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聖衣)라는 것은 죽은 예수의 시신을 감쌌던 천을 가리킨다. 다른 말로는 성(聖) 수의(壽衣)라고도 부른다.
이 수의는 신약성서에 두 차례 등장한다. 예수가 죽고 나서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이 그 시신을 고운 베로 싸서 무덤으로 옮긴다. 그리고 안식일 다음날 베드로와 제자들이 예수의 무덤에 가보니 그 안에는 수의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이 수의는 그 이후에 에데사 왕국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에데사는 현재 터키의 동남부 우르파 지역에 해당한다.
에데사에 보관되던 수의는 이후에 다시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지고, 십자군 전쟁 때 프랑스에서 가져갔다가 현재에는 이탈리아 토리노 성당에서 보관중이다. 흔히 말하는 예수의 얼굴이 찍혀있다는 '토리노 수의'가 바로 이 수의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 수의는 세로 4m, 가로 1m 정도 크기의 천이다. 그 천에 찍혀있는 사람의 모습을 분석한 결과, 키는 약 180cm, 몸무게는 약 75kg 정도의 성인 남자라고 한다. 물론 이 사람의 인종까지 정확하게 판별해낼 수는 없었다.
토리노 수의가 실제로 2000년 전에 죽은 예수의 시신을 감싼 천일까. 현재까지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서로 다른 4개의 권위있는 연구소에서 이 수의에 대해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법을 적용했다. 그 결과는 모두 이 수의가 1260-1390년경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약간의 오차를 적용한다 하더라도 이 수의는 예수가 죽고 나서 천 년도 더 지난 후에 만들어진 것이다. 바티칸에서도 이 결과를 공식적으로 받아들였다.
이 수의는 전유럽 성당에 널려있다는 수많은 예수의 유물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유물일 것이다. 토리노 성당에 안치되기까지의 과정도 복잡하다. 터키의 동남부에서 콘스탄티노플로, 그리고 프랑스로. 수의는 어떻게 이런 경로를 거쳐서 이탈리아로 들어온 것일까. 이 과정을 연결했던 것은 바로 성당기사단이다.
토리노 성의를 노리는 일련의 범죄들
성당기사단은 죽고 나서 더욱 바빠졌다. 약방의 감초처럼 온갖 역사미스터리 소설에 얼굴을 내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소설들은 모두 성당기사단이 몰락하면서 어딘가에 숨긴 보물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 보물의 종류는 '성배'에서부터 가톨릭 교회를 뒤흔들 비밀문서까지 다양하다.
훌리아 나바로의 <성 수의 결사단>에서는 성당기사단의 보물로 예수의 수의를 설정하고 있다. 다른 미스터리 소설에 비하면 비교적 점잖은 편에 속하는 보물이다. 적어도 교회의 교리에 대항하는 유물은 아니기 때문이다.
<성 수의 결사단>의 무대는 수의가 보관되어 있는 이탈리아 토리노 성당이다. 이 성당에서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한다. 다행히 조기에 진화했기 때문에 피해는 그다지 크지 않다. 다만 화재 현장에서 남자의 시신이 하나 발견된다. 이 시신에는 뭔가 이상한 점이 있다. 혀가 절단되어 있고, 양손의 지문이 모두 뭉개져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신원을 파악할 방법이 없는 인물이다.
토리노 성당은 과거에도 수차례 화재와 절도 미수 사건이 발생했던 곳이다. 그때마다 용의자와 범인들을 잡아들였지만, 이들에게서 범죄와 연관된 말을 한마디도 들을 수 없었다. 모두 혀가 없었고, 지문도 없는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토리노 성당만을 노리고 집요하게 반복되는 일련의 범행들. 어쩌면 이 방화와 절도는 토리노 수의의 역사와 연관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수사팀은 한편으로 성의의 역사를 추적해간다. 수사관들도 대부분 성의는 가짜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역사를 따라가다 보니까 어딘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토리노 수의는 1260-1390년경에 제작된 물건이다. 십자군 전쟁이 끝난 것은 1291년, 성당기사단 체포령이 떨어진 것은 1307년이다. 탄소연대 측정의 결과가 정확하다면, 토리노 수의는 십자군 전쟁이 끝날 무렵 또는 그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다. 성당기사단이 이 수의를 만들었을까?
훌리아 나바로는 <성 수의 결사단>에서 이 문제에 대한 소설적 해결을 제시한다. 작가는 2000년의 시간, 이탈리아와 소아시아의 공간을 종횡무진한다. 그러면서 토리노 수의에 관한 모순된 이야기들을 한데 끼워 맞추고 있다.
성의는 성당기사단의 보물이었을까
<성 수의 결사단>은 예수의 수의라는 성유물을 소재로 한다. 성유물이라고 하는 것은 성인의 사체 및 신체 일부 또는 생존시 성인의 몸 가까이에 닿았던 물건을 일컫는다. 이중에서도 성인이 순교시에 접촉했던 물건이라면 그만큼 더 귀중한 유물로 취급받을 수 있다.
예수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예수가 형을 받았던 십자가, 예수의 손과 발을 뚫었던 못, 예수의 머리에 씌워졌던 가시관, 예수의 허리를 찔렀던 롱기누스의 창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물론 예수의 시신을 감쌌던 수의도 마찬가지다.
현재 유럽의 수많은 성당에는 이 유물들이 있다. 이 유물들의 대부분은 온전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조각난 상태로 일부만 보관되어 있다. 이 많은 유물들이 과연 진짜일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현재 유럽과 소아시아에 퍼져있는 수많은 성유물 중에서 진품이라고 확인된 것은 몇 개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상할 정도로 분량이 많기도 하다. 미국의 작가이자 독설가였던 마크 트웨인은 이를 가리켜서 '예수가 못 박혔다고 하는 십자가 조각을 모은다면 전함 한 척은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유물이 유럽으로 넘어오기 시작한 것은 아마 콘스탄티누스 대제 시절일 것이다. 콘스탄티누스의 어머니였던 헬레나는 열광적인 성유물 수집가였다고 한다.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를 떠나기도 했다는 헬레나는 그곳에서 많은 성유물을 모았고, 그 유물들은 순식간에 각지로 분산된 것이다.
십자군 전쟁 당시에는 성당기사단도 여기에 한 몫을 했다. 예루살렘에 틀어박혀 있던 성당기사단은 성유물처럼 보이는 물건들을 챙겨서 아크레 성으로 옮겼고, 예수의 수의처럼 보이는 천을 프랑스로 옮겼다.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성당기사단은 최후를 맞았다. <성 수의 결사단>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이 수의가 성당기사단의 보물이었다면, 그리고 소설에서처럼 수의를 보관하는 데 성공했다면, 성당기사단은 이제야 편안하게 잠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 <성 수의 결사단> 1, 2. 훌리아 나바로 지음 / 김수진 옮김. 랜덤하우스중앙 펴냄.
댄 브라운의 <다 빈치 코드>를 전후로 해서, 로마 가톨릭을 둘러싼 역사 미스터리 소설이 끊이지 않고 출간되고 있습니다. 관련 작품들을 소재별로 분류해서 한 편씩 소개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