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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전선이 밀려와 어제 오늘(11일) 계속 비가 내린다. 이 장마가 끝나면 다들 계곡과 바다로, 섬으로 휴가를 떠날 것이다. 이번 휴가 때는 섬으로 가 보내면 어떨까 싶다. 복잡다단한 일상의 삶을 잠시라도 밀쳐두고 참된 나를 만나보는 그런 귀한 시간 가질 수 있는 섬으로 가라, 그렇게 권하고 싶다.

휴대폰도 컴퓨터도 없는 다 내던져두고, 문명의 발자국이 그리 심하지 않은 남해나 서해의 외딴 섬이라면 더욱 좋을 것 같다. 사유의 길을 여는 길동무로 조용미 시인의 산문집<섬에서 보낸 백 년>(샘터, 2007) 한 권만은 들고 가면 어떨까.

폭우가 쏟아지는 밖을 내다보고 있는
이 방을 凌雨軒이라 부르겠다
능우헌에서 바라보는 가까이 모여 내리는
비는 다 直立이다
휘어지지 않는 저 빗줄기들은
얼마나 고단한 길을 걸어 내려온 것이냐

손톱이 길게 쩍 갈라졌다
그 사이로 살이 허옇게 드러났다
누런 삼베옷을 입고 있었다
치마를 펼쳐 들고 물끄러미 그걸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입은 두꺼운 삼베로 된 긴 치마
위로 코피가 쏟아졌다
입술이 부풀어올랐다
피로는 죽음을 불러들이는 독약인 것을
꿈속에서조차 너무 늦게 알게 된 것일까

속이 들여다보이는 窓봉투처럼
명료한 삶이란
얇은 비닐봉지처럼 위태로운 것
명왕성처럼 고독한 것

직립의 짐승처럼 비가 오래도록 창밖에 서 있다 -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조용미의 세 번째 시집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문학과지성사, 2004)의 표제시다. 죽음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조용미 시인이 그려낸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을 보면서 우리는 그가 생을 참 힘겹게 밀고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 육체의 병(病)을 안고 살아가는 조용미 시인이 부르는 노래는 봄날 보다는 늦가을(겨울)의 삶과 풍경을 주로 되뇌고 있다. 삶의 일상적 모습보다는 삶의 근원적 모습을 탐색하는 그의 시적 문체는 깊고도 깊다.

조용미 시인의 첫 산문집 <섬에서 보낸 백 년>은 좀 특별나다. <섬에서 보낸 백 년>은 일반적인 산문을 묶은 것이 아니라 그가 남해의 작은 섬에 들어가 보낸 2003년 3월에서 6월까지의 내면 일기를 묶은 것에 가깝다. 바깥세상과 단절된 외딴 섬에서 바다와 바람, 풀꽃, 허공과 깊은 대화를 나눈 3개월 남짓 사유의 시간은 백 년이 아니라 천 년이라 해도 맞는 말이 아닐까. 그 대화를 잠시 들여다본다(정확하게 말하면 산문집은 3부로 되어있다. 섬에 들어가지 전 3행의 시로 된 내면 일기 '봄이 오기 전(2003.2)'과 남해 작은 섬 소매물도에 쓴 내면 일기 '섬에서 보낸 백 년(2003.3-2003.6)', '또 다른 풍경들(2003.6-2004.4)'가 그것이다. 이 내면 일기는 꼭 100 꼭지의 일기로 나뉘어져 기록되어 있다).

넘실거리는 어두운 바다를 덮고 있는 흰 거품들, 저 먼 쪽빛 봄 바다는 더없이 평화로운데 시선을 바로 아래로 두면 아우성이다. 봄의 바다조차 들끓고 있는, 다스릴 수 없는 내면을 가지고 있다면 내가 꽃잎 한 장에서 괴로움을 읽어내는 것도 큰 잘못은 아닐 것이다.

이 세상을 덮고 있는 것은 흰빛이다. 저 반짝이는 흰빛 아래 얼마나 커다란 어둠이 웅크리고 있는가. 세상을 덮고 있는 것은 밝음이지만 그 밝음을 한 겹만 벗겨 내면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이 버티고 있다.

