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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나다 국기.
ⓒ 네이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나라의 국기에 대해서 단풍잎 모양 때문에 '메이플 리프 플래그(Maple Leaf Flag)'라고 부르고 있지만 일부는 여기에 대해 '빨간 깻잎의 나라'라고 개성있게 같다 붙이기도 한다. 북미의 로망 캐나다의 국기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캐나다행을 꿈꿔 왔었다. 상아탑에만 갇혀 진정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라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하고 방황할 때 해방구가 되어줄 것만 같았던 것이 바로 캐나다 워킹 홀리데이였다. 일과 공부와 여행을 병행할 수 있다는 일석삼조의 달콤한 유혹은 의지박약의 천성을 타고난 나에게조차도 유혹의 파라다이스가 될 만한 충분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워킹 홀리데이를 꿈꾸고 준비하며 체험하는 모든 과정들을 인터넷을 통해 밤새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바라보고 또 부러워했다.

무엇보다 캐나다란 나라에 빠져들수록 근거 없는 환상과 낭만으로 점철되어 내가 이민을 생각했을 경우 첫 순위에 둔 나라라서 그런지 더욱더 끌리는 곳이었다. 하지만 워킹 홀리데이로도, 배낭여행으로도, 어학연수로도 가지 못해 변죽만 잔뜩 울렸던 캐나다. 그런 캐나다를 이제 자전거로 넘어간다.

▲ 미국 - 캐나다 국경지역. 미국에서 캐나다로 벗어날 때는 캐나다인이 체크하므로 쉽게 빠져나가지만 다시 미국에 들어올 경우 미국인이 체크하는데 그 과정이 꽤나 까다롭다. 6월 7일.
ⓒ 문종성
나라 자체를 대륙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드넓은 미국과 캐나다. 두 나라가 맞닿은 수많은 국경지대 중 여행루트 선상에 있는 버몬트-몬트리올 쪽을 통해 국경을 통과하기로 했다. 국경검문소를 지나 새로울 것도 없어 보이는 새로운 나라로 진입하면서 보이는 첫 번째 풍경은 시원스레 쭉 뻗은 평면도로와 마일(mile) 대신 쓰는 킬로미터(km) 표지판, 그리고 캐나다 국기였다. 경사가 없는 평면 도로는 허약체질의 가는 두 다리로도 충분히 평속 25km를 유지하며 바람을 가르게 하는 탁월한 조건이 되었고, 마일 대신 쓰는 킬로미터는 한 번 더 계산해서 거리를 측정해야 하는 과정의 수고로움을 덜어주며 익숙한 것에 대한 편안함을 가져 주었다. 그리고 캐나다 국기.

깔끔함과 풍요로운 인상을 주는 캐나다 국기를 보면 양쪽에 빨간 색이 균형 잡혀 칠해져 있는데 이는 대서양과 태평양을 상징한다. 또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약 30000년 전 아시아 토착민들이 시베리아와 알래스카를 통해 캐나다에 도착했고, 일부는 남쪽으로 계속 내려갔는데 그것을 함축한 메시지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캐나다의 상징인 메이플 리프를 가운데 두고 왼쪽 빨강은 시베리아 및 알래스카를 건너온 아시아를, 오른쪽 빨강은 그곳에서 캐나다를 거쳐 더욱 더 남쪽으로 내려간 미국을 포함한 중남미 아메리카라는 것이다.

이처럼 단풍 모양 디자인이 캐나다 국기로 정해진 것은 1960년대 들어서다. 그 전까진 영국 해병 깃발을 국기로 사용하고 있어, 국기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는데, 1964년 10월 캐나다 수상 레스터 피어슨(Lester B. Pearson)이 캐나다만의 국기를 만들자고 제안한 뒤, 강력하게 밀어붙인 것. 단풍 모양 디자인은 메이플 리프(Maple leaf, 단풍잎=캐나다 왕정)를 보호하는 방패를 의미한다고 한다.

