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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군사정권이 통치한 18년간이 우리에게 주는 이미지는 '어두움'이다. 우리가 그 시절로부터 어두움의 이미지를 느끼는 것은 우리가 그 기간 동안 무언가 중요한 것들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럼, 군사정권이 통치한 18년 동안 한국인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잃어버렸을까?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열여덟 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5·16 정권의 통치 그 자체로 인해 우리는 다음의 것들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첫째, 우리는 '정의'를 잃어버렸다. 군부 통치집단도 정의를 내세웠지만, 그들이 내세운 정의는 '폭력을 업은 정의'였다. 그래서 우리는 '폭력이 없는 정의'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게 되었다. 우리는 참된 정의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둘째, 우리는 '원칙'을 잃어버렸다. 5·16 집단의 자의적 권력행사에 익숙해진 한국인들은 원칙보다는 변칙을 우선시하였으며, 한국인들은 그런 자신들을 '융통성 있는 인간'으로 정당화하려 하였다. 원칙을 무시한 융통성이 얼마나 허망하고 무익한 것인가를, 우리는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가 무너지던 날에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폭압적인 군부독재로 인해 우리는 다음의 것들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셋째, 우리는 '평화'를 잃어버렸다. 5·16 정권의 통치기간 동안에 남과 북은 더욱 더 대립하였고, 노와 사는 더욱 더 대립하였으며, 부자와 빈자는 더욱 더 심적 갈등을 겪었다. 총칼을 앞세운 정권은 언어로 사회적 갈등을 중재할 만한 능력이 없었으며, 그로 인해 사회적 갈등은 극한으로 치닫지 않을 수 없었다.
넷째, 우리는 '인권'을 잃어버렸다. 개인보다는 국가를 우선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개인의 생명권·신체권 같은 기본적인 인권은 아무렇지도 무시당하고 말았다. 누구라도 국가와 정권을 반대하면 아무데서나 끌려가고 아무렇게나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사회적으로 당연시되는 풍조가 존재하고 있었다. 저명한 대학교수이자 전직 기자였던 어느 민주화 투사는 그 시절에 모 기관으로 끌려가 앞 이빨을 모조리 뽑히고 말았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그는 틀니를 끼고 있다.
다섯째, 우리는 '평등'을 잃어버렸다. 군부권력의 불균형 발전전략에 의해 사회적 부는 농촌에서 도시로, 중소기업에서 재벌기업으로, 빈자에서 서민으로 강제로 옮겨졌다. 경제적 불평등은 정치적 불평등의 진원지였다.
여섯째, 우리는 '자유'를 잃어버렸다. '자유 대한'이라는 말이 그렇게 유행했건만, 정작 대한민국에서는 자유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서민들은 술자리에서마저 중앙정보부를 경계해야 했다. 그리고 통행금지라는 게 있어서 별을 머리에 이고는 마음대로 걸어 다닐 자유조차 우리에게는 없었다. 그때는 통행금지란 게 자연스러웠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무슨 그런 희한한 법도 다 있었나 하는 생각에 씁쓸한 웃음을 감출 수 없게 된다. 더욱 더 불쾌한 것은, 5·16 집단이 우리의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의 안방'에까지 들어앉아 우리의 자유로운 사고를 제 맘대로 방해했다는 점이다.
일곱째, 우리는 '복지'를 잃어버렸다. 국민이 세금을 내면 정부에서는 그 돈으로 국민을 위해서 쓴다고 하기에 소득세도 열심히 내고 음료수 사 먹을 때마다 알게 모르게 세금도 많이 냈건만, 정작 배우고 싶을 때 그리고 치료받고 싶을 때에 우리 옆에는 정부라는 존재가 없었다.
여덟째, 우리는 '민주'를 잃어버렸다. 군부 권력자들이 하도 설치고 다니는 통에, 일반 국민들은 '군인이 아닌 것이 무슨 정치를 하나?' 하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 그 18년 동안 정치적 민주가 짓밟혔다는 점은 굳이 부언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 시간 동안에 경제적 민주가 짓밟혀서 경제적 재화의 생산·분배 과정에서 일반 서민들이 배제되고 말았다는 점이다. 경제적 민주의 파괴는 정치적 민주의 파괴를 가능하게 하는 요소였다.
아홉째, 우리는 '민족'을 잃어버렸다. 이승만 정권도 그러했지만, 동족을 철천지원수처럼 대하는 정치권력 아래에서 우리는 차마 민족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민족을 생각하기만 해도 빨갱이로 몰리는 사회에서는, 민족을 생각한다는 것은 자신과 가족을 망치는 길이었다.
