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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은 1948. 12. 1. 제정된 법률이다. 헌법이 제정된 때가 1948. 7. 17. 이고, 구형법이 제정된 때가 1953. 9. 18, 민법이 제정된 때가 1958. 2. 22. 이니 국가보안법은 형법이나 민법과 같은 기본 법률보다 훨씬 오랫동안 대한민국과 함께 했고 조만간 환갑을 맞게 되는 장수법률이다.

참여정부의 출범 초기에 나는 이 법률이 곧 폐지될 것이라고 기대했고, 우여곡절 끝에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한 이후에는 국가보안법 폐지는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대통령까지 나서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는 말을 한 이후에는 드디어 국가보안법이 폐지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해 연말 국가보안법 폐지가 실패로 돌아간 이후에도 그저 허울만 남아있는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남과 북을 잇는 철도가 개통되는 세상에서 50년 전에 만들어진 낡은 법으로 인해 더 이상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최근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어 47일째 단식투쟁을 하고 있는 이시우 작가의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 드는 생각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어이상실" 그 자체였다.

문제된 사진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비무장지대와 미군기지, 한미연합훈련을 담은 사진들인데 아무리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더라도 그것이 도대체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미군기지와 비무장지대를 찍은 사진이 왜 선전. 선동에 해당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설령 그러한 사진이 북측의 선전. 선동에 사용되었다면, 이용당한 우리의 현실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어떤 이유에서든 우리나라의 영토에 다른 나라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비정상적이고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 아닌가 말이다. 예컨대 우리나라의 영토에 일본이나 중국의 군대가 주둔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듯이.

지난 달 평양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모든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지만 지금까지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김책 공업종합대학 도서실이다. 서가의 앞쪽에는 두툼한 표지로 된 김일성, 김정일 저작선집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는데, 서가의 뒤쪽으로 들어가보니 20-30쪽의 팸플릿만도 못한 조잡한 책들만 꽂혀 있었다.

모두 주체사상이나 맑스레닌주의와 관련된 책들. 혹시 다른 종류의 책이 있는가 살펴보니 과학 기술과 관련된 책 이외에 인문학이나 예술과 관련한 책은 찾아볼 수 없었다. 호머, 일리아드, 오딧세이 등 몇 권의 서양고전이 전부였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머릿속이 아득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날 나는 일기장에 "이곳은 상상력이 막혀있는 곳이다"라고 적었다.

아무리 많은 장점을 가진 사회라 하더라도, 하나의 생각 이외에 다른 생각을 할 수조차 없도록 정보와 지식을 통제한다면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곳은 결코 올바른 사회라고 할 수 없다. 북한에서 주체사상 이외의 다른 책을 읽지 못하도록 정보와 지식을 통제하는 것만큼이나. 남한에서 미군기지의 문제를 다룬 사진을 보도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것도 한심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그 사진작가를 구속한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사회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자유민주주의란 타인이 나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그 다름을 극복하는 수단으로서 대화와 토론을 지향하는 이념인데, 타인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대뜸 구속부터 해버리다니 북한과 무엇이 다른가.

이시우 작가의 구속은 국가권력이 자의적인 잣대로 개인의 사상과 창작의 자유를 어디까지 침해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남북을 잇는 철도길이 열리고 대통령 후보들의 방북이 이어지는 세상에, 국가보안법이라는 낡은 법률의 잣대를 들이대 사진작가를 구속하다니 부끄럽지도 않은가. 참여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훌륭한 성과가 있었다"는 코미디 같은 자화자찬은 집어치우고, 남은 임기동안만이라도 국가보안법이 악용되는 사례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이며, 사법부는 더 늦기 전에 이시우 작가를 석방하여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이유정 변호사는 법무법인 자하연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시우#국가보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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