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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모를 팔레스타인들에게.

안녕하세요? 저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사는 40살 된 사람입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아시는지요. 2002년 6월 월드컵을 기억하신다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에서도 월드컵을 볼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그때는 정말 대단하였습니다.

▲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
ⓒ 글논그림밭
2002년 12월 19일에 우리나라에서 대통령 선거가 있었습니다. 그때 한 후보가 "국민 여러분 살림살이 좀 나아졌습니까?"라는 말로 인기를 누렸습니다. 그분이 대통령에 당선은 되지는 못하였습니다.

저도 묻고 싶습니다. 요즘 팔레스타인은 "살기가 조금 나아졌습니까?" 얼마 전 텔레비전을 통하여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군이 철수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이스라엘군의 철수가 팔레스타인 여러분의 삶을 얼마나 나아지게 할지 궁금합니다.

제가 팔레스타인 여러분들에게 "살람 알레이 꿈!"라는 인사를 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그런 날이 올 것입니다. 어쩌면 마음으로는 누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팔레스타인은 저에게는 낯선 동네는 아닙니다. 이유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블레셋'으로 등장하는 곳이 지금의 팔레스타인이지요. 이런 이유로 아직 저는 당신들의 나라 팔레스타인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종교라는 올무가 저를 잡아채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편 인류애라는 가치가 아직 종교가 가져다준 선입견을 넘어서지 못하였지요. 노력은 많이 하였지만 마음에서 우려 나오는 진정한 사랑과 화해, 평화를 팔레스타인까지 폭을 넓히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조 사코씨가 지은 <팔레스타인>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1991년 말에서 1992년 초까지 조 사코씨가 직접 경험한 첫 인티파다를 기록한 책이었습니다. 인민봉기라는 말이지요.

내 나라, 내 조상의 땅을 빼앗은 이들에게 우리 땅에서 한 번, 우리의 뜻에 따라 자유롭게 살겠다는 봉기였지요. 대한민국도 60년 전에는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였습니다. 당시 우리 선조들은 내 나라의 해방과 자유를 위하여 많은 싸움을 하였습니다. 이런 이류 동질감을 가졌습니다. 그대들을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피상적인 것이 아니라 피부로 느꼈다고 할까요. 팔레스타인 그대들이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 얼마나 자신들을 희생했는지 알았습니다.

'자발리아 난민촌'의 팔레스타인 노인을 만났습니다. 나흘 동안 임신한 아내와 걸었다고 했습니다. 조상들이 살아온 땅과 집은 이제 이스라엘 사람들의 것이 되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만을 생각하다가 팔레스타인을 접하면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와 그들의 사고 자체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그들은 남의 집을 그냥 들어오고, 나가라고 했을까요? 시온주의,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신앙이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을 정당화시킬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저의 사고가 얼마나 왜곡되었고, 경직되었는지 알게 되었지요.

'라말라' 많이 보았고, 들었던 난민촌입니다. 저는 난민촌의 실상을 잘 모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저의 직접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르마씨. 난민촌의 실상은 어떤지요. 알려줄 수 없는지요. 사람이, 사람이 되는 가장 원초적인 환경은 먹고 자고 마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신을 '나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먹고 자는 것을 방해하는 일입니다. 난민촌이 이런 곳이지요.

더욱 내 나라, 내 조상의 땅, 내 조상의 집에서 이런 경험을 한다면 비참함은 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올리브 나무가 자녀들의 교육과 먹을거리 문제를 해결해주었는데 그들은 베어 버렸습니다. 생존의 근거와 조국의 미래까지 빼앗는 완악한 행동이었지요.

땅을 잃어버린 민족, 나라, 가족은 살아갈 공간이 없기에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특히 자기 것을 빼앗은 강자 앞에 선 자신을 볼 때 얼마나 절망하겠습니까?

자발리아의 사메씨. 당신이 사코씨에게 보여준 난민촌의 실상은 저를 고통스럽게 하였습니다. 사메씨와 사코씨는 한 노인을 만났지요. 그 노인은 한 명의 유대인이 죽었을 때, 팔레스타인 사람은 15명이 죽었다고 했습니다. "내 땅을 떠나던 날은 모든 게 캄캄하기만 했소." 노인의 말에 저는 절망과 고통이 엄습하였지만 역시 간접 경험 일뿐입니다.

