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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지성사
그러나 최근 동화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허무는 책들(이링 페처 <누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깨웠는가>, 바바라 G. 워커 <흑설공주 이야기> 등)이 속속 발간되면서 '이렇게 엽기적이고 잔혹한 이야기들을 동화라고 할 수 있을까' 하고 회의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런 현상의 한가운데 바로 그림 형제의 <그림 메르헨>이 놓여 있다. 여기서 '메르헨'은 옛이야기, 민담, 전래 동화 등을 의미하는 독일어로, 정확한 의미는 '작은 이야기'라고 한다. 그러니까 그동안 우리가 읽었던 <그림 동화집>은 그림 형제가 창작한 동화들이 아니라 독일에서 전래되던 민담, 전래 동화였던 셈이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세계 각국의 민담, 전래동화를 살펴 보면 엽기적이고 잔인한 이야기들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호랑이가 아이를 잡아먹는다든지, 반대로 어린아이가 호랑이의 배를 가르고 나와 복수를 한다든지, 계모가 전처의 소생을 죽인다든지….

이처럼 민담이나 전래동화 중에 엽기적이고 잔혹한 이야기가 많은 이유는 아마도 이야기 속에 시대 상황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귀신 이야기 중에 유독 한을 품은 처녀 귀신 이야기가 많은 이유도 남녀의 차별이 엄격한 유교적 사회질서와 무관하지 않다고 한다.

백설공주의 비밀

그뿐만이 아니다. 오늘날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백설공주 이야기 속엔 더욱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

ⓒ 철학과현실사
이링 페처의 <누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깨웠는가>에는 백설공주의 원본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백설공주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원본 백설공주에 등장하는 백설공주는 반봉건적 혁명을 꾀하는 반란군이 건네준 "작고 빨간" 이념 서적에 경도되어 혁명 정부 수립에 동참하는 봉건 영주의 딸로 묘사되어 있다.

평소 전제정치와 가혹한 착취로 고통받는 백성들에 대해 연민과 죄책감을 품고 지내던 좌파적 성향의 공주가 반란군과 손잡고 마침내 혁명 정부를 수립한다는, 역사소설이나 정치소설에나 어울릴 법한 이 이야기가 바로 백설공주의 모티브였다니 정말 놀랍지 않은가?

그렇다면 왜 원본 백설공주가 지금의 백설공주로 변한 걸까? 그 이유는 이야기를 전승하는 민중(民衆)과 작가들이 정치적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민담, 전래동화 형식으로 이야기를 변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란군(백설공주)과 대립하는 왕비는 못된 마녀로, 왕비에게 반란군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염탐꾼들은 마법의 거울로, 일곱 개의 언덕 너머에 살고 있는 반란군은 일곱 난쟁이로 변형해 지금의 백설공주 이야기로 만든 것이다.

결국 오늘날 '권선징악'을 상징하는 백설공주 이야기는 봉건과 반봉건, 계급 간의 대립을 모티브로 탄생한 이야기였던 셈이다.

동화에 대한 오해와 편견

그외에도 이링 페처는 <헨젤과 그레텔>로부터 범죄와 파시즘에 관한 담론을 끌어내고, <브레멘 음악대>에선 성공적인 주택 점거를 통한 국민 저항 운동의 가능성을 발견하는가 하면, <룸펠스틸츠헨>에서 밀짚으로 금실을 짜도록 마법을 부리는 난쟁이를 자본주의 정신 그 자체로, 마법의 힘으로 금실을 짜게 된 아가씨를 방에 가둔 채 일을 시키는 왕을 노동력을 착취하는 자본가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처럼 <그림 메르헨>과 이링 페처의 <누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깨웠는가>를 비교하며 읽는다면 동화(童話)를 읽는 시각이 좀 더 다양해질 뿐만 아니라 엽기적이고 잔혹한 동화의 대명사로 통하는 <그림 메르헨>에 대한 오해와 의문도 조금은 풀릴 것이다.

그림 형제가 민담과 전래동화를 채록해서 <그림 메르헨>을 펴낸 것은 민족주의적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피히테가 <독일 국민에게 고함>을 통해 민족정신을 일깨우려 했던 것처럼.

과연 그림 형제는 <그림 메르헨>이 전 세계 어린이들의 필독서가 될 거라고 예상했을까? 또한 <그림 메르헨>이 엽기적이고 잔혹하다는 평가에 대해선 어떤 반응을 보일까? 무엇보다도, <그림 메르헨>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평가받는 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의 그림(그러잖아도 엽기적이고 잔혹하다는 평가를 받는 동화책을 더욱 기묘하고 신비스럽게 만드는 그림)은 마음에 들어 할까?

덧붙이는 글 | <그림 메르헨>, 문학과 지성사, 2007, 김서정 옮김, 483쪽. 3만5000원.
이링 페처, <누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깨웠는가>, 철학과현실사, 2005. 8000원.


그림 메르헨

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 지음, 김서정 옮김, 문학과지성사(2007)


#그림 메르헨#누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깨웠는가#이링 페처#백설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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