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색소폰 오케스트라는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건가요? 탄생 배경이 궁금합니다.
[최기수] "이야기가 처음 나왔던 건 작년 겨울이었어요. 그때 색소폰을 배우면서 알고 지내던 사람들끼리 색소폰 오케스트라를 한번 만들어보면 어떻겠느냐는 말을 했어요. 여기 예원색소폰 학원 윤강기 원장님이 주축이 되어서요. 저희 전라필의 지휘를 맡고 있는데, 이분이 색소폰이라는 악기 하나만으로 학위를 받으셨어요. 어쨌든 그때만 해도 이렇게 규모가 커질 줄은 몰랐죠."
[최강일] "올 3월에 발족회를 구성하고 4월 한 달 동안 회원을 모집했어요. 다음에 카페를 개설하고 회원을 모집했는데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었습니다. 인터넷 외에도 현수막, 입소문 등을 듣고 찾아온 회원도 꽤 많았거든요."
- 한 달 동안 70여 명이나 되는 인원모집이 다 끝났다는 건가요? 마치 카페 개설을 기다리고나 있었다는 듯이요? 잘 믿기지가 않는데….(웃음)
[최강일] "우리 주위에 의외로 색소폰 연주자들이 많거든요. 특히 전주에 더욱 많다고 그러는군요. 윤 지휘자님 말에 의하면 서울의 색소폰 악기점에서 들은 얘긴데 물건의 반절 가량이 전주로 간 데요. 그만큼 색소폰 인구가 많다는 얘기죠."
- 그 이유는 뭘까요?
[최강일] "글쎄요. 애향의 도시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아마 색소폰이 누구나 배우기 쉬운 악기라서 그렇지 않았나 싶습니다."
[최기수] "의외로 색소폰이 배우기 쉽고 접하기 어렵지 않은 악기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색소폰에 대해 많은 편견을 갖고 있어요. 배우기 어렵고 힘들고 아무나 하는 악기가 아니라는 식으로 바라보죠."
누가 시켰다면 죽어도 못했다
- 색소폰 인구가 그렇게 많은 줄 저도 미처 몰랐습니다. 그렇게 모인 단원들은 어떤 분들인가요? 단원들 얘기도 해주세요.
[최기수] "얼굴만큼 아주 다양한 분들이 왔어요. 직업도 각양각색입니다. 선생님, 사무직원, 주부, 사업가, 의사, 목사 등등 아주 다양해요. 특히 그중에는 시골에서 곶감농사를 하며 색소폰을 부는 노총각도 있고 학생들 생일마다 색소폰연주를 해주는 교장선생님도 계십니다. 참 재밌죠? 익산, 군산은 물론이고 멀리 전남 나주에서 오신 분도 있습니다. 색소폰 동아리나 앙상블은 많이 있지만 이런 오케스트라는 처음이어서 일부러 찾아왔다는 게 그분들의 이야기였죠."
- 남녀비율은 어떤가요? 아무래도 남자분들이 더 많죠?
[최강일] "남녀 각각 20대 80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주 연령층은 20대부터 40대 중반에 걸쳐있습니다. 50대 이상이신 분도 꽤 됩니다."
- 아까 주부도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분들은 단순히 호기심 때문에?
[최기수] "아닙니다. 꽤 오랫동안 연주해 온 준프로급들이세요. 열정도 대단하죠."
- 창단식하고 근 두 달만에 창단연주회를 한다는 게 결코 쉽지 않았겠죠? 가장 어려운 점은요?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함께 들려주세요.
[최강일] "무엇보다 다들 생업이 있는 분들이라 시간 맞춰서 연습하기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주로 주말을 이용해서 연습했죠. 밤늦게까지 모기에게 물려가며 전주공고 강당에서 연습했던 기억은 아마 잊지 못할 거예요. 하루에 10시간 이상 했어요. 누가 시켜서 한 일이라면 죽어도 못했죠."
[최기수] "돈이 되는 일도 아닌데 오직 색소폰을 연주하고 싶다는 바람 하나로 뭉친 분들이었습니다. 오히려 자비를 들여가며 간식도 챙겨오고 이것저것 마음써주는 모습에서 서로 큰 격려가 되었지요. '가끔은 내가 지금 뭣 하는 짓인가' 싶다가도 그런 분들을 보면 힘이 나곤 했습니다.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라고 해서 뒤편에서 팔짱만 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책상도 나르고 청소도 하고 그랬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연습시간이 어떻게 즐겁지 않겠어요?"
- 창단공연의 즐거운 분위기도 그러한 팀워크에서 기인한 것 같네요. 매주 흥겨운 자리였다고 들었어요. 어깨가 들썩거리고 콧노래가 나올만큼.