바다는 저 밝은 푸른빛 아래 널름거리는 어두운 혓바닥을 수없이 감추고 있는 것이다. 깊고 어두운 내면을 완벽하게 덮어 버리고 있는 흰빛의 밝음이 이 세상의 비밀 아닌 비밀인 것일까. - 19~20쪽


세상의 "흰빛의 밝음"과 "어두운 내면"을 대면한 시인의 눈은 깊다. 삶의 근원적인 한계와 절망을 이미 응시하고 있는 시인의 삶은 그 자체가 고통이다. 어쩌랴. 그것을 언어로 그려내고 노래해야 하는 것이 시인이란 자의 운명인 것을. 동료 시인 나희덕은 조용미의 이 산문집을 "해국, 털머위, 섬회양목, 흰현호색, 섬천남성들 곁에서 시인은 피 흘리는 나무처럼 바닷바람을 맞고 서 있다. 이 내면일기는 그녀가 육체와 정신의 거리를 좁혀 간 치유의 기록이다. 그래서 섬의 아름다운 풍경들 사이에 묵직한 전언이나 질문들이 군데군데 흰 뼈처럼 빛나고 있다"고 평하고 있다.

조용미 시인의 자기 문학에 대한 자의식이 강렬하게 묻어나는, 시적 문체가 빛나는 마흔 번째(40)의 일기를 들여다본다.

새벽 세 시에 바람이 나를 깨웠다. 바람이……, 많이 불고 있다. 바람이 한데 모여 뒤섞이고 있다. 후박나무와 동백나무와 귤나무의 잎사귀들을 건너 내 자는 곳을 지나다니는 바람들. 바람이 잠을 데리고 왔다가는 다시 데리고 갔다.

바람이 있는 그림들을 떠올려 본다. <성재수간 聲在樹間-나무 사이에 소리가 있다>, 간송미술관에서 본 심전 안중식의 그림이 나를 붙들어 세웠다. 그림에서 정말 '소리'가 났다. 나뭇잎 하나하나가 다 귀가 되어 바람을 향하고 있는 듯한 그 그림 앞에서 나는 눈이 번쩍 뜨였다. 소리 때문이다.…나도 안중식처럼 내 시 안에 바람을 가두어 두고 싶었다.…바람을 붙잡고 싶은 욕망을, 바람과 내통해 보고 싶은 욕망을 나는 오래도록 품어 왔다. 바람이 꼭 심전과 전기의 그림 속에만 붙잡혀 있겠는가.
나는 이 우주라는 기호를, 만물이라는 텍스트를 과연 어떻게 읽어 내야 할까.

별이 초파일의 등불처럼 커다랗게 주렁주렁 걸려 있는 섬의 새벽하늘을 바라본다. 저 등불은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다. - 116~119쪽


단순한 풍경의 묘사가 아니라 풍경의 내면까지 걸어 들어간 조용미 시인의 산문이 뿜어내는 향기는 매혹적이다. 나도 이번 여름휴가 때만이라도 남해나 서해의 어느 이름 없는 섬, 적거지(謫居地)에 들어가 풍경의 내면을 그려보고 싶다. 내면의 풍경을 그려보고 싶다. 나는 조용미 시인의 열렬한 애독자이다.

"내게 시는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어떤 극점을 향한 몸부림 같은 것이라 생각된다. 세상의 모든 것이 다 헛되어도 시만은 그 헛됨의 자리에서 나를 구출해줄 것이다. 나는 이 믿음을 단 한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시를 통해서만 나는 나 자신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라고 선언하는 조용미 시인의 시집을 다시 펼쳐보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신문 '이종암의 책 이야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조용미 

1962년 경북 고령에서 태어났고,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90년『한길문학』에 「청어는 가시가 많아」등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일만 마리 물고기가 산을 날아오르다』,『삼베옷을 입은 자화상』등이 있으며, 2005년 김달진문학상을 수상했다.

『섬에서 보낸 백 년』>조용미 지음. 샘터 펴냄. 8000원


섬에서 보낸 백 년

조용미 지음, 샘터사(2007)


#조용미#매물도#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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