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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 매매 안내판에 제곱미터 단위와 평 단위가 혼재해 있다.
ⓒ 김주현

"도곡동 땅 4290㎡가 이명박 차명재산? 이게 몇 평이란 소리니?"

친구와 함께 뉴스를 보던 어머니가 계산기를 꺼내 두드리신다. 땅 4290㎡가 대체 몇 평인지 궁금하셨던 것이다.

친구 : 너도 그러는구나. 요즘 나도 제곱미터(㎡) 단위만 나오면 계산기 두드려 봐야 알아.
어머니 : 그러니까. 말로만 듣고는 몇 평인지 도통 알 수가 있어야지 말이야.
친구 : 얘, 너 포털엔 들어가 봤니? 어떤 데는 제곱미터고, 어떤 데는 평이고…. 야단났더라.
어머니 : 그래? 포털도 그러니? 괜히 우리들만 어려워진 거지 뭐.


평 대신 제곱미터... 공인중개사·주부 "적응 힘들다"

계량형 통일 시행 열하루째. 헷갈린다는 반응은 어머니와 주변 친구에게서만 나오는 게 아니었다.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의 주부 유모(43·여)씨는 "갑자기 바뀌어 적응하기 힘들다,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서울시 서초구 방배동의 주부 김은경(47·여)씨는 "귀금속을 자주 사진 않지만 부동산 정보를 볼 일이 많아 제곱미터 단위가 가장 혼란스럽다, 적응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돈·근 단위보다는 평 단위가 바뀌어 어렵다는 것이 기자가 만나본 주부들의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부동산 포털 중엔 평 단위 표기를 바꾼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혼재해 있었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의 주부 이모(39·여)씨는 "부동산 정보를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포털끼리 단위가 달라, 전자계산기를 옆에 두고 찾아본다"고 말했다.

▲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제곱미터 단위와 평 단위 환산표를 게시한 모습.
ⓒ 김주현
부동산 중개업소들도 마찬가지 반응이다. 대부분의 업소들이 매매 안내판을 제곱미터 단위로 교체했지만, 아직도 평 단위로 표기하고 있는 업소가 7~8곳 중 1곳 정도 있었다. 제곱미터 단위와 평 단위 환산표를 따로 붙여둔 업소도 일부 있었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공인중개사 소장 문모(48·여)씨는 "단속 때문에 표기 고치는 일도 힘들었다, 제곱미터 단위로 써뒀지만 어차피 손님들과 상담할 때는 평 단위로 설명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문씨는 "아파트 매매 계약서에는 원래 제곱미터 단위 표기가 원칙이었다, 공인중개사들이 그걸 지켜왔으면 되지 굳이 손님들한테까지 제곱미터 단위를 쓰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경기도 안양시 평촌의 공인중개사 소장 이모(52·남)씨는 "우리도 새 단위에 익숙하지 않아, 제곱미터를 평으로 바꿀 때엔 3.3058을 곱하고 평을 제곱미터로 환산할 땐 0.3025를 곱한다"고 말했다.

킬로그램, 그램 등 무게 단위에선 큰 불편 못 느껴

주부들은 킬로그램(kg) 단위의 경우 제곱미터 단위에 비해 생소하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대형마트에서 그램, 킬로그램 단위를 써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량형 통일안이 시행된 지 열흘 넘게 지났음에도 재래시장에서는 여전히 근 단위를 사용하고 있었다.

서울시 봉천중앙시장의 상인 김범식(49·남)씨는 "아직 시장은 단속대상이 아니다, 차차 바꿔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의 주부 유모(43·여)씨는 "시장에서 근 단위를 사용하긴 하지만 상인들이 전자저울로 달아 고기 한 근은 600그램, 과일 한 근은 400그램으로 주니 상관없다"고 말했다.

대형마트에서는 킬로그램, 시장에서는 근을 사용해 두 곳의 단위가 통일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불편을 못 느낀다는 것이 기자가 만나본 주부들의 의견이었다.

▲ 재래시장에서는 여전히 근 단위를 사용하고 있다.
ⓒ 김주현

1돈=3.75g, 아는 이 거의 없어... 공청회도 없는 등 홍보 부족 지적

계량형 통일 시행 이후 귀금속상들은 돈 단위가 바뀐 것이 불편하다는 반응이다.

대구시 중구에서 금은방을 운영하는 송모(50·남)씨는 "한 돈이 3.75g이라는 걸 아는 손님은 열 명 중 한 분 정도 뿐"이라며 "단속할 때는 표기뿐만 아니라 말로도 돈이라는 단위 표현을 쓸 수 없어 답답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어 "돈 단위 대신 그램 단위로 정착되려면 시간이 걸릴 듯하다"고 말했다.

국민들의 이 같은 혼란은 정부 책임이라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제도 도입 전 공청회를 열지 않는 등 정부의 홍보가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산업자원부는 제도 정착을 위해 지난 1일부터 평 단위와 돈 단위를 시작으로 단속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평의 경우 공공기관과 대기업만, 돈의 경우 귀금속 판매상만 단속 대상이다. 부동산 중개업소나 부동산 포털은 아직 단속 대상이 아니다.

단속 범위를 넓혀가면서 계량형 통일을 정착시켜, 상거래에서 발생하는 소비자 피해를 줄이고 미터법으로 단일화해가는 국제 추세에 발맞춰간다는 것이 산자부의 취지다. 홍보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채 제도가 도입돼 주부를 비롯한 국민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가운데, 새 제도가 얼마나 빠르게 정착해 나갈지 지켜볼 일이다.

#계량형#통일#법정#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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