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리산에 잘 다녀왔다. 7박 8일 동안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시간들이었다. 내가 돌아오는 날 서울에서 형님와 누이가 장계집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머니보다도 내 얼굴이 영 딴판으로 좋아졌다고 놀라면서 지리산에서 뭔가 수상한 일이 있는 거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을 정도였으니 흐뭇하기 짝이 없다.
의심받을 일이라고는 별 게 아니다.
우리 집 식구들은 어머니를 모시고 간 지리산 치료여행이 무슨 고행 길 나선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내 입장에서는 세 끼 밥 남이 해 주는 거 받아먹는 휴식기간이었다.
남이 차려주는 밥 세 끼를 앉아서 받아먹는 게 이렇게 편한 것인지 몰랐었다. 하루 세 끼를 뭘 해 먹을까 만날 걱정하다가 끼니마다 달라지는 식단과 갓 만들어진 싱싱한 반찬들. 어머니가 못 움직이신다는 이유로 방에까지 밥상을 들여다 주는 대접을 8일간 받았으니 내겐 그런 호사도 없었다.
세 끼 밥 챙기시는 이 세상 모든 손길들이 감사했다.
내가 봐도 거울 속 내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고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것이 영 딴사람 같다. 매일 따듯한 물에 샤워까지 하고는 비가 오면 음악 틀어놓고 책이나 보고 날이 개면 어머니 바퀴의자를 밀고 산딸기 따 먹으러 들판에 나가거나 선사님들과 선담을 나누었었다.
정령치(해발 1170m)에 올라가 발아래로 산자락을 세어가며 산책도 하고 어머니를 여기저기에 세워놓고 사진도 찍고 장날에 맞춰 운봉으로 내려와 시장 구경도 했다. 물론 어머니는 수련과 명상을 통한 치료를 매일 매일 했고 나는 밤 11시와 새벽 5시에 하는 좀 더 혹독한(?) 수련을 했으니 몸은 물론 정신까지 정령치 계곡물처럼 맑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곳에 온 다른 사람들도 많았는데 놀라운 일들을 많이 목격할 수 있었다. 기적 같은 일화들을 소개하는 것이 도리어 이 글과 그곳의 권위를 떨어뜨리지 않을까 싶어 생략한다. 그동안 그곳을 다니면서는 깊이 연구할 겨를이 없이 수련에만 치중했는데 이번에는 그곳 수련법의 원리를 깊이 있게 공부하게 되었다.
사부님은 여전히 정정하시고 여유로웠고 의통과 천안통을 잃지 않고 있었다. 도통하신 분들의 새로운 면모 하나를 본 느낌이다.
첫날.
어머니에 대한 어떤 정보도 갖지 않으신 선사님이 힐끗 어머니를 보고만 지나갔는데 내실로 나를 부르더니 근 한 시간 동안 어머니 몸과 영혼의 상태를 설명하고 대처방법을 일러 주었다.
외과의사와 정신신경과 의사 두 사람이 함께 섬세한 진찰을 하고서 하는 설명인 듯싶을 정도.
그제. 월요일은 지리산에서 내려온 지 만 이틀이 되는 날.
사부님은 "이틀 지나면 *****이 될 것이다"고 했는데 낮 동안 내내 그 말을 떠올리면서 정말 그렇게 되나 기다렸는데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넘어가나 보다 하면서 잊고 밤을 맞았는데 정확히 밤 9시경 어머니랑 잘 준비를 하는데 어머니에게서 그 일(?)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평소 같으면 크게 당황했겠지만 이날은 큰 반가움과 약간의 긴장감으로 어머니 손을 잡고 간절한 기도를 시작했고 다음날 새벽에 전혀 다른 어머니 모습을 보게 되었다. 무슨 말인지 자세하게 쓸 수 없음을 이해해 주어야 할 것이다. 글로 쓸 수 없는 일이다.
지리산으로 떠나는 날. "의료사고라도 나면 책임질 수 있는 곳이냐?"고 미심쩍어하던 형님은 여전히 어머니의 변화를 믿지 않는다. 기도와 정성, 그리고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 화사한 햇살이 얼마나 좋은 치료제인지를 모르는 소리다.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즐거운 나날이 얼마나 큰 치료효과를 내는지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믿는 대로 다 이루어지는 세상 이치는 기적도 신비도 아니다. 그냥 일상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