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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 가게를 연 아이들
떡볶이 가게를 연 아이들 ⓒ 이선미
아침부터 해가 쨍쨍합니다. 부안초등학교 주차장에 천막을 하나, 둘 치는 장터 도우미 남자분들의 이마에는 땀이 물처럼 내립니다.

살인적인 더위에 숨이 꽉꽉 막히는 6월 16일. 춘천시 후평동 꾸러기어린이장터가 열렸습니다. 어린이장터는 꾸러기어린이도서관에서 여는 동네 축제로 아이들이 쓰지 않은 물건을 가지고 나와 직접 팔아보는 어린이벼룩시장입니다.

평소 노는 토요일에 열리던 어린이 장터가 아이들과 상의 끝에 학교를 가는 토요일로 바뀌었습니다. 장터 참가자 이외에도 학교 아이들이 모두 구경하고, 장사가 더 잘되려면 학교를 가는 토요일이 낫다는 것이 아이들의 의견이었습니다.

12시가 되자 아이들은 책가방을 짊어지고 하나 둘 운동장으로 쏟아져 나옵니다. 제일 먼저 장터 자리를 맡으려고 돗자리에 장터 간판에 물건을 든 아이들이 부리나케 달려옵니다. 장터 시작도 하기전에 얼굴은 이미 벌겋게 익었습니다.

순식간에 천막 아래는 120여명의 장터 주인들로 꽉 찼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은 장터가 처음이라 자리를 쉽게 찾지 못하고, 누나, 형들에게 밀려 어슬렁 거립니다. 5-6학년 아이들은 벌써 프라이팬, 고추장, 생수, 설탕 등을 챙겨와 떡볶이 국물을 만들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몰려와 신기한 듯 쳐다보자 아직 준비가 안되었으니 요리가 다 되면 오라며 느긋한 여유도 부립니다.

한편 그 옆에는 시작도 하기 전에 울상인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네일아트와 페이스페인팅을 하기로 한 친구들은 30도의 더위 속에 15분만에 개점 휴업을 선언했습니다. 더위속에 아이들이 가만히 앉아 네일아트를 받는 것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아이들과 함께한 떡메치기
아이들과 함께한 떡메치기 ⓒ 이선미
대신 먹는 장사를 선택한 아이들은 눈코뜰새없이 바빠졌습니다. 레모네이드를 손수 만드는 소정이네 가게부터 얼음이 동동 뜬 미숫가루 가게, 떡볶이 가게까지 아이들은 먹거리부터 챙기고 장터 물건들을 구경했습니다.

이 날 장터 도우미를 했던 8명의 꾸러기어린이도서관 사서자원활동가들은 떡꼬치를 팔고, 손수 만든 천연비누를 팔아 도서관 후원기금을 마련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구연동화 선생님으로 계시는 권미영씨는 마이크를 잡고 아이들에게 장터 행사 설명을 해주고, 공부방 급식을 챙겨주는 박남숙씨는 떡꼬치를 아이들에게 팔았습니다.

풍선아트를 하시는 이경우씨는 전날 8시에 일을 끝내고 오셔서 늦게까지 장터 천막을 꾸밀 풍선꽃을 준비해주셨습니다. 동네 엄마들의 저마다의 능력으로 장터가 풍성히 채워지는 모습을 보니 절로 흐뭇해집니다.

"여러분, 여기를 보세요! 저기 나무그늘 보이죠? 지금 그 곳에서 떡메치기를 한대요.
친구들 직접 떡메도 쳐보고, 맛있는 인절미를 먹어봐요!"

권미영씨의 광고 말이 끝나자, 아이들이 바람같은 속도로 나무그늘로 뛰어갑니다. 나무그늘 아래에서는 떡메치기를 준비한 자원활동가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몇번 어른들이 떡살을 치대고 아이들에게 떡메를 넘기자, 아이들은 "저요,저요!"를 외치며 몸을 떡판 앞으로 한발자국 더 내밀었습니다.

떡메치기 추임새를 넣으며 아이들이 떡메를 치자, 정말 밥이었던 떡살이 점점 인절미처럼 변해갔습니다. 어느 새 떡살이 올라와 고운 콩고물에 버무려지자 아이들은 테이블 주위로 몰려들어 떡을 날름날름 집어 먹습니다.

떡메치기 옆에는 북아트 연구소에서 나와 아이들에게 '나만의 책만들기'를 진행했습니다. 손바닥 역사연표 책을 만들고 공룡이 튀어나오는 팝업북을 만들면서 아이들은 금세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평소 5월에 열리던 장터가 도서관 사정으로 6월에 열리자, 장터날 더위는 정말 살인적이었습니다. 천막을 치고 아이들을 그늘 아래에 모이게 했지만, 천막의 개수도 부족하고 햇빛이 너무 강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삐질삐질 땀을 흘리고 벌게진 얼굴을 갖고 아이들은 정말 즐거워했습니다. 아이들과 흥정을 하고 물건을 사는 동네 주민들도 덤으로 받은 물건을 갖고 좋아했습니다.

어느새 3시가 되어 가게가 하나 둘 사라지고 천막을 접고, 쓰레기를 청소하자 장터 도우미들의 얼굴이 홀쭉해졌습니다. 꾸러기도서관으로 올라가 에어컨 바람을 쐬자 다들 기진맥진하여 바닥에 누웠습니다. 우리 다음번에는 꼭꼭 5월에 장터를 열자는 말과 함께 힘들어 말도 못하는 자원활동가 엄마들을 보자, 정말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태양을 녹이는 아이들의 뜨거운 장터 열정, 그 불타는 장터 사랑이 있기에 오늘도 이 동네 축제는 성공적이었고 즐거웠습니다. 내년에는 정말, 5월에 지금보다 땀을 덜 흘리고 장터를 열어야겠습니다. 그 때까지 우리 친구들이 또다시 못쓰는 물건들을 모아놓고 장터를 기다렸으면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선미 기자는 춘천시민광장 부설 후평동 <꾸러기어린이도서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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