괜찮던 날씨 바뀌며 갑자기 폭우 쏟아져

캐나다 내륙으로 진입할수록 보이지 않는 변화도 속속 감지된다. 미국 달러 대신 더 빳빳하고 컬러풀한 캐나다 달러가 사용되고, 그나마도 익숙한 영어발음이 한층 더 윤기있게 꼬부라지며 불어발음으로 바뀐다. 심지어는 일단 다가가기만 해도 '미안하지만 영어를 못합니다'라고 먼저 답해버리는 젊은 사람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을 정도다.

오전 동안 그런 대로 괜찮았던 날씨가 바뀌며, 비를 한두 방울 뿌리기 시작한다. 자전거를 타다가 비가 오면 잽싸게 수중 라이딩 모드로 변해야 한다. 비가 오는데도 달려야 할 경우에는 자전거용 우의를 입고, 패니어나 짐에는 레인커버를 씌운다. 젖어서 크게 고장나거나 버릴 물건이 없을 경우 또는 비를 흠뻑 맞은 채 영화 같은 장면을 연출해 보고 싶다면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감기가 염려된다면 또 모를까.

그런데 지금 내리는 비의 강우량이 그리 많지 않아서 레인커버를 씌우자니 번거롭고 안 씌우자니 십 분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라 잠시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렇게 십 분 정도 하늘을 바라보고 여우비라는 판단이 들자 과감하게 빗속으로 뛰어들었다.

▲ 한 두 방울 뿌리기 시작하던 빗방울은 어느 새 폭우가 되어 있었다.
ⓒ 문종성
'결정은 신속히, 행동은 재빠르게.' 나태함을 느긋함으로 자위하며 게으른 일상을 영위하던 내가 이번 여행에서 마음 품은 것이다. 하지만 하늘은 이런 나의 오만함을 두고 한 수 지적하려 했던 것일까. 뒤돌아 가기에 조금 멀리 왔다 싶을 만큼 전진해 왔을 때 구름을 힘껏 짜내버린 것이다. 가랑비가 폭우로 변해 급히 레스토랑 처마에 자전거를 세워두어야 했다. 방수 처리된 패니어는 괜찮지만 물품들이 뒤 랙에도 있었기 때문에 임시처방으로 비닐을 씌웠다. 날이 개면 쉽게 걷어낼 심산이었다.

아직 국경을 지나고서도 약 60km 더 가야 했기에 비가 온다고 마냥 멈출 수만은 없는 노릇. "프랑스어 좀 할 줄 아세요?"라고 물어보는 레스토랑 주인의 물음에 그저 하염없이 미소만 보낼 뿐이다. 그 미소에 답이 있으므로 주인은 더 이상 불어로 내게 물어오지 않았고, 바이링구얼(Bilingual, 두 가지 언어 사용) 조건을 십분 활용해 영어로 대화할 수 있었다. 사실 불어에 관심이 많아 독학으로 공부도 하고 한때 불문학과를 고민하던 때가 있었으나 그것이 <라 붐(La Boum)>의 소피 마르소가 가져다 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서는 미련 없이 접었던 적이 있었다. 그 후 불어와는 인연이 닿지 않았으니 적잖게 헤매는 것이 당연하다.

주인은 내게 친절히 전화까지 쓰게 하며 몬트리올로 들어가는 길을 설명해 주었다. 드디어 오후 4시. 비가 오는 가운데 뿌연 몬트리올의 스카이 라인이 보이기 시작한다. 몬트리올에서 만나 뵙기로 한 분이 샘플레인(Champlain) 다리로 건너오라고 했다. 하지만 10번 도로를 타고 가다가 그 옆에 있는 빅토리아(Victoria) 다리로 건넜다. 조그만 바이크 루트를 보고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따라간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샘플레인 다리는 자전거가 다니지 못한다고 한다. 다행히 빅토리아 다리는 바이크 루트를 별도로 만들어 놓았기에 자전거로 건너기가 가능했던 것이다. 때로는 직감이 이성보다 더 효과적인 판단을 할 때가 있다. 빗속에서 헤매면서 고생했을 걸 생각하면 참으로 운이 좋을 뿐이다.

