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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저녁 포털에 올라온 많은 일간지들은 거의 비슷한 논조의 기사를 전하고 있다. 대개 <시인 고은, "盧대통령 언어는 대통령의 언어 아니다"(동아일보)>는 식의 제목을 붙이고, 이날 오전 광화문문화포럼에서 고은시인이 강연 후 질의에 응답한 내용을 기자실명으로 기사화하고 있다.

보통 기사에서 따옴표 안의 괄호는 전체를 인용하기에 너무 길었을 때 축약을 하거나, 전후 관계에 있어서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 기자의 판단으로 문맥을 보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때문에 괄호는 그 안의 문구가 기자의 판단이 포함된 것임을 독자에게 알리는 부호로 간주해도 좋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기사의 경우 각 언론사들이 소속기자들의 실명을 내세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기사 구성은 물론, 괄호로 처리된 문장이 거의 유사하다.

'(파격적 언어라는 측면에서) 경향, 동아, 한국, 한국경제, 국민일보, 서울경제'
'(품위 있는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동아, 한국경제, 국민일보, 서울경제, 문화일보'


경향신문의 한윤정기자, 한국일보의 장병국기자, 국민일보의 정철훈전문기자, 동아일보의 김지영기자, 한국경제의 박신영기자, 서울경제의 강동효기자, 문화일보의 엄주엽기자 등은 50여명의 인사들이 격주간으로 모여서 아침시간에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초대해 강연을 듣는 그 포럼의 '아침공론 마당'을 취재한 것일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기자의 주관이 포함되는 괄호안의 문구까지 생각이 똑같을 수 있는 것일까?

약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되었다는 강연에서 고은 시인이 정확히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는 현재로서 확인할 수 없다. 전체적인 맥락을 소개하는 기사도 없다. 가장 먼저 기사를 전한 것으로 보이는 연합뉴스 이준삼 기자의 기사는 다행히 연설 일부가 동영상으로 포함되어 있다.(http://tvnews.media.daum.net/part/lifetv/200706/13/yonhap/v17076909.html)

문제가 된 질문 이전의 강연으로 보이는 동영상 내용 중에 고은 시인은 니체의 말을 인용하며 이렇게 주장한다. "대화야말로 진리를 만든다.". 대통령에 대해 이야기했다는 기사들은 이렇게 전한다. "대통령의 언어는 위선적 품위나 품격이 필요하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강연 중에 있었던 '진리'와 '위선'의 간극. '진리'를 추구해 가는 대화를 위해 '위선'이 필요하다는 모순적 시인의 언어에 주목하는 기사는 어디에도 없다. 단지, 또다시 대통령을 꾸짖는 구절이 등장했음이 반가워 '원로', '진보'라는 수식어를 시인에게 덧붙일 뿐이다.

고은시인께서 "귀는 없고 입만 필요한 시기"의 '뜨거움'에 대해서도 말씀을 하셨다기에 앞의 모순적 언어 구조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시기를 청하고 싶지만 직접 여쭤볼 방도는 없다. 어쩌면 언어를 다루는 입장에 있는 시인께서도 대통령의 언사가 맘에 차지 않을 법도 하다.

하지만 다시금 되묻고 싶은 것은 자신 있게 자기 이름을 올리고 기사를 적어간 기자들이 전체적인 강의를 경청하고, 정확한 강연의 요지와 핵심을 토대로 독자들에게 사실을 전달했는가 하는 점이다. 각자가 쓴 기사라기에는 너무나 일치하는 판단이 놀랍고, 혹시라도 <연합뉴스>의 기사를 받아서 쓴 기사라면 '관행'이라고 하더라도 기자의 이름은 빼는 게 옳은 것이 아닌가?

#고은#대통령#광화문 문화포럼#언어#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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