[최강일] "고상한 음악 듣는다고 공연장에 와서 조는 사람들 많이 봤어요. 그래서 저희는 일부러 대중적인 레퍼토리만 골라서 분위기를 살렸습니다. 우선은 듣는 사람이 잘 알고 즐거워야 하기 때문이죠. 나중에는 관객들이 스스로 박수도 치고 무대 위에 올라와서 춤도 추며 까르르 웃기도 하고 휘파람도 부는 등 매우 즐겁고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연출되었어요. 저희도 신났죠."
- 그러한 연주회를 놓친 분들은 안타까울 것 같아요. 다음 연주 일정은요?
[최기수] "방금 전, 10월에 있을 세계소리축제에서 섭외요청이 들어왔어요.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걸로 했어요. 그리고 8월에는 색소폰 솔리스트 데니정과 익산에서 협연이 있어요. 10월에는 군산에서 연주회가 잡혀있구요. 가장 가까이는 8월 1일부터 5일까지 열릴 예정인 '새만금 락페스티벌 대회'에 나갈 계획입니다. 어디에서 무슨 연주를 하든 '관객과 함께 즐기는 연주'를 하자는 게 저희 신념입니다."
- 연습 부지런히 하셔야겠네요. (웃음)
[최강일] "직장인들이라서 그 점이 좀 우려됩니다. 아무래도 시간의 제약을 받으니까요. 창단연주회까지는 어떻게 여기까지 잘 끌고 왔는데 그 후부터가 문제거든요. 그러나 지금 창단연주회를 성공적으로 마쳐서 모두들 고무되어있는 상태라 이대로만 잘 잡아주면 큰 문제는 없을 듯합니다."
- 이제 두 분 개인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우선 악장님부터. 색소폰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나요?
[최강일] "올해 9월이면 색소폰을 배운지 만 3년 됩니다. 처음 색소폰을 접하게 된 계기는 한 친구가 색소폰을 부르는 것을 보게 된 것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다지 잘 부른 연주는 아니었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 멋있어 보이던지. 한마디로 문화적 충격을 받은 셈이죠. 그 다음 날 바로 색소폰 학원에 등록했잖아요." (웃음)
[최기수] "예전부터 기타나 다른 악기들을 조금씩 다루어봤는데 마음 한구석에 색소폰에 대한 열망이 크게 있었나 봐요. 남성적인 악기라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한번 배워보자 마음먹었죠."
3개월 만이면 누구나 배울 수는 있다?
- 아까 색소폰이 의외로 배우기 어렵지 않다고 하셨는데 정말인가요?
[최기수] "어려울 게 없습니다. 악기 자체에 음 셋팅이 되어있어서 거기에 맞춰 누르기만 하면 됩니다. 별다른 주법이나 난해한 기교가 있는 게 아니니까 3개월만 하면 누구나 배울 수 있습니다."
- 3개월이라구요? 오호∼
[최강일] "보통 수준의 곡들을 연주하는 데는 그 정도쯤이면 무난해요. 어지간하면 그 정도는 다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얼마나 깊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느냐 이거죠. 그 뒤부터는 끊임없는 노력과 연습이 뒤따라야겠죠. 다른 악기들도 마찬가지겠지만."
- 처음에 색소폰 오케스트라로 연주회를 한다고 했을 때 들었던 의문 중의 하나는 연주곡 레퍼토리가 그렇게 다양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최기수] "4옥타브까지는 가능해요. 그 안에서는 어지간한 곡들은 다 연주할 수 있어요. 음역이 넓다고는 못해요. 그러나 베토벤의 교향곡부터 장윤정의 '어머나'까지 모두 연주 가능합니다."
[최강일] "음역이 넓지는 않아도 표현력이 아주 풍부하고 다양합니다. 같은 음이라도 어떻게 기법을 달리하느냐에 따라 그 색이 확연히 달라지죠. 예를 들어 드롭(내리는 음)이냐 밴딩(끌어올리는 음)이냐에 따라 분위기가 다르거든요. 또 칼톤(가래끓는 듯한 음)이냐 서브톤(바람이 빠지는 듯한 음)이냐에 따라서 작품의 맛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주법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색소폰 고수들이 하는 것이지요."
- 아무래도 호흡이 중요하겠죠?
[최강일] "당연합니다. 호흡은 철저히 복식호흡이어야 합니다. 대개 초보자들이 처음 배울 때 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거나 소리를 내더라도 '삑-' 하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이유는 호흡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색소폰 연주는 호흡법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따라서 복식호흡하는 연습을 평상시에도 해야 해요. 상대방과 이야기할 때도 복식호흡을 하고 숨을 참는 연습을 해야 하는 거죠. 복근에 공기를 가득 넣은 기분으로 악기를 연주한다고 하면 이해가 되실 거예요."
