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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탱자나무 울타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학교와 마주 보고 있었다. 교문에서 불과 5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우리 집은 구멍가게를 하고 있었고, 구멍가게와 마주 보는 탱자나무 담장 너머엔 빵을 찌는 급식 실이 있었다. 내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노란 옥수수 빵이 학교 급식이었다. 급식이 있는 날이면 급식빵을 찌는 소사아저씨의 발걸음이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소사 아저씨는 전쟁터에서 한쪽 눈을 다친 상이용사였다. 우리 아버지와는 절친한 친구 사이여서 우리 집을 자주 방문하곤 하셨는데 나는 아저씨의 허연 한쪽 눈이 무서워 슬금슬금 피해다니곤 했었다.

빵을 찌는 날이면 아저씨는 부스러기 빵을 긁어모아 탱자나무 사이로 난 개구멍을 통해 우리 집으로 보내주곤 했다. 비록 부스러기 빵이라 할지라도 교장선생님의 허락 없이 외부로 내보내는 것은 학교 규율에 어긋나는 것이었는지, 아무도 보지 않는 조용한 수업시간을 이용해 얼른 가져다 주었다.

방금 쪄낸 옥수수빵은 따끈따끈면서도 말랑말랑하고 달착지근하기까지 해서 입에 착착 감겼다. 끈기가 없어 잘 부스러지는 게 흠이긴 했지만 손으로 꾹꾹 다시 뭉쳐 먹으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옥수수 빵은 시커먼 땟국 흐르는 우리 남매들에게 훌륭한 간식거리였고, 아저씨의 발걸음이 빨라지는 날에는 "오늘 아저씨 빵찌는 갑다" 하며 점심 시간을 목빠지게 기다렸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장롱 위에 못 보던 그릇이 하나 올라 앉아 있었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스테인리스 그릇이었는데 얌전하게 뚜껑까지 덮여져 있었다. 앉아도 보이고 서도 보이는 저 그릇의 정체는 무엇일까.

우리는 스테인리스 그릇보다 더 빛나는 눈동자로 "저게 뭐꼬?" 서로 물으며 궁금해 죽을 지경이었다. 오늘처럼 비가 부슬 부슬 내리는 선선한 날이었다. 마른 흙내음이 코 끝에 와닿고 지렁이는 스물스물 마당을 기어 다니고 있었다. 엄마는 누런 주전자에 물을 팔팔 끓여 놋수저에 스테인리스 밥 그릇을 몇 개를 들고 방으로 들어오셨다.

방바닥을 뒹굴거리던 우리들은 순간 엄마가 무슨 맛있는 것을 준비하고 있다는 예감에 벌떡 일어나 엄마의 일거수 일투족을 주시하고 있었다. 엄마는 들고 온 주전자와 밥그릇과 수저를 방바닥에 내려놓고는 일어서서 서서히 팔을 위로 들어 올리셨다. 그리곤 장롱 위에 올려진 문제의 그 스테인리스 양푼을 내리셨다. 우리는 마른침을 꼴깍 소리가 나도록 집어삼키며 까만 눈동자를 반들거렸다.

엄마가 서서히 뚜껑을 열어 젖혔다. 하얀 가루가 소복히 담겨 있는 것이 꼭 밀가루 같았다 '에이 겨우 밀가루였잖아'하며 실망을 한 우리는 뒤로 물러섰고, 엄마는 아무 말없이 그 하얀 가루를 그릇에 몇 수저 퍼 담고는 끓는 물을 부어 수저로 휘휘 젓기 시작했다. 그러자 뜨거운 물에 가루가 뽀얗게 풀어지며 마치 막내 동생이 먹다 뺀 엄마의 젖꼭지에서 흘러나온 젖물 같이 되었다.

실망을 해서 뒤로 물러서던 우리는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우와 이게 뭐꼬?" 하며 다시 모여들었고 엄마는 그 하얀 물을 먹어보라고 했다. 우리는 무언지도 모르는 그 뜨거운 물을 받아들고 후후 불어가며 맛을 보았다. 달지는 않지만 고소한 맛이 났다. 마른 가루도 한 입 먹어 보았다. 입안에서 뽀득거리는 맛이 더욱 고소했다. 그것은 우리들이 처음 먹어보는 가루우유였다.

