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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화해위원회는 27일 한국전쟁 전후 군경 등에 의한 민간인 집단 매장지에 대한 유해 발굴을 시작했다. 이날 위원회는 첫 발굴지인 전남 구례군 봉성산 여순사건 민간인 학살 매장지 이근에서 유가족 등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토제를 열고 본격적인 발굴을 시작했다. 김동춘 상임위원이 축문을 읽고 있다.
ⓒ 오마이뉴스 강성관

"죄도 없이 죽은 우리 오빠들의 한을 꼭 좀 풀어주시오."
"옛날에는 억울하게 죽었다고 말도 못했는데…. 늦게나마 자식된 도리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나마 위안이 된다."


27일 전남 구례군 봉성산에 오른 70대 노파들은 59년 만에 이뤄진 정부 차원의 유해 발굴이 시작되는 모습을 지켜보며 "땅 속 진실이 밝혀지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오후 2시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는 봉성산 봉덕종에서 구례 여순사건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 개토제를 열고 매장지로 추정되는 공동묘지에서 발굴 작업을 시작했다.

▲ 개토제에 참석한 유족 등이 분향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강성관

구례 집단학살, 59년만에 유해발굴

진실화해위원회(위원장 송기인)의 봉성산 유해 발굴은 한국전쟁을 전후해 군인경찰 등에 의한 민감인 집단 학살 사건 중 정부기관의로서는 처음으로 추진하는 발굴 사업이다.

구례 봉성산 여순사건 관련 집단 학살은 1948년 11월 19일 새벽 자행됐다. 당시 경찰은 여순사건 연루자로 지목돼 구례경찰서에 연행돼 있던 민간인 72명을 구례경찰서 앞 공터에서 집단 총살하고 봉성산 공동묘지에 매장했다는 것이 유족 등의 증언이다.

유족들에 따르면, 48년 11월 국군과 경찰은 구례군 문척면·간전면·구례읍 등에서 여순 사건 연루자로 지목된 민간인 72명을 연행해 경찰서 임시보호시설에 유치시켰다.

지리산과 백운산에서 활동하던 빨치산 부대가 48년 11월 18일 저녁 구례중앙초등학교에 주둔하고 있던 토벌대 제12연대와 구례경찰서를 습격해 5시간여 동안 총격전을 벌인 후 후퇴했다.

이후 제12연대 지휘관은 구례경찰서를 방문하고 임시보호실에 유치된 민간인들을 조사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새끼줄로 묶어서 경찰서 앞 광장에서 집단 사살했다. 당시 상황을 지켜본 조규태(70)씨는 "이 중 조아무개씨는 생존했고 총살시킨 민간인들의 시신은 바지개로 봉성산으로 운반해 암매장 시켰다"고 증언했다.

이날 개토제에 참석한 박창근(72) 여순사건구례유족회장의 아버지 고 박덕서(당시 32세)도 이날 죽임을 당했다. 박 회장은 "오랫동안 빨갱이라고 손 가락질 받을까봐 아버님이 그렇게 억울하게 돌아가신 것을 말하지도 못했다"면서 "96년 문민정부 시절부터 국방부와 국회 등에 탄원서를 넣었지만 '그런 사실이 없다'는 답변만 받았다"고 말했다.

▲ 개토제가 끝난 이후 송기인 위원장과 김동춘 상임위원, 유족 등이 발굴 현장에서 시삽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강성관

"땅 속의 진실이 밝혀지길 바란다"... 올해 4곳 발굴

박 회장은 "내놓고 제사도 잘 지내지 못한 시절도 있었는데 늦게나마 정부에서 유해발굴을 하게 돼 자식된 도리를 하게 됐다"며 "맺힌 한을 하루라도 빨리 풀어줬으면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두 오빠인 고 임해수(당시 22세)씨와 임해용(당시 18세)씨의 동생 임복남(71)씨는 "두 오빠가 아무 죄도 없이 그렇게 죽고 나서 어머님은 화병으로 돌아가시고 우리 집안은 망해버렸다"면서 "억울함을 말로 표현 할 수도 없다"고 했다.

임씨는 "매장하고 나서 3달 후에 마을 사람들이 음식을 장만해서 봉성산에 와 제사를 지내려고 했다"면서 "그 때 파서 보니깐 시체들이 뒤엉켜 있어서 알아볼 수가 없었다"고 전했다. 임씨에 따르면 49년 마을 사람들이 매장지를 파 옷색깔을 보고 고 김용구씨 등 3명의 시신을 확인했다.

유족들은 봉성산 공동묘지에 69구의 유해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송기인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은 개토제 인사말을 통해 "유해 발굴은 진실을 추구하는 마지막 단계"라며 "우리 위원회가 민간인 희생을 파악하고 화해를 추구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선주 유해발굴단 단장은 "봉성산 유해발굴 사업은 1개월 동안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구례 집단 학살의 확인된 유족은 모두 12명에 그치고 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이날 구례 봉성산 발굴을 시작으로 대전 골령골, 경산 코발트 광산, 충북 청원 분터골 등 4곳에 대해 유해발굴을 할 예정이다.

진실화해위원회 한 관계자는 "민간인 희생 매장지로 추정되는 168곳 중 37곳을 4년 이내에 발굴할 예정"이라며 "올 유해발굴 예산은 9억원인데 유해발굴 사업을 위한 예산확보가 더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 박찬근 여순사건구례유족회장(왼쪽)과 유족 임복남씨기 발굴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강성관

▲ 48년 11월 두 오빠를 잃은 임복남씨는 발굴현장을 찾아 "한을 제발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오른쪽 뒤편이 발굴 현장이다.
ⓒ 오마이뉴스 강성관

#여순사건#진실화해위#구례#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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