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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실정이니 운전기사나 우리는 서로 잘 안다면 잘 아는 사이일 수밖에 없다. 운전기사 아저씨는 어디서 누가 타고 어디에서 누가 내리는지, 누구와 누가 가족사이고 친척 사이인지 얼추 알고 있을 정도가 된다.
그런데 우리 시골버스를 운전하는 그 두 아저씨는 각각 특징이 있다. 한 아저씨는 뚱뚱하고 키가 큰 편이다. 또 다른 아저씨는 키가 작고 비교적 야윈 편이다. 뚱뚱한 아저씨는 좀 퉁명스럽다. 반면에 야윈 아저씨는 상냥하다.
이런 지경이니 아내와 내가 가끔 두 사람을 비교하며 대화를 나누곤 한다. 뚱뚱한 아저씨는 퉁명스럽고 무뚝뚝하다는 둥 인사를 해도 시원스레 잘 받지 않는다는 둥 욕심이 많게 생겼고 한 성질하게 생겼다는 둥. 반면 야윈 아저씨는 사람이 참 좋아 보인다는 둥 역시 친절한 사람은 뭐가 다르다는 둥 운전하는 것도 참 안전하게 잘 한다는 둥. 그런 이야기를 아내와 주고받는다.
이러던 차에 사건이 터졌다.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그 편견과 선입견이 깨지는 사건 말이다.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편견과 선입견은 여지없이 깨지고
안성 시내에서 버스를 타는 순간 어디서 많이 본 아이가 뒷좌석에 타고 있다. 우리 집에 거의 매일 놀러오는 막내 아들아이 친구인 우리 마을 아이 사빈(8)이다.
"야. 너 왜 집에 바로 안 가고 여기 타고 있니?"
"기사 아저씨가 태워줬어요."
"그게 무슨 말이냐?"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기사 아저씨가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그 아이가 초등학교 앞 버스 정류소에서 혼자 버스를 기다리고 있기에 태워 왔어요. 어차피 이 차가 한 바퀴 돌아 안성 시내에서 출발해야 차를 탈거니까요. 아이가 심심할 거 같아서 타라고 했지요."
그런데다가 아저씨는 사빈이가 먹으라고 아이스크림을 사주신 것이다. 사빈이는 맨 뒷자리에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쪽쪽 빨며 그저 싱글벙글이다.
여러분도 눈치 챘겠지만 그 아저씨가 바로 무뚝뚝하고 퉁명스럽다던 바로 그 아저씨다. 퉁명스럽다던 그 아저씨가 아이가 심심할까봐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게 하지 않고 시내로 데려나와 아이스크림까지 사먹이다니.
더 웃긴 것은 그 일 이후 그 아저씨를 향한 내 마음이다. 그 전까지는 내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던 아저씨가 그저 무뚝뚝하게만 느껴졌는데, 이젠 아저씨가 하는 행동 하나 하나가 어찌 그리 마음에 드는지 모를 일이다.
퉁명하다던 아저씨가 어찌 그리 믿음직스러운지...
가만히 보니 그 아저씨는 전혀 서두르는 법이 없다. 시골 마을에 유독 노인 승객이 많은지라 마을 저만치서 노인들이 버스를 타려고 느릿느릿 걸어와도 여유 있게 기다리는 건 기본이다. 다리 건너 저만치서 버스를 타려고 오는 사람인가 싶어서 여유 있게 기다리다가 그 쪽에서 먼저 '버스가 떠나라고, 버스를 탈 게 아니라고' 손짓 해주는 걸 확인해야 버스를 움직인다.
버스에서 내릴 때도 노인들이 천천히 내리면 그러는 대로 여유 있게 기다린다. 뿐만 아니라 정확한 버스 정류장 앞이 아니더라도 노인들에게만은 꼭 그 집 가까운 곳에 내려다 준다.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 다 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어쩌면 그 아저씨가 하는 행동마다 마음에 드는지. 하다못해 뚱뚱한 것도 참 든든하다는 생각까지 들고 무뚝뚝한 것도 변덕이 없어 보일 정도다. 그러니까 안전 운행할 거라는 믿음이 드는 것은 대체 무슨 마음인지.
집에 와서 아내에게 내 생각을 늘어놓았더니 그 아저씨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넌지시 말한다. 분명히 전에는 내 말에 맞장구치더니 그것 참.
이렇게 해서 몇 번 만났던 느낌만으로 판단하던 못난 나의 편견과 선입견이 시골버스 안에서 산산이 깨지고 그 잘난 득도(?)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아무리 깨져도 아프지 않다는, 아니 깨지면 깨질수록 좋다는 그 편견이 시골버스 안에서 깨진 역사적인 사건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