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중앙도서관 앞에 앉아 가만히 보니까 연세대학교가 참 아름답네요. 우리 한열이도 이런 교정에서 계속 공부를 해야 했는데, 광주 망월동에 묻히고 말았네요."
이한열 열사의 모친 배은심씨가 새삼스럽다는 듯 말했다. 8일 오후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앞 민주광장에서 열린 '고 이한열 열사 20주기 추모제' 자리에서였다.
배씨의 등뒤에는 아들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아 피 흘리고 있는 대형 걸개 그림 걸려 있었다. 걸개 그림에는 배씨의 심정을 표현하는 듯한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한열이를 살려 내라!'
배은심씨 "학생들에게 감사"
배씨는 가끔씩 눈물을 보였고, 추모제에 참석한 연세대 학생 200여명이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봤다. 그리고 이보다 훨씬 많은 학생들이 배씨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고 도서관을 오고갔다.
배씨를 알아보는 학생도 많았고, "저 아주머니 누구야?"라는 학생도 적지 않았다. 행사가 열린 도서관 앞 민주광장과 연세대학교 백양로에는 87년 민주화 운동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전시됐다. 그리고 이한열 열사의 뜻을 기리는 펼침막도 여러 장 걸렸다.
어떻게 보면 6월 항쟁 20주년을 맞은 사회적 분위기와 달리 썰렁한 풍경이었다. 87년 민주화 운동에서 '이한열'이라는 이름이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해보면, 그리고 그가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86학번이란 걸 상기해보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배씨의 생각은 달랐다.
"아들 한열이는 정말 행복할 것 같다. 내일이 20주기라고 이렇게 후배들이 검정옷 입고 행사를 마련해주지 않았나. (학생들에게) 감사하다."
그런 배씨에게 한 기자가 "요즘 학생들이 이한열 열사를 잘 모르던데, 아쉽지 않으세요?"라고 물었다.
이에 배씨는 "세월 가면 잊는 게 사람 아닌가"라며 "한 두 해도 아니고 20년이 지났다, 많은 학생들이 기억해주길 바라는 건 욕심"이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연세대학교 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기말 고사 기간이라 연세대 중앙도서관에는 학생들로 북적였다. 도서관에는 빈자리가 없어 학생들이 1층 출입구에서 길게 줄을 섰다.
이날 도서관을 찾은 법학과 06학번 오빛나라씨와 정혜인씨는 모두 이한열 열사를 알고 있었다. 이들은 "길을 가다가 잠시 추모제를 지켜봤는데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공학계열에 다니고 있는 07학번 정금교씨도 "학과실에 이한열 선배의 사진이 걸려 있고, 연세대 학생이라면 입학하면서 선배들에게 이야기를 들어 그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특히 내가 종종 들르는 화학공학과의 깃발은 87년 당시 이한열 열사의 피가 묻어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적지 않은 연세대 학생들은 최근 언론이 "연세대 학생들이 선배 이한열을 잊었다"고 보도한 것에 대해 불만을 나타냈다.
"연세대 학생을 '보수 꼴통'으로 몰지 말라"
인문학부에 다니는 도진욱씨는 "언론에서는 마치 현재 연세대 학생들이 이한열 선배를 깡그리 잊고 있다는 듯이 보도했다"며 "우리가 이한열 선배를 잊은 게 아니라 언론이 흥미를 끌기 위해 그렇게 보도를 한 것"이라고 불쾌감을 나타냈다.
국문학을 전공한다는 김모씨는 "언론의 조작"이라는 표현을 썼다. 김씨는 "우리가 386세대나 그 윗 세대 분들에게 젊은 세대가 많이 읽는 소설가 김영하를 모른다고 '문학에 문외한'이라 비난하면 그것이 합당한 지적인가"라며 "오늘 같은 추모식에 수천 명이 참가하고 데모를 해야만 이한열 열사의 뜻을 기리는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이어 김씨는 "요즘 학생들이 취업에 집중하고, 사회 운동에 관심이 덜한 것은 전체 사회의 분위기지 연세대 학생들만의 문화가 아니다"며 "우리를 '보수 꼴통'으로 몰지 말라"고 말했다.
이날 추모제에서 사회를 맡은 최하얀 연세대 상경대학 학생회장도 "물론 학생들이 오늘 같은 날에 관심을 갖고 많이 참석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학생들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최씨는 "사회와 학생들의 다양한 소통방식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연세대 분위기는 20년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건 연세대만 그런 게 아닐 것이다. 어쨌든 달라진 환경 속에서 이한열 열사는 다시 연세대 도서관에 등장했다. 화가 최병수씨가 그린 가로 7m, 세로 10m의 대형 그림으로 말이다.
도서관 벽에 걸린 이한열 열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문득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