니다. 제가 사는 곳에도 한 시간 이내 거리에 한국 음식점이 몇 군데 있지만 맛이 없다고 소문이 나서 한국 사람들은 거의 가지 않습니다. 한국 식품점 주인아저씨는 "전문 조리사들이 아니고 그냥 아줌마들이 밥을 해서 그래요"라고 하십니다. 또 다른 문제는 일반적으로 외국인이 한국음식에 익숙해지려면 맛을 습득해야(acquire) 한다는 것입니다. 습득 과정이 필요한 대표적인 음식이 김치와 된장입니다. 저도 된장에 맛을 들이는 데 몇 년이 걸렸습니다. 습득하는 과정이 거의 필요 없는 음식도 있는데, 시금치 무침·도라지 무침·무생채, 콩나물 무침·두부구이·군만두·불고기·갈비·비빔밥·빈대떡·상추쌈·자장면·막걸리 등은 외국인들도 처음부터 좋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반면 떡·미역국·깻잎·생선 매운탕(저는 죽어도 못 먹어요!)·해물전골·보신탕 등은 외국인들이 쉽게 맛을 들이지 못하는 음식들입니다. 미국 어딜 가든 이제는 슈퍼마켓 한 코너에서 작은 병에 든 김치를 팔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맛은 진짜 포기김치의 깊고 시원하고 아삭아삭하고 매콤한 맛은 아닙니다. 잘게 썬 배추에 인공 조미료를 듬뿍 넣고 고춧가루를 조금 넣어 순하게 만든 막김치이거나, 채썬 양배추와 홍당무 등에 설탕과 식초를 넣어 새콤달콤하게 만든 퓨전김치 같은 것들입니다. 한국 식품점에 가면 단지만한 큰 병에 담은 김치를 팔지만, 김치만 사러 한국 식품점에 일부러 찾아가기는 쉽지 않고, 맛도 지나치게 강하며 인공조미료가 너무 많이 들어 있고, 양도 보통 미국 사람에게는 부담스럽습니다. 한국에서처럼 다양하고 맛있는 김치를 슈퍼마켓에서 살 수 있는 날이 곧 왔으면 좋겠습니다. 미국인이면 누구나 아는 표현으로 "음식이 곧 사람이다(You are what you eat)"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종종 쓰는 "신토불이"라는 말과 비슷하지요. 저는 이 표현을 조금 확대해서 "먹는 음식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마음이 닫힌 사람은 색다른 음식도 먹으려 하지 않습니다. 음식이 정체성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듯이 음식을 나누는 것은 타인과 타문화에 대한 수용과 관용의 표현이 될 수 있습니다. 옛날에 시골의 농부 아저씨들이 김치와 막걸리를 저와 나누면서 제 마음을 열었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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