당시 우유라는 것이 있는 줄도 몰랐던 우리는 그 고소한 맛에 홀딱 반하고 말았다. 귀한 우유가 어떻게 우리 집까지 오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엄마는 밖에 나가서 말을 해서도 안 되고 몰래 훔쳐 먹어도 안 된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절친하게 지내던 소사 아저씨가 옥수수 빵을 찔 때 쓰는 가루우유를 조금 주신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여간에 그날 맛 본 가루우유의 고소한 맛은 계속 입에서 맴돌았다. 엄마가 또 언제나 우유를 타 주시려나 학수고대 하였지만 그날 이후로 엄마는 좀체 우유그릇을 내리지 않으셨다. 엄마가 막내 동생을 업고 마실을 간 날이었다. 언니도 다른 동생들도 다 어디 가고 없던 그날. 바로 아래 남동생이 "누부야 우리 우유 한 숟가락만 꺼내 무까?" 하며 나를 꼬드겼다.

"니는 키도 작은데 우예 꺼낼끼고 안 된다" 했더니 "누부야가 엎드리고 내가 누부야 등 위에 올라가면 안 되나" "그카가다 엄마한테 대등키마(들키면) 맞아 죽는다. 나는 실타" "딱 한 숟가락만 꺼내 묵고 고대로 (그대로) 올려 놓으면 안 되나"

먹는 것에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동생이 자꾸 꼬드기는 바람에 나는 하는 수 없이 등을 구부려 엎드리고 말았다.

"됐나?" "안 됐다. 누부야가 등을 좀 더 올려봐라." 나는 등을 더 동그랗게 세워주곤 "인자 됐나?" "안 된다. 쪼매만 더 올려봐라." 그래서 조금 더 동그랗게 등을 구부려 주었는데, '퍽' 하는 둔탁한 소리가 방바닥에 내려꽂히고 있었다. 동그랗게 세워진 등에서 중심을 잃은 동생이 방바닥으로 굴러 떨어진 것이다. "야야 우리 고만하자. 암만캐도 니는 키가 작아서 안 되겠다" 라고 동생을 달랬다.

그러나 꺾이지 않는 동생의 고집은 세단 짜리 장롱 서랍을 빼서 계단처럼 밟고 올라가 장롱 가운데에 있는 화장대에 올라서면 될 것 같다며 자기 엉덩이를 밀고 서 있어 주기만 하란다.

'아무래도 이놈이 오늘 무슨 일을 저지르지' 하면서도 나는 또 무엇에 홀린 듯 동생 엉덩이를 온 몸으로 밀고 서 있었다. "인자 돼나?" "응! 쪼매만 기다려봐라" 드디어 동생은 우유 그릇에 손이 닿았는지 부스럭거리며 그릇 꺼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꽹과리 치는 소리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징을 치는 소리도 아닌 것이. 와장창하며 스테인리스 그릇이 방바닥에 부딪치는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도 아닌데 동생의 손에서 미끄러진 양푼에서 쏟아져 나온 하얀 우유가루가 눈가루처럼 동생의 머리 위에도 내 머리 위에도 뽀얗게 흩어져 내렸다. "이, 이, 이, 이게 뭐꼬? 니 지금 우유 다 쏟아 뿟나?" 그날 나와 동생은 하얀 눈사람처럼 뒤집어쓴 그 우유가루가 먼지처럼 다 털어져 나가도록 까만 부지갱이로 맞아야 했다. 얼굴에 뒤집어쓴 우유가루 위에 눈물과 콧물이 흘러내리니 찝질한 간까지 맞추어 입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비오는 오후, 차창에 떨어지는 빗물의 낭만도 함께 즐길 수있는 추억의 열차에 승차하실 분 어서어서 오세요.

덧붙이는 글 | 방송에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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