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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부의 세계는 인간이나 동물이나 힘들고 비정하다.
ⓒ 조우성
소싸움계의 '효도르'로 불린 전국 최강자 '범이'. 전국대회 18회 우승이라는 경이적인 대기록을 세운 천하무적의 소 '범이'.

올해 4월에 개최된 의령 전국 소싸움대회의 준결승에서 진주의 '백호'에게 패하기까지 단 한 차례만 상대 소에게 등을 돌렸다는 그 '범이'를 송아지 때 보고서 싸움소로 발굴하여 키워 낸 장본인 탁경득씨.

특히 의령대회에서 전국 최강자 '범이'를 이기고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고 있는 '백호'마저 탁씨가 길러냈다고 하니, 그의 소를 보는 안목이 정말 탁월한 모양이다.

지난달 30일 경남 진주 소싸움대회장에서 우연히 탁씨를 만나 싸움소의 세계에 대해 들을 기회를 갖게 되었다. 비록 만남의 시간은 짧았지만 좋은 경험담을 들을 수 있었다(탁씨의 사진은 본인의 요청으로 싣지 않는다).

'효도르 소' 범이 기르고, 범이 이긴 백호도 발굴

다음은 탁경득씨와 나눈 일문일답.

- 전국 최강자였던 '범이'를 발굴했다고요.
"제가 송아지 때 '범이'를 보고 싸움꾼의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지요."

- 근데 지금은 주인이 아니잖아요.
"범이가 4살쯤에 남에게 팔게 됐어요."

- '범이'를 이긴 '백호'도 키워냈다고요.
"백호는 좋은 소였죠. 타지방에 내보내기 싫어 진주투우협회 회원인 백인상씨에게 넘겼죠."

- 전국 최강자 '범이'를 길러내고 그 '범이'를 이긴 '백호'도 길러냈다는 것이 참 이채롭네요.
"백호가 어릴 적부터 '니는 범이를 잡을 소다'라고 맨날 그렇게 말했거든요. 그런데 말이 씨가 되었는지 정말 '백호'가 '범이'를 이기는 일이 일어나더라고요."

- 올해 의령대회에서 '백호'가 '범이'를 이겼다던데.
"의령 의병제였는데, '범이'의 주인인 하영호씨가 '이번에도 범이가 무난히 1등을 할 것이다' 그러더라고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이번에 범이가 제일 주의해야 할 소가 있다고 말했지요. 그게 저기 있는 백호인데 백호는 싸움질이 특이해서 뿔걸이를 해서 빗기는 특성이 있으니 조심해야 할 것이라고. 근데 그 말이 씨가 되어버린 거죠. 말이 씨가 되어 백인상이가 '아버지, 백호가 범이를 잡았습니다'면서 기뻐서 달려오더라고요."

▲ 탁경득씨 자신이 발굴한 전국 최강 '범이'를 이긴 '백호'.
ⓒ 조우성
"내가 소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정답이에요"

- 그랬군요. 근데 백인상씨가 아버님이라고 불렀다고요.
"아니 인상이는 20대인데 제 아들뻘이니까 그렇게 부르는거죠."

- 범이가 백호에게 진 뒤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백호에게 진 이후로 범이가 슬럼프에 빠져 버렸죠. 나이가 젊으면 재기할 수 있는데, 소가 나이 먹고 슬럼프에 빠지게 되면 상당히 힘이 들어요. 내가 범이를 내보낼 때 4살 때였으니까 금년으로 따지면 지금 10살이 한참 넘었네요."

- 싸움소로는 나이가 많이 된 건가요.
"사람나이로 치면 사십대 오십대를 훌쩍 넘어버린 거죠. 힘쓸 나이가 지났어요."

- 그렇군요. 지금도 소를 많이 기르고 계십니까.
"한 7~8마리 기르고 있습니다."

