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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에서 왼쪽은 장우성 화백이 1973년에 그려 현재 표준으로 통하는 현충사의 영정이며, 오른쪽은 정형모 화백이 1978년에 완성하여 제승당에 모신 영정이다. 얼굴의 형태가 상당히 비슷한데, ‘큰 키에 제비턱과 붉디붉은 용의 수염에 범의 눈썹’이라는 주변의 고증에 의한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고증이라기보다는 칭송에 가깝다.

ⓒ 현충사
오른쪽 그림은 1932년에 현충사를 중건(重建)했을 때 청전 이상범(靑田 李象範) 화백이 그려 봉안한 것인데, 고증이 맞지 않는다 하여 장우성 화백의 것으로 교체되었다. 그러나 직접 얼굴을 본 사람의 상세한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고증을 따질 수 있겠는가. 그림의 인물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교체한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오히려 이상범 화백의 것이 사실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한 가지 흥미로운 기록을 소개할까 한다. 당시 이순신의 측근 가운데 삼가(三嘉)의 현감을 지낸 고상안(高尙顔)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고상안이 이순신을 표현하기를, "세상에 넉넉히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용모이며 입술이 위로 들려 있다"라고 하였는데 가장 정확한 고증이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그런 충무공의 영정을 바라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고상안이 원균을 "거칠고 사나우며 무모한데다 인심마저 잃고 있다"며 평하였다는데, 그것 역시 그냥 흘릴 것이 아니다.
#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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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권 출판을 목표로 하는 재야사학자 겸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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