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일 어머님 모시고 지리산에 들어갑니다. 3년 전에 제가 한 보름 머물던 곳입니다. 정령치 아래 외진 계곡입니다. 수련을 마치는 날. 스승으로 모시게 된 도인입니다.
어머니 모시고 세 번째 하는 여행입니다. 이전의 두 차례 여행은 차라리 외출입니다. 첫 번째 외출은 대화스님 계시는 명상의 집에 부처님 오신 날 극도로 긴장하며 트럭에 어머니를 태웠었고 두 번짼 지난 주 장계장날 어머니를 바퀴의자에 모시고 장 구경 갔었습니다.
지리산 행은 일종의 치료여행입니다. 몸 치료도 몸 치료지만 심리적 위안을 드리기 위함입니다. 어머니는 줄곧 "백운역 구두영감"한테 가자고 노래를 불러 왔습니다. 아주 오래 전, 제가 시국 사건으로 수배생활을 할 때 어머니랑 둘이서 살았는데 두세 달에 한 번씩 이사를 했습니다. 어머니는 일종의 방패막이였지요.
늙으신 어머니와 살면 일단 주변으로부터 의심의 눈초리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부평 백운역 근처에서 두 달쯤 산 적이 있는데 역전에 작은 구두방 할아버지가 내 구두를 한 켤레 만들어 주었습니다.
소원이던 구두를 맞춰 아들 발에 신기게 된 것이 어머니는 대견스러웠나 봅니다. 발이 크다보니 발에 맞는 신발 구하기가 어려웠던 내 발에 딱 맞는 구두를 만들어낸 그 영감이 어머니 뇌리에 만능해결사로 각인되었나 봅니다.
아들 때문에 가슴 졸이던 나날을 보내시던 어머니에게 그 구둣방 영감은 한 줄기 빛이었나 봅니다.
"니 매형 당뇨병도 그 영감한테 갔더니 침 한번 놨더니 다 나았다더라."
"상봉동 큰 누나도 다리관절이 있었는데 그 영감이 엎드리라 카디마 주사 한번 놓으니까 나았다더라."
"그 영감한테 한번 가서 침 한번 맞으면 내가 걸을 수 있다더라."
"그 영감은 머리 한 가운데다가 침을 꽂는데 그라믄 피가 주루루 한 바가지는 흘러내리는데 그라고 나믄 거짓말처럼 싹 낫는대더라.”
"그 영감이 침놓으면 옷에 오줌도 안 눈다더라."
등등….
그 구둣방 할아버지를 밑절미로 하는 기적 같은 치유의 사례를 어머니는 끝도 없이 만들어 내는 것이었습니다. 오로지 한 번만 걸어 보고 싶다는 것과 하룻밤만 옷에 오줌 안 누고 자고 싶은 소망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달 가량 작전을 짰습니다.
- 백운역 구두영감이 구두만 잘 만드는 게 아니고 사람 병도 잘 고친다고 맞장구를 치고
- 더 기적적인 사례들을 창작해 내서 이야기로 만들어 프린트 해 드리고
- 그 영감은 죽고 아들이 지리산에 들어가서 사람들 병고치고 있다고 하고
- 그 도인과 내가 찍은 사진을 꺼내서 보여 드리고
- 지리산 도인이 된 그 아들은 자기 아버지보다 더 유명하다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관계자들과 의논하여 날짜를 잡았는데 그 날이 드디어 내일입니다. 일주일 정도 가서 머물 생각입니다. 날짜가 확정되고 나서 어머니에게 알리자 뛸 듯이 좋아했습니다.
그제는 고추밭 매러 완주군 소양집에 갔다 오면서 역시 어머니가 노래를 하는 호박돌을 사 왔습니다. 봐 두었던 옛가구 전문점에서 5만원 주고 호박돌을 사 온 것은, 콩을 갈아 콩죽을 만들 때나 들깨를 갈아 반찬을 만들 때마다 곁에서 보시던 어머니가 호박돌 타령을 해서입니다. 그것만 있으면 당신이 뭐든지 다 잘 한다고.
그래서 믹스기 대신 호박돌을 샀는데 마루에 놓으려고 하자 굳이 마당에 놓으라는 것입니다.
"부엌에서 일하다가 쪼르르 가서 호박돌에 갈아 오려면 마당에 놔야지 누가 마루에 호박돌 놓는다 카더노."
지리산 다녀오면 걸어 다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논에 갔다 오면 어머니는 부엌에서 내 밥도 하고 호박돌에서 두부도 만들고 마늘도 찧고 한다는 것입니다. 너무 황당하지만 차마 어머니 보는 데서는 웃을 수가 없습니다. 이 정도로 걷고 싶은 열망이 고조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햇감자를 캐서 삶아 먹었습니다. 파근파근한 햇감자 맛에 어머니가 감격했습니다. 호박돌을 가져와서도 어머니에게 좋은 선물을 가져왔다고 하면서 맞춰 보라고 했더니, "누가 걷게 나 해 주면 모르까 이제 늙어가지고 선물은 무슨…"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지리산 도사님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책을 한 권 꼭 읽고 오라는 전화였다고 거짓말을 했는데 어머니는 그 말을 곧이듣고 지금까지 책을 아주 잘 읽고 있습니다. 대화스님네 가서 가져 온 천수경 불경독송집입니다. 매일 매일 떠듬떠듬 천수경 독송 소리가 우리 집에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내일 출발을 앞두고 여러 가지 준비가 잘 되었다고 여겨집니다. 어머니 몸 상태와 의지가 아주 좋습니다. 그동안 내 나름대로 연구하면서 소리치료, 향 치료, 뜸 치료, 침 치료, 색 치료, 놀이치료를 해 왔는데 이번 여행에서 만능 해결사인 "백운역 구둣방 할아버지"로 투사되어 있는 어머니의 소망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어제 오늘 벗어 내 놓은 어머니 옷이 예닐곱 벌이나 되는데 장맛비에 잘 안 마릅니다. 방에 불을 때고 죽 늘었습니다. 말려서 다 가져가려고 합니다.
기도해 주세요.
똥오줌 실수와 걷는 문제에 대한 마음의 짐을 어머니가 내려놓으실 수만 있어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