- 언제부터 길렀나요.
"어릴 적부터 길렀어요. 벌써 수십 년이나 되네요. 소를 오랫동안 기르다 보니 재미도 있고, 그러다 보니 소를 많이 키우게 되고. 또 딴 사람에게 공급도 하게 되고 그래요. 그러나 투우장에 나온 것은 경력이 짧아요."

- 소를 키운 지 오래 되시니 소에 대해 잘 아시겠네요.
"잘 알지도 못해요. 소에 대해서 잘 안다는 사람은 바보예요. 소는 소 입장에서 생각해야 잘 아는 거지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면 안되요. 내가 소다, 그렇게 생각해야 그게 정답이에요."

- 범이, 백호를 키워냈는데 소를 발굴한다는 것은 뭘 말하는 겁니까.
"송아지 때부터 싸움소를 골라낸다는 거죠. 싸울 수 있는 자질을 가진 소를 고른다는 것입니다."

- 어린 송아지를 보고서 그럽니까.
"그렇죠. 송아지를 보고 장래에 싸움소가 될 수 있는지 알 수 있어야죠."

- 송아지를 보고 어떻게 싸움 잘하는 소가 될지 알 수 있습니까.
"조그마한 송아지 때 생김새를 보고 고르는 일이라 감으로 느껴야 됩니다. 어떤 사람은 소가 어느 정도 컸을 때 보고 판단하지만, 저는 송아지 때 보고 싸움소를 골라냅니다."

"노하우 알려주세요" "거 참, 곤란한데..."

▲ 소가 경기장에서 뿔로 땅을 들치며 힘을 과시하고 있다.
ⓒ 조우성
- 보시는 기준이 뭔데요. 뭘 보고 그걸 아십니까.
"그 기준은 가르쳐 드릴 수가 없습니다. 나만이 아는 비밀이니까. 또 기준은 보는 사람마다 다 다르고."

- 노하우라 일급비밀입니까.
"음…, 말씀하기가 좀 곤란하네요."

"3군데만 만점 받으면 좋은 싸움소가 될 수 있어요"

- 에이, 그래도 좀 말씀해주시죠. 전국 최고의 소들을 키워 낸 분이신데.
"거 참, 곤란한데…. 맨 처음에는 송아지 때 머리 생김새를 봅니다. 그 다음에 눈을 보지요. 또 뿔이 어떻게 날 것인지 뿔자리를 보고, 마지막으로 소 꼬랑지를 봅니다. 여기서 3군데만 만점을 받으면 좋은 싸움소가 될 수 있습니다."

- 머리 생김새는 어떻게 생겨야 좋은 건가요.
"거 참…. 삼각형으로 생겨야 좋죠. 이 정도로 이야기합시다."

- 에이, 그러지 마시고. 눈은 사납게 생겨야 하나요.
"나, 이거 참…. 눈은 작아야 돼요. 그래야 간이 크고 배짱이 있죠. 이런 거 밝히면 안 되는데…. 자꾸 이야기하면 더 깊이 팔려고 하니까 더 이상 이야기 못하겠네요."

- 왜 그러십니까. 좋습니다. 다른 것은 안 물어 볼께요. 근데 소 꽁지를 본다는 것이 좀 특이한데, 왜 하필 꼬랑지를 봅니까.
"왜 소 꼬랑지를 보냐면 소가 꼬리로 싸우는 것은 아니지만 제아무리 뿔이 잘 생기고 머리가 잘 생기고 눈이 잘 생겨도 꼬리가 못 생기면 소가 싸움을 제대로 안해요."

- 꼬리가 잘 생겼다 못 생겼다는 것은 뭘 이야기합니까.
"소꼬리가 있잖아요, 붓대처럼 생겨야 되요. 일자로 쭉 잘 빠진 게 좋습니다. 또 길어야 하고요."

