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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다르게 쑥쑥 키가 크고 몸무게도 몰라보게 늘어나는 아이들의 옷은 미리 사 놓을 이유가 없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중·고등학생이 되었으니 크면 얼마나 더 크고 체형이 바뀌면 얼마나 더 바뀌랴 하고, 작년 여름이 끝나갈 즈음 50% 이상을 세일 하는 바지를 사 주었다. 더구나 올해까지 입히려고 두 딸에게 각각 두 개씩을 사 주었는데, 1년 사이에 부쩍 살이 쪄버린 큰딸은 바지가 엉덩이에 걸쳐져 들어가지를 않았다.

그러니 전에 입던 옷들도 맞을 리가 없었고, 교복을 벗으면 갈아입을 옷이 없었다. 매일 같이 옷을 사달라고 졸랐지만, 우선은 덩치가 더 큰 동생 옷을 함께 입으라고 자꾸 뒤로 미루다가, 남편이 쉬는 날인 지난 토요일(23일) 온 가족이 의류할인매장으로 쇼핑을 갔다.

소금에 절인 오이지보다 더 짠 나는 작은딸까지 옷을 사주겠다고 나서는 남편에게 "쟤는 옷 많아서 안 사도 돼"라고 했다가, 삐친 작은딸을 남편이 억지로 구슬려 데려가는 참이었다. 이렇듯 지극히 현실적인 나와는 반대로, 남편은 배고팠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아이들에게 먹을 것도 잘 사주고, 아이들이 옷을 사러 갈 때도 쇼핑을 같이해 주는 인기 만점인 아빠다.

여름의 초입인데도 매장에는 벌써 할인 폭이 큰 옷들이 많았다. 서 있는 옷보다 누워있는 옷(세일하는 옷)을 선호하는 우리 가족인데 75%가량을 세일 하는 큰딸의 치마를 만원에 샀다. 이럴 때 우리는 얼마를 벌었는지부터 먼저 계산을 하는데 3만5천원을 벌었다.

옆 매장을 슬쩍 보니 작은딸에게 딱 어울릴만한 바지가 있었다. 입혀보니 아주 예뻤다. 그러나 그 옷은 신제품이라 세일을 하지 않는단다.

얼른 벗어 놓으라고 눈을 찡긋거리는데, "그까짓 거 세일 안 하면 어떠냐? 딱 어울리고 예쁜데 그냥 사줘"라고 남편이 호기를 부리는 바람에 쓰린 속을 부여잡고 사 주고 말았다. 마음에 쏙 드는 바지를 얻어 입은 작은딸은 내 쓰린 속과는 아랑곳없이, 좋아서 싱글벙글 어쩔 줄 모른다.

또 다른 매장에 들렀더니 오늘부터 전 품목이 50% 세일이란다. 이것 보라고, 괜히 저쪽에서 비싼 돈 주고 사지 않았느냐고 투덜대며, 이곳에서 본전을 뽑아야겠다고 다짐하는 내 눈이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큰딸의 반바지와 티셔츠, 또 내 반바지와 티셔츠, 남편의 남방, 작은딸의 티셔츠까지 모두가 반 가격이라 9만원을 벌었다.

가까운 마트에 가려는 나에게 이곳으로 오자고 했던 큰딸은 "엄마 여기 오길 정말 잘했지?"라며 모든 공을 자기 몫으로 돌리고 있고, "오늘 완전 짱이야" 하는 작은딸의 발걸음도 솜털 같다.

▲ 처음으로 사 본 가족 커플 티셔츠.
ⓒ 서미애
인제 그만 사고 집에 가자고 에스컬레이트를 찾는데, 이쪽 이벤트 매장에서 유명 메이커 티셔츠가 또 60%를 세일하고 있었다.

색색이 놓인 티셔츠를 만지작거리는 아이들을 보며 남편이 또 사주라고 했다. "그럼 우리 가족 커플로 각자 하나씩 사 입을까?" 했더니 아이들도 남편도 대찬성이다. 뚱뚱한 나는 검은색, 여성스러운 큰딸은 핑크색, 활동적인 작은딸은 파란색, 가무잡잡한 남편은 마땅한 색이 없어 연두색으로 골랐다.

매장 아줌마는 이렇게 다 큰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이 함께 옷을 사러오는 경우는 극히 드문데, 행복한 가족인 것 같다고 했다. 살면서 늘 행복이야 할까마는 기분은 좋았고 여기에서는 또 6만4천원을 벌었다.

이제 가족 커플티셔츠도 샀고, 일정한 금액을 산 사람에게 주는 사은품으로 피크닉 가방도 얻었으니 "올여름 휴가는 어디로 가느냐"고 아이들이 괜스레 떨자 남편은 텐트를 하나 사야겠다고 한다.

"여보세요.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겠네요."
"저것 봐라. 너네 엄마 저럴 줄 알았어."


기분이 좋으니 무슨 말이든 우습지 않을까? 그저 깔깔깔 웃으며 집으로 돌아오는데, 남편이 갑자기 어느 상가 앞에 차를 세웠다. 간판을 보니 예전에 남편 모자를 샀던 그 매장이었다. 얼마 전 이곳에서 산 모자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는데 잃어 버려서 똑같은 것이 있나 보려고 한다 했다.

그러나 똑같은 모자는 없고, 작은딸이 노랑 가방 하나를 집어들고는 마음에 쏙 든다며 어깨에 메고 거울에 이리저리 비춰보고 있었다. 가격표를 보니 40%가 할인된 가격이었다.

얼마냐고 묻는 남편에게 "40%가 할인돼서 2만7천원이네" 했더니 또 사주란다. 자기 주머니에서 돈 한 푼 내 놓지 않으면서 딸이 좋다고 하면 무조건 사주라는 남편에게 눈을 한 번 흘기고선, "하기는 가방이 좀 낡기는 했지" 하면서 계산을 했다. 그런데 가격표를 찍은 점원이 2만원이라고 했다.

가격표에는 분명 2만7천원이었는데, 어찌된 일인가 했더니 아침에 가격이 더 내렸단다. 생각보다 더 큰 할인 폭에 2만5천원을 벌었으니 이건 또 웬 횡재인가. '아무래도 우리가 오늘 복 터진 거야'하며 집 앞에 다다랐는데, 남편은 수박이나 한 통을 사 가자며 수박을 파는 트럭 앞에다 차를 세웠다.

'맛있는 수박이 3000원'이라고 붙어 있는 가격표가 무색하게 먹을 만한 수박은 만 원을 주어야 살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수박 하나가 지지직하며 가운데에 금이 쩍 가고 있었다. 뜨거운 햇볕에 농익은 수박이 저절로 깨어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머머! 아저씨 수박이 왜 저래요?"

아저씨는 어차피 깨진 수박이니 절반 가격인 5천원에 가져가란다. 이것 참, 그동안 많은 수박을 사보았지만 저절로 금이 간 수박을 반값에 사보기는 처음이다. 하여간에 오늘은 정가에 산 바지 하나만을 제외하곤 가는 곳마다 할인 폭이 대폭이라, 쓴 돈보다 할인금액이 훨씬 컸으니 돈을 많이 벌어 온 셈이다.

불편한 엄마를 교대로 팔짱 끼워주고, 뒤에서 지켜보기만 하는 아빠에게 미안하다며 남방을 하나 골라 아빠에게 억지로 입어보라 하고선 멋지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주는 착한 딸들이 있어 더욱 기쁜 날이었다.

#가족#쇼핑#커플 티셔츠#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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