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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단체와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여성폭력추방공동행동이 2006년 4월 청계천 광장에서 '여성폭력 없는 세상'을 염원하며 종이비행기를 날려보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기자님, 한동안 운동은 못 할 것 같아요."

28일 오후 기자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박명수 전 농구감독(우리은행 한새여자프로팀)에게 강제 성추행을 당했다며 고발한 피해 선수 A씨의 가족이었다.

그는 "앞으로 선수 생활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며 토로했다. 박 전 감독이 지난달 30일 구속되자, A씨의 일부 동료들이 "지도자를 잡아 가둔 배은망덕한 선수"라며 A씨를 '왕따'시킨다는 것이다.

성추행 사건 이후 A씨가 감당해야 할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7일 A씨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사건 현장을 끄집어내야 했다. 검찰이 박 전 감독을 구속 기소하기에 앞서 피해자 조사를 위해 A씨를 검찰로 불렀을 때다.

A씨는 7시간 정도 진행된 검찰 조사에 대해 "속이 거북했다"고 말했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 수사관의 질문이 지나치게 노골적이었기 때문.

수사관은 "박 전 감독의 성기를 직접 봤느냐", "성기의 특성은 무엇이었느냐", "여자들의 속옷은 쉽게 벗겨지지 않을텐데, 어떻게 박 전 감독이 강제로 벗길 수 있었느냐" 등을 물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는 '여자 경찰에게 조사를 받고 싶으냐'고 물어봤지만, 검찰은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의 경우, '여경 조사청구권제'에 따라 피해 여성이 조사과정에서 성적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여경이 수사하거나 수사 과정에 입회할 수 있다. 하지만 검찰은 이같은 제도를 의무화하지 않고 있다.

A씨는 "검찰이 혐의에 대해 꼼꼼히 물어봐야 한다고는 생각했지만, 그 정도일지는 몰랐다"며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을 떠올리게 돼 수치스러웠다"고 말했다. A씨는 "반말로 물어보는 것도 불쾌했다"며 "나는 피해자로 간 것이었는데…"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사건이 있은 이후 두달여간 훈련을 접은 A씨는 현재 서울 시내의 한 종합병원에서 입원 치료중이다.

입원 중에도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박 전 감독의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가 돈다느니, 그가 농구 감독으로 복귀한다는 소문을 들을 때마다 분노와 후회가 교차한다. 게다가 언론의 입방아에 오른 우리은행 농구팀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심지어 언제 다시 농구선수로 뛸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농구 코트의 신예스타로 주목받던 A씨는 '2차 성추행 피해'를 톡톡히 겪고 있는 셈이다.

가해자 솜방망이 처벌도 부담

가해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또한 피해자에게는 부담스럽다. 최연희 의원의 경우처럼 강제 성추행이 명백함에도 선고유예로 마무리되는 마당에 호텔방에서 일어난 일을 증명하고 가해자를 처벌하기는 쉽지 않다.

성추행 사건에 대해 "별 것 아닌 일을 크게 만든다", "남자가 그럴 수 있다"는 사회의 관용이 피해자들을 침묵하게 만든 셈이다.

27일 문화연대와 한국여성민우회가 공동 주최한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피해 여성에 대한 2차 피해를 우려했다. 패널로 나온 허현미 경인여대 교수는 "인터넷을 통해 기사를 검색하다보니 피해 선수가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었다"며 소홀한 피해자 보호를 지적했다.

정희준 동아대 교수는 "피해 여성의 소속팀 선수들이 반으로 나뉘어 피해 선수를 적대시하는 분위기라고 들었다"며 "여자 선수들마저 남성의 시각에서 이 사건을 보고 있는 것이다, 피해 여성에 대한 2차 피해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피해자 A씨는 지난달 27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향한 따가운 시선에 대해 "주변 사람들의 말은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고 일축했다. 또한 "박 전 감독이 아무리 혐의를 부인해도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법에 따라 가해자는 처벌받고, 피해자는 보호받는 것이 상식이다. 한 농구 유망주에게 사회는 상식대로 행동하고 있을까. 남성 중심적 사회가 성폭력 피해자들에게만 다른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박명수#우리은행 여자농구#성추행#최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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