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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비야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 푸른숲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너무 멋진 제목이다. 한비야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미미하게나마 알고 있었지만, 이 책으로 내 손이 가게 된 진짜 이유는 이 제목 때문이다. 안일한 일상에 타성에 젖어서 사는 내게 뭔가 주문을 거는 듯한 제목이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한 번은 꼭 읽어 보려고 했는데 미적거리고 있다가 도서관에서 책을 보는 순간 절로 손이 갔다.

이 책의 작가인 한비야는 바람의 딸이라는 예명으로 더욱 유명한 여성이다. 오지탐험가로 명성을 날렸고, 이 책 이전에도 6권의 여행기를 책으로 내 놓은 바 있다. 그러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에서는 오지탐험가나 여행가가 아니라 세계적 구호단체인 월드비전의 긴급구호팀장으로 우리에게 얼굴을 내민다.

이전의 책이 아마추어 여행가의 책이라면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프로페셔널 긴급구호전문가의 책이다. 그렇다고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가 긴급구호에 관한 따분한 지침서 같은 책은 아니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한비야의 5년간의 행적이 녹아든 책이다.

7년간의 오지탐험으로 유면해진 그녀에게 어느날 갑자기 전화가 온다. 그 전화는 세계적 긴급구호재단인 월드비전의 회장이 하는 전화다. 그녀에게 월드비전의 긴급구호팀장을 맡아달라는 제의 전화다.

여기서 긴급구호라 함은 언뜻 119쯤을 연상하기 쉬운데, 그런 것은 아니고 일종의 난민보호임무이다. 48시간 안에 세계의 재난지역으로 가서 그 곳의 난민들을 위해서 헌신적인 봉사를 해야 하는 사명이다. 일 년의 절반 이상을 세계 곳곳의 전쟁지역, 재난지역에서 보내야 하는, 보통사람으로서는 하기 힘든 일이다.

한비야는 오지탐험을 하면서 진작부터 긴급구호에 관심이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비교적 선뜻 그 일을 수락하고 지금껏 줄곧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비야는 난민들을 돕기 위해서 세계 곳곳 가보지 않은 곳이 없다. 우리들이 비싼 돈 들여서 동남아다 유럽이다 유람을 다니는 동안 그녀는 세계의 위험한 지역으로만 떠돈 것이다. 물론, 여기서 떠돌았다는 표현이 정처 없이 헤맸다는 뜻은 아니다. 그녀는 분명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난민들을 돕기 위해서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팔레스타인, 네팔 등지로 간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그녀의 여행지가 쓰나미 재난으로 간 인도네시아 정도를 제외하고는 정치적으로 안정된 곳이 거의 없다. 정치적 안정을 운운하기보다는 거의 준전쟁터 또는 실제로 포탄과 총알이 쏟아지는 곳이다. 그런 곳에 한비야는 난민들을 돕거나 그들의 재건을 지원하거나 그들에게 긴급물자를 분배하기위해서 떠났다.

보통 사람은 세 가지 중 하나를 위해서 산다. 돈으로 대표되는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거나, 다른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권력을 쥐기 위해 살거나, 그것도 아니면 명예를 위해서 산다. 그런데 단 하나의 예외가 있다.

그것은 가치를 위해서 사는 것이다. 누군가를 돕기 위해서 산다는 것은 가치를 위해서 사는 것과 다름 아니다. 한비야가 그 힘든 ‘행군’에서도 쉽사리 지치지 않고 주저앉지 않고 전진한 것도 바로 자신이 존중하고 지키려는 가치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 한비야의 삶의 가치가 대단히 복잡하고 정교한 철학과 같은 것은 아닌 것 같다. 책의 행간마다 장장마다 배어있는 그녀의 삶의 지향은 어려운 사람을 돕고 남과 더불어 사는 것이다. 그런 자신의 가치를 실현코자 한비야는 그 먼 이역만리까지 날아갔으리라.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행복을 추구한다. 불행하게 살고자 사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행복이라는 것이 자신의 것, 자신의 가족의 것으로 매몰되는 경우를 우리는 주위에서 허다하게 볼 수 있다.

행복의 외연이 넓혀져야 한다. 가족을 넘어서 국가와 사회로, 국가와 사회를 넘어서 전인류의 보편적 행복에 까지 가치의 외연이 확장돼야 한다. 그러기 위한 좋은 모범예가 한비야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에 등장한다.

한비야는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도, 돈을 위해서도, 권력을 위해서도 아닌 수많은 지구촌의 헐벗은 기아선상의 이웃을 위해 ‘행군’을 한 것이다. 물론, 그녀의 봉사활동을 테레사수녀 같은 분의 것과 동일시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그런 활동을 통해서 자신이 커가고 자라는 것을 보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한비야가 ‘가치’라는 추상적인 외에 추구한 것이 하나 더 있다면 성장으로 보인다. 성인을 통해서도 경험을 통해서 더더욱 성장하는 자신을 보는 것, 그것은 그 무엇보다도 큰 기쁨을 주는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열심히 읽었다고 어느날 갑자기 긴급구호활동과 국제문제에 갑자기 진지한 관심이 생겼다고 한다면 그것은 과장이거나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기에는 나이도 들만큼 들어 내 삶의 방향성과 지향에 대한 고민은 어느 정도 마무리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월드비전에 후원을 한다든지 블로그에 국제기아, 분쟁에 관한 글을 한 편 올리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중요하고 옳은 일을 알게 되었을 때 할 수 있는 최소한도의 반응을 보이는 것, 그것이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를 일고 내게 실천적으로 깨닫게 해준 것이다. 최소한도는 하면서 살겠다는 내 주의주장을 실현시켜 준 고마운 책이다.

여러분들에게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를 권한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 지음, 푸른숲(2005)


#한비야#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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