▲ 로렌스 강을 가로질러 몬트리올로 넘어가는 샘플레인(Champlain) 다리. 비가 그치면 쉽게 걷어낼 심산으로 뒷짐받이의 짐들을 엉성하게 비닐로 포장해 놓았다.
ⓒ 문종성
빅토리아 다리로 빗속에서도 많은 라이더들이 오고 간다. 진정한 자전거 마니아들이다. 수요일 오후엔 몬트리올로 들어가는 라이더보다 몬트리올에서 나오는 라이더들이 서너 배 이상 많다. 처음엔 혼자 몬트리올로 들어가길래 혹시 일방통행이 아닌지 의심까지 들 정도였다. '당신 왜 역주행 하는 거야? 샘플레인으로 갔어야지'하는 표정들인 것만 같았다. 다행히 뒤따라오던 누군가가 나를 앞질렀을 때 나는 그 한 명의 라이더를 지켜보며 내가 온 길이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 후론 '당신 몬트리올로 들어오는 거야? 짐 잔뜩 실은 동양친구라 흥미롭군'하는 표정이라고 해석하게 됐다. 때론 이렇게 누군가의 행동 하나가 내 정체성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답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빅토리아 다리를 건너 바라보는 몬트리올은 찌푸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로렌스 강을 사이에 두고 좌측에는 대형 강줄기의 지류가 겹겹이 흐르고 그 위에 다리가 이어져 있으며, 우측에는 테마파크가 자리 잡고 있었다.

바레인 출신 라이더와 우연한 동행

▲ 샘플레인(Champlain) 다리에서 바라본 로렌스 강(Lawrence river). 몬트리올로 넘어가는 다리들이 인상적이다.
ⓒ 문종성
"안녕, 친구."

빅토리아 다리에 잠시 서서 사진을 찍고 있을 때 뒤에서 젊은 청년 하나가 말을 걸어왔다.

"안녕."

대개는 몇몇 스쳐 지난 라이더들의 인사도 이걸로 끝이었으므로 나는 청년이 더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었다. 하지만 그는 내게 관심을 보였다. 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에 대한 간단한 정보들을 파악한 그와 나는 서로의 마음을 눈치 채고 '함께'라는 말도 꺼내지 않은 채 어느 새 '함께' 라이딩을 하게 되었다.

생명의 숨결이 남아 있는 한 우리는 태양의 반대편까지 달려갈 각오가 되어 있으니 이 얼마나 어린 아이 같은가? - 엘리자베스 비숍

"한국에서 왔다고? 난 바레인 출신이야.(그의 발음이 프랑스식이었으므로 처음엔 뉴햄프셔 주의 리버넌(Lebanon)에서 온 줄 알았다.) 그나저나 비가 많이 오는군. 어디까지 가는데?"

"다운타운 근처에서 누구를 좀 만나기로 했거든. 근데 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단 말이야. 일단 다운타운 가서 다시 연락을 해 보려고 해."

나의 아쉬움은 빗속을 이리저리 피해 그 친구에게 전해졌다. 친구의 이름은 바디(Bidih). 맥길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친구다.

"그래? 내가 도와줄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혹시 주소가 어딘지 알아?"

하지만 내겐 주소 대신 나를 기다리는 분의 연락처만이 있을 뿐이었다. 지난 번 버몬트 자전거 숍에서 만난 노부인이 연락하라던 남편에게는 궂은 날씨에 번거로울 것 같아 따로 연락하지 않았다. 대신 포킵시에서 만난 분이 가면 들르라는 연락처를 받아온 상태였다. 바디는 직접 공중 전화기로 가서 연락을 취한 다음 주소를 파악해 길을 찾기 시작했다.

"근데 바디 넌 여행 많이 다녔니?"
"응, 난 주로 아시아 쪽으로 많이 다녔어. 중동이야 태어난 곳이라 주변으로 몇 나라 다녀본 경험이 있지. 바레인 주변국들. 레바논이나 시리아, 그리고 이집트, 터키. 그리고 유럽도 다녀오고. 하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인도 여행이었어. 특별히 내 자아를 깊게 성찰할 수 있어서 좋았지."
"인도가 명상으로 유명한 나라지."

간단히 맞장구를 치니 나와 보조를 맞추며 달리는 바디가 인도 여행한 이야기를 꺼낸다.