[최기수] "늘 복식호흡을 하기 때문에 뱃살이 빠지게 됩니다. 실제로 색소폰 연주를 하면서 뱃살이 빠진 분들을 많이 보았어요. 다이어트가 절로 되는 거죠. 그리고 색소폰 연주하는 게 굉장한 열량 소모가 되는 일이거든요. 다이어트를 병행한 취미생활을 고려하시는 분들께 적극 추천입니다." (웃음)
베토벤부터 '어머나'까지... 색소폰의 변신은 무궁하다
- 댁에서 연습은 자주 하시나요?
[최강일] "소리가 굉장히 커서 집에서는 연습을 못합니다. 방음시설이 갖춰진 곳에서만 연습할 수가 있어요."
- 그러고 보면 오케스트라만의 연습공간도 꼭 필요하겠군요.
[최기수] "현재는 여기 학원의 연습실을 쓰고 있습니다만 어엿한 연습공간을 마련해야죠. 그렇지만 현재 저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저희를 이끌어줄 단장을 모시는 일입니다. 70명의 열정을 한데 묶어서 지도해줄 수 있는 단장님을 지금 찾고 있는 중인데 역시 어렵네요. 어떤 대가나 이익을 바라지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저희 색소폰 오케스트라를 이끌어줄 분이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오직 '전라필하모니 색소폰 오케스트라'의 창단과 연주회를 위해 두 달여간 숨가쁘게 달려왔습니다. 주위에서는 시기상조 아니냐, 무리 아니냐며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기도 했지만 왜 옛말에도 있지 않습니까.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한 번 불처럼 일어난 열정과 신바람의 여세를 몰아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거든요. 저희끼리도 우스갯소리로 그래요. 한국사람 아니면 절대 이렇게 못한다고요. 어쨌거나 이 여세와 열정을 계속 몰아서 전라필하모니 초석 다지기에 힘쓸 작정입니다."
- 모쪼록 한번 일으킨 신바람이 계속 저희를 즐겁게 해주었으면 좋겠네요.
[최강일] "색소폰 특유의 이 끈적끈적한 음색이 모두에게 매력적으로 들리는 그날이 분명 올 겁니다." (웃음)
| | 색소폰 불기... 장난이 아니었다 | | | [인터뷰 뒷이야기] 세상에 쉬운 악기는 없다 | | | |
| | | ⓒ안소민 | |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수 없다면서 악장님께서 손수 색소폰 연주를 해주었다. 창단연주회 이후 처음 잡아보는 색소폰이라고 했다. 사실 그 마음 조금은 이해된다. 어쨌든 연습장 조명을 끄고 사이키 조명을 켜니 훌륭한 무대가 되었다.
'끈적끈적'(악장님과 사무국장님의 표현)한 색소폰 음색은 흐릿한 조명 아래서 더욱 그 본색을 드러내는 듯. 소리새의 '그대 그리고 나'와 이광조의 '사랑을 잃어버린 나'를 라이브로 들었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 와 있는 듯했다.
그런데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수 없다면서 이번에는 손수 불어보란다. 마침 리드(피리·리드 오르간·오보에·클라리넷 등의 악기에 붙이는, 탄력성 있는 얇은 조각. 입으로 불거나 하여 공기를 보내면 진동하며 소리를 냄) 새것이 있다면서 끼워서 주신다. 이렇게까지 배려해주시는데 안 할 수가 있나. 하물며 뱃살도 빠진다는데…. 물론 한번 분다고 뱃살이 빠지는 건 아니지만.
복근에 힘을 주고 세게 불어보았지만 꿈쩍도 않는다. 두 분의 표정 모두 '불긴 불었어?'다. 다시 힘을 세게 주어 불었다. 그런데 이번엔 찢어지는 소리가 난다. 그게 바로 초보자들이 대개 거쳐간다는 소리. 어쨌든 소리를 낸 것만으로도 가상하다고 스스로 위안하고 있는데 두 분이 서로 나누는 이야기.
"그게 바로 초보자들이 내는 소리예요. 배가 아니고 목으로 불기 때문에 그렇죠."
"근데 악장님. 지난번 오신 그 여자분. 처음인데 소리 잘 내시데. 여자분들에도 처음인데도 꽤 좋은 소리를 내는 분도 많았죠."
슬며시 색소폰을 내려놓았다. 맞다. 세상에 쉬운 악기가 어디 있을까. 아니, 세상에 쉽기만 한 게 어디 있을까. 색소폰 부는 거 장난 아니었다. 근데 정말 뱃살은 빠질 것 같더라. 마치 윗몸일으키기를 할 때의 열량소모와 비슷한 듯. 그것 하나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 | | | |
덧붙이는 글 | 전라필하모니 색소폰 오케스트라 카페 (http://cafe.daum.net/jeonlaph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