집을 떠날 때의 고통은 무엇일까요. 아직 저는 내 땅과 내 집에서 쫓겨난 적이 없습니다. 노인의 눈물과 고통은 무엇일까요? 그는 무슨 생각으로 집에서 나갔을까요?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을까요? 궁금합니다. 아직 우리나라도 자기 네 집과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답니다. 가족을 만나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어떤지요. 약간은 동질감이 들지 않는지 묻고 싶습니다.

팔레스타인에게도 끄나풀이 있더군요. 우리나라에도 프락치가 있었다. 강자는 약자를 이용하는 것이 세계 어느 나라에도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적의 공격보다 더 무서운 내부 분열. 항상 강자는 약자를 이렇게 노리고 있습니다. 스스로 무너지게 하는 것입니다. 내부에 적을 만들어 서로 죽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파멸이지요.

'가산씨!' 사람이 가장 공포를 느끼는 것은 눈을 가리거나, 눈을 감게 하는 것이지요. 얼마나 무서웠습니까? 그들은 무조건 당신이 불법 조직에 가입했다고 우겼습니다. 군인들을 당신을 테러분자로 무조건 낙인 찍어야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빨갱이' 한 마디면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가산씨 당신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나흘이 지나자 저를 감방에 데려가서 네다섯 시간쯤 자게 해주던군요. …그 들은 전에 없이 꽁꽁 묶었죠."

이스라엘 군인들은 말했습니다.

"이제 자고 싶지 않나? 조금 얘기만 하면 돼. 협력을 좀 하라구."

그렇습니다. 내가 나쁜 놈이라고 말만 하면 됩니다. 그럼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 한마디로 나는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 나라, 내 민족, 내 땅은 모두가 나쁜 놈이 되는 것이며 팔레스타인이 원하는 평화는 올 수 없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그대들을 테러분자로 찍음으로써 자신들을 정당화시켰습니다. 진짜 테러는 누가 했는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답은 뻔하겠지만.

아마르씨, 요즘 일자리는 구하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일자리가 없다는 것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주춧돌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고상한 사상과 이념을 가진 자라 할지라도 먼저 먹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인간이 존엄한 것 같지만 먹는 것은 원초적인 본능입니다. 우리 옛말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동물과 같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치고 먹는 것에 관심 없는 사람 별 없습니다. 아마르씨가 이제는 일자리를 구하여 가족이 먹을 수 있는, 아니 인간으로 태어나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팔레스타인 여러분 저는 평화를 신봉합니다. 평화는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게 됩니다. 이런 말을 팔레스타인 여러분들에게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군요. 그것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가장 잘하는 말이라고 말입니다. 그럴지라도 저는 폭력은 결코 평화를 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팔레스타인에 진정한 평화가 오기를 저는 바랍니다. 아직 팔레스타인 그대들에게 평화는 요원할 수 있습니다. 잘 사는 나라, 강대국들의 낭만에 가까운 말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군인들이 언제 당신들의 목숨을 노릴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우리네 인생은 특정 이념과 사상, 종교로 모든 이를 자기의 사상으로 이끌고자 합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문제란 곧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는 전제가 깔려 있기에 서로 화해하고 하나가 되지 못합니다. 다른 이와 함께 가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조 사코씨는 팔레스타인을 있는 그대로 보았다고 했고, 그대로 기록하였고 그림으로 나타내었습니다. 물론 그도 서구인입니다. 서구의 시각을 완전히 극복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 보다 성실하게 팔레스타인 자체를 본 이는 아직 접하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팔레스타인은 독립 국가 직전에 서 있습니다. 그대들의 나라가 언제쯤 주권국가가 될지 모르지만 그 길은 분명 험난할 것입니다. 험난함을 이기고 주권국가로 세계에 그 이름을 드러낼 때 우리는 그대들을 축하해주고 진정 평화가 무엇인지 본받겠습니다. 팔레스타인 진정 당신들은 위대한 나라를 세울 것입니다. 위대한 나라를 건설하고 다른 나라를 침입하거나 다른 나라의 땅을 빼앗지 마시기를 진정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을 읽고 얼굴 모르는 이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팔레스타인

조 사코 지음, 함규진 옮김, 글논그림밭(2002)


#팔레스타인#조 사코#폭력#비참#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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