"인도는 참 특별한 곳이야. 재작년에 갔었는데 말야, 내 마음이 혼란스럽고 어려울 때 아무런 방해 없는 고요한 상태에서 명상에 잠기면 마음이 그렇게 편안해질 수가 없는 거야. 그리고 더 또렷해지는 생각의 편린들이 하나 둘씩 모아지는 느낌이지. 사실 몸도 좀 찌뿌둥한 거 같았는데 명상 뒤로는 개운해진 것도 같아."

인도를 다녀온 사람에게는 으레 들을 만한 경험담을 늘어놓고 있었지만 어쩐지 바디의 말을 통해 인도가 내면으로 푸근함을 주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참, 그리고 작년엔 여자친구랑 중국엘 다녀왔지. 병마용? 서안에 있는... 너무 멋지더라구. 진시황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됐구. 그리고 공자가 살았다는 곡부(曲阜)도 갔었지. 역사가 유구하고 화려해서 그런지 중국도 역시나 매력적인 곳이야. 하지만 먹는 건 좀 적응이 안 되더라구."

기이한 중국 음식과 마주쳤을 때 당황한 그의 모습을 상상하니 '아니 봐도 비디오올시다'이다.

"여자친구랑 중국에 갔어? 아니 뭐 유럽 같이 좋은데 다 놔두고 왜?"
"음, 여자친구 전공이 역사학이거든. 난 철학이고."

그러고 보니 얼추 아귀가 맞아 떨어지는 듯하다. 역사학과 철학의 만남, 일단 둘 다 실용적인 전공이 아니란 것에 놀랐다. 전공에 맞춰 여행 계획을 짜고 여행 겸 답사 형식으로 다녀온 것이 꽤나 신선했다. 왜냐하면 커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 여자친구랑은 힘들어. 성격 차이가 나거든. 난 개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 어쩌자고 개를 방에서 같이 키우는지. 개 때문에 스트레스 쌓여."

바디는 여자친구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다.

'에효~ 안장 위에서 아주 배부른 소리하고 앉아 있구나.'

솔로의 염장을 지르는 썩 달갑잖은 푸념이지만 일단 환하게 웃어주며 걱정 말라고 다독여준다. 원래 그런 거라면서. 연애도 해 보지 않은 내가 그런 토닥거림을. 하지만 다음 말은 나를 더욱 좌절로 만들어 버렸다.

"동거하거든."
'동.거.하.거.든…. 아니 이 녀석 벌써 결혼했나?' 세찬 의심의 바람이 휘몰아치자 뒤늦게 그의 신상을 캐보았다. 하지만 그는 미혼일 뿐더러 생긴 것 답지 않게 이제 겨우 스물 셋이란다. 아이쿠~! 아무리 봐도 스물 여덟 아홉은 되어 보이는데. 하긴 나도 미국에서 20대 초중반이란 소리를 많이 들었으므로 넘어가기로 한다. 믿거나 말거나.

어쨌든 내게 동거는 부담스러운 단어임에는 틀림없었지만 여러 문화가 존중되며 공존하는 '모자이크 문화' 몬트리올에서 그런 것을 이해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부디 그 둘이 결혼까기 이어지길 바라면서.

시골길보다 도시에서 헤매는 게 더 피곤해

▲ 비가 오는 흐린 날씨지만 몽로얄(Mount Royal Park) 공원의 숲 위로 몬트리올 스카이 라인이 보인다.
ⓒ 문종성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고, 바람도 세차게 불어왔다. 몬트리올의 도시 구조는 조금 독특하게 구성되었는데 강 주위의 여러 담수시설 때문인지 대도시임에도 차분한 이미지가 풍겨왔다. 바디는 사실 몬트리올에 오래 살았지만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찾지 못했다.

미국도 그렇지만 북미 같은 경우 도로 이름을 알기 전에는 주소 찾기가 남산 아래서 김서방 찾는 격이다. 또한 도로 이름을 알았다손 치더라도 도시지도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찾는 게 어렵다고 봐야 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보지만 처음 들어본 도로 이름에 그들도 대답할 수 없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어쨌든 바디는 악천후 속에서 고군분투 중이었다. 난 그저 그가 이끌어주는 대로 계속 달릴 뿐.

그는 잠시 자전거를 내게 맡겨 놓고 지도를 전문적으로 파는 서점으로 들어갔다. 거기에서 대강의 도로를 파악한 다음 다시 빗속으로 뛰어들었다.