5·16 정권의 '무식한 산업화'로 인해 우리는 다음의 것들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열째, 우리는 '인간'을 잃어버렸다. 아니, 그 시간 동안에 우리는 인간을 잃어버린 게 아니다. 왜냐하면, 그때 우리는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기계 부품으로 전락했고, 신체 동작이 기계 동작과 불일치할 경우에 우리가 받은 형벌은 '손가락의 잘림'이었다. 7, 80년대에 영등포구 문래동 소재 방림방적 정문에서는 하얀 면장갑을 끼고 퇴근하는 '10대 누나'들이 많았다. 검지가 들어가야 할 자리는 두뇌의 통제를 받지 않고 있었다.
열한째, 우리는 '전통'을 잃어버렸다. 전체주의 공업화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서구화를 강제한 독재정권은 과거의 파괴 속에서 현재를 찾으려 했다. 전통적인 설날을 양력설로 강제로 대체하려 한 것은 5·16 정권의 전통 파괴 중 일면을 보여 주는 것이다.
열둘째, 우리는 '고향'을 잃어버렸다. 농촌에 있던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국가의 유인책에 의해 도시로 내몰렸고, 그러는 사이에 농촌은 파괴되고 말았다. 새마을운동이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혔다지만, 실제로 농촌에서 없어진 것은 꿈과 희망이었으며 실제로 농촌에서 넓혀진 것은 이농을 향한 길이었다.
열셋째, 우리는 '자연'을 잃어버렸다. 무분별한 아니 '무식한' 개발독재는 산이고 강이고 무조건 뚫는 것만을 자랑으로 여겼다. 무엇이 국가발전인가 하는 뚜렷한 좌표 정립도 없는 상황 속에서 5·16 정권은 국가발전을 위해 산과 강과 하늘을 오염시키는 죄악을 저지르고 말았다. 1979년에 그들이 '일단 멈춤'되지 않았다면, 아마 그들은 이 지구를 온통 다 깎아먹으려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정권이 또 나온다면, 지구를 잃은 온 인류는 아마도 우주에서 수영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열넷째, 우리는 '여유'를 잃어버렸다. "빨리, 빨리!"는 분명 한국의 전통문화가 아니다. 시조 창법에서 느낄 수 있는 바와 같이, 한국의 전통문화는 분명 여유로움을 특색으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무분별한 산업화 속에서 우리는 그 여유를 잃고, 아무 것도 건지지 못하면서 그저 빨리 빨리 달리고만 있다.
열다섯째, 우리는 '진실'을 잃어버렸다. 산업화 속에서 돈이 가장 우선시되었다. 국가권력이 황금만능주의를 제어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을 부채질하는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돈을 위해서라면 사랑과 우정도 능히 저버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심지어 우리는 남 앞에서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 앞에서도 진실해질 수 없는 사람들이 된 것은 아닐까.
군부의 쿠데타 및 장기집권으로 인해 우리는 다음의 것들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열여섯째, 우리는 '군인'을 잃어버렸다. 적군이 아닌 국민을 죽일 줄 아는 군인들을 보면서 우리는 그런 군인이 보통의 군인들인 줄로 착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참 군인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잘 알지 못했다. 군인도 국민의 일원인 이상 필요하면 정치도 할 수 있는 법인데, 그 18년의 기억 때문에 오늘의 우리는 '군인은 정치를 일절 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까지 갖게 되었다.
열일곱째, 우리는 '문민'을 잃어버렸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그 기간 동안에 문민적 전통을 잃어버렸다. 오래도록 문민과 군인이 조화를 이뤄 나라를 지키는 전통을 갖고 있는 한국에서는 그 18년 동안에 문(文)의 가치가 지나치게 왜소화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금까지 열거한 열일곱 가지는 이성적 사고에 의해 도출된 것이다. 만약 감성적 사고로 그 18년을 되돌아본다면, 우리는 다음의 것을 잃어버리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열여덟째, 우리는 그 18년을 '통째'로 잃어버렸다. 5·16 정권이 인간을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고 그저 기계 부품 정도로 혹은 세금 납부기 정도로만 인식했으니, 그때 대한민국에는 인간이 살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서민들은 인간적 대우를 못 받았기에 인간이 아니었던 것이고, 특권층은 인간 이상의 대우를 받았기에 역시 인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18년 동안에 우리는 인간으로서 모든 것을 '통째'로 잃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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