"기분좋게 싸우는 놈, 멈칫멈칫하는 놈... 소 모는 손에 감각이"

▲ 맹렬한 기세로 상대소를 압박하고 있는 맹우.
ⓒ 조우성
- 그렇군요. 노하우니까 더 이상 묻지는 않겠습니다. 소가 싸움장에 들어갈 적에는 어때요.
"소가 싸우러 들어가면서 하는 행동을 보면 그날의 승부를 대충 짐작할 수 있어요. 기분좋게 싸우러 들어가는 소도 있고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심장이 약하다든지 뱃장이 약하면 들어가면서 멈칫멈칫해요. 몰고 가는 손에 감각이 와요. 그러면 보통 경기에서 져요. 또 성질 따라서 제 힘껏 싸우는 소도 있고요. 소의 유형도 여러 가지에요."

- 소들이 싸우는 기술도 여럿 있다던데요.
"소도 자기 나름의 특기가 다 있어요. 뿔이 커서 자기를 쑤시겠다 싶으면 딱 붙어서 싸우고. 소도 멍청이가 아니기 때문에 다 자기 나름의 기술을 가지고 싸웁니다."

- 덩치도 승부에 작용을 미치나요.
"체중 차이가 날 경우는 다소 있습니다만 요즘은 비슷한 체급별로 붙으니까 그리 큰 영향은 없는 편이죠. 무제한급인 특갑종은 이야기가 좀 다르지만요. 근데 싸움소들도 이만기씨가 씨름하는 것과 비슷해요. 소도 커리어가 붙으면 상대편 소가 아무리 체중이 많이 나가도 싸워요. 몇백㎏이나 차이가 나도 물러서지 않고 싸워요."

- 커리어가 붙는다는 것은 뭘 이야기합니까.
"많은 대회에 나가서 싸우는 경험을 익혀 나가는 거죠. 경기에 자주 나가다 보면 전문싸움꾼이 되는 거지요. 그런 소들은 암만 체중 차이가 많이 나도 싸워요. 그래서 커리어가 중요한 겁니다."

"이기잖아요? 내가 이겼다고 티 냅니다"

-그렇군요. 근데 소도 감정이 있을 텐데요.
"소가 감정이 없는 동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소가 그날 딱 지잖아요. 집에 돌아가면 에∼ 소리도 안 해요. 하루종일 그래요. 근데 이기잖아요. 이게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요. 내가 이겼다고 티 내는 거죠. 그것이 소도 감정이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것 아니겠어요."

- 소가 경기에서 지면 어떻게 합니까.
"져도 쓰다듬어 주고 이뻐해 줘요. 달래줍니다."

- 지게 되면 화가 나 때리는 경우는 없나요.
"이전에 소가 경기에 졌을 때 발길로 두들겨 팬 적이 있어요. 두어 번 그랬어요. 근데 두들겨 패면 그 소는 다 버려요."

▲ 잽싸게 돌아 옆치기 기술을 구사하고 있다.
ⓒ 조우성
- 때리면 어떻게 된다고요.
"소를 패잖아요. 그럼 그 이후로 내가 그 소를 몰고 경기장에 들어가면 이 소가 싸움을 안 해요. 근데 딴 사람이 몰고 들어가면 잘 싸워요. 하도 열을 받아서 그 소를 팔아버렸어요. 아, 근데 그 소가 1등을 하네요. 내가 고깃값 대신 팔았는데 그 소가 1등을 했어요. 그 소가 나하고 있을 때는 싸움도 안 하고 그러더니만. 경기장에서도 나를 만나면 눈을 힐끗힐끗 거리면서 째려보더라고요. 그래서 그 이후로는 절대 때리지 않습니다. 져도 잘 달래주죠."

- 소가 눈을 힐끗 거렸다는 것은 뭘 말하는 겁니까.
"나에게 곱지 않은 감정이 있다는 거지요."

- 그렇군요. 소나 사람이나 힘들 때 따뜻하게 위로하는 것이 좋은 방법인가 봅니다.
"그래요. 동물이나 사람이나 지거나 잘못했을 때 패거나 윽박지르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게 되지요. 제가 경험을 통해서 좋은 것을 배웠지요."

태그:#싸움소, #진주전통소싸움, #범이, #백호, #탁경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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