"글쎄 아마 30분 정도는 더 달려야 하지 않을까 싶어."

그의 말에 다리에 힘이 쭉 빠진다. 오후 4시쯤 몬트리올 입성 후 한 시간 동안이나 계속 헤매고 있었던 터였다.

▲ 몬트리올 입성에서 목적지까지 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해 준 바레인 출신의 스물 셋 멋진 친구 바디(Bidih).
ⓒ 문종성
이런 게 있다. 같은 거리, 같은 시간이라도 도시 내에서 헤매는 것이 시골 길을 달리는 것보다 더 피로하게 느껴진다. 혹은 시골에서 오히려 더 많은 시간과 더 먼 거리를 달리더라도 마찬가지다. 아마도 내가 '길 위의 프로테우스 인간(Proteus Man)형'으로 진화가 덜 된 탓일 게다. 복잡한 도시의 도로에서는 바로 다음 도로, 다음 건물을 찾아 목표지점을 향해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지만 시골의 도로는 아무 걱정 없이 그저 한 길로 쭉 나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의 차이는 육체 능력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지쳐 있었지만 나보다 더 고생하는 바디 앞에서 입이 튀어나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바디는 전화하고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여러 검증의 과정을 거치면서 도착 지점과의 간격을 좁혀 나갔다.

"미안해. 나 때문에 괜히."

날씨도 짓궂고 한 시간 넘게 시내를 헤매기에 괜히 마음이 무거웠다.

"괜찮아. 네가 부탁한 게 아니잖아. 내가 스스로 도와준 건데 뭘."

그는 한 번 웃어 보이며 계속 페달질을 해댔다. 점점 물 빨아들인 솜처럼 다리가 무거워지고 손부터 시작해서 몸은 경직되어 갔다. 시야는 뿌옇지만 오로지 바디의 뒤만 졸졸 쫓아다니니 나로서는 큰 불편은 없었다. 다만 장시간의 라이딩으로 그도 나도 지쳐 있었기에 이제 침묵만이 서로의 거리를 메우고 있을 뿐이었다.

"사람들이 참 친절한 거 같아. 미국에서도 그랬었는데 말야."

바디가 웃는다. 그리고 또 한참동안 달리기만 한다. 샘플레인 다리에서 4시에 넘어와 오후 5시 반이 넘어서야 비로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순전한 바디의 도움으로. 주소 하나만 가지고 이 복잡한 도시를 이 궂은 날씨를 헤치고 찾아주고 동행해준 바디가 너무 고마울 뿐이다.

"정말 고마워. 너 아니었으면 난 아마 엄청 헤맸을 거야. 아…. 진짜 고마워서 뭐라고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
"하하. 괜찮아. 나도 예전에 아시아를 여행할 때 도움을 많이 받았었거든. 그 때 생각했지. 나도 같은 상황이면 누군가를 도와야겠다고. 그리고 오늘 너를 만난 거야."
"아무튼. 고마워."
"뭘, 너를 도울 수 있어서 기뻐."

도울 수 있어서 오히려 기쁘다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과 내 손이 맞닿을 때 느껴지던 가슴 찌릿한 감동이란.

"여자친구가 기다리고 있어서 이제 가봐야겠어. 좋은 여행하길 바래. 푹 쉬고. 그리고 너 때문에 오늘 라이딩 즐거웠다."
"이 녀석, 네가 비 홀딱 맞고 고생해 놓고서는…. 잘 가."
"그래, 안녕."

▲ 목적지에 도착하고 바디가 찍어준 사진.
ⓒ 문종성
알 수 없는 감동과 알 수 있는 피곤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잠시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러면서도 떠나는 녀석의 뒷모습을 바라보니 어찌나 멋있게 보이던지…. 축축하게 젖은 온 몸처럼 내 감성도 촉촉해져 있었다. 오늘 내가 만난 친구에 대해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바디(Bidih), 꼭 행복해라. 여자친구랑 싸우지 말고. 바레인 가면 네 생각날지도 모르겠다.'

바디가 가는 길에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파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는 http://www.vision-trip 입니다.


태그:#캐나다, #자전거, #라이딩, #폭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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