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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른 살을 야구게임에 비교해 신선한 반응을 얻어내고 있다.
ⓒ imbc
'노처녀' 이야기는 이제 너무나 많다. 우리의 한국드라마가 해외로 지속적으로 뻗어나가기 위해선 참신한 소재를 개발해야 한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노처녀 30대의 경계선에 서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내 이름은 김삼순>이 공전의 히트를 치며, 이복 언니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다. 사실상 재생산 복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닮았다. 조금씩 이름이 다르고, 얼굴과 생김새가 다르다. 물론 캐릭터를 면밀히 살펴보면 모두가 개성 있는 각자의 인물이다.

그럼에도 연애를 제대로 못하고, 실수투성이에, 남자들이 주위에 널려 있다는 점만은 똑 닮았다. 그래서 언뜻 보면 그 인물이 저 인물이고, 저 인물이 그 인물 같다. 그래서 요즘 들어서 노처녀 이야기가 예전만큼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미 시청자들은 그러한 노처녀 이야기에 식상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배짱 두둑하게 MBC에서 노처녀의 이야기를 방송한다고 한다. 그리고 첫 방송을 마치고 3회째 방송을 마쳤다. 바로 <9회말 2아웃>이다.

역시나 언뜻 보면 30살에 출판사에 다니고, 신춘문예를 꿈꾸는 철없는 언니 홍난희가 주인공이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역시나'라는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이 언니 매력적이다. 아니, 드라마 자체가 점점 매력이 더해지고 있다.

30대에 놓은 두 남녀의 인생살이

이 드라마는 정확하게 노처녀 이야기의 사랑 찾기를 그린 드라마가 아니다. 물론 1회 때 스물아홉 살, 서른을 목전에 둔 홍난희(수애)의 일상으로부터 출발한다. 월급을 주다 안주다 말다 하는 출판사에 다니며, 신춘문예 공모에 매번 떨어지면서도 소설가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늘 엄마에게 애물단지 취급을 받으며 "미친년" 소리를 듣는 홍난희. 거기에 연애는 22살짜리 대학생과 열렬한 사랑을 하지만 그것도 모르고 난희의 엄마는 결혼을 종용한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노처녀 이야기다. 하지만 그녀와 함께 30년 지기 친구 변형태(이정진) 인물이 등장한다. 광고기획사에 다니며,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장본인지만 정작 자신은 떠나간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 하지만 일에서만큼은 진정한 프로다.

꿈을 버리지 못하는 여자와 사랑을 버리지 못한 남자. 즉 30대의 길 위에 놓인 청춘남녀의 이야기다. 특히 1회에서 홍난희의 내레이션이 들어가 극을 이끌었는데, 2회에서는 변형태의 내레이션으로 극을 이끌어 갔다. 이 점은 드라마의 주인공이 그들이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다.

그리고 이야기한다. 서른을 앞둔 지금, "아무것도 해 놓은 것 없이 서른을 맞는 게 두려워"라고 말한다. 그들은 그렇게 '9회말 2아웃'에 주자로 나선 것이다. 그리고 조금씩 1회 때 홍난희의 모습만 비춰주었던 것에서 벗어나 2회 때는 변형태의 이야기와 난희의 연애 이야기로 그 영역이 넓어졌다.

잘나가는 변형태지만 아픈 사랑의 과거 때문에 제자리를 맴돌고 건강한 30대를 위해 여행을 떠나보지만 그것도 사기를 당해 여의치 않고 다시 돌아온다. 난희도 마찬가지다. 서른에 22살과 연애하면서 현실에 부딪혀 이별을 고한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우정에 이상한 변화 조짐을 보이는 난희와 형태. 현재 <9회말 2아웃>은 여기까지 보여주며 <내 이름은 김삼순>의 아류라는 말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었다. 즉, <9회말 2아웃>은 30대의 청춘남녀의 이야기로 노처녀 이야기로 한정지어서는 안 된다.

난희는 삼순이와는 달라!

▲ 극중 난희와 형태로 각각 분한 수애와 이정진의 연기변신이 돋보인다.
ⓒ imbc
물론 난희의 캐릭터는 삼순이 언니와 흡사하다. 자신의 가게를 열고 싶어하는 삼순이 언니와 소설가 지망생 난희는 이복 자매처럼 닮았다. 그래서 그녀의 어머니들도 비슷한 캐릭터다. 딸을 구박하고, 남편의 죽음으로 인해 억척스러운 인생을 살아왔다는데서 닮았다.

하지만 삼순이와 난희는 닮은 듯 닮지 않았다. 적어도 '결혼'이란 현실에 직면한 그녀들은 그것을 대하는 태도가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우선 삼순이는 엄마의 선에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임한다. 애인과 이별 후 결혼을 목표로 여러 선 자리에 나간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사랑받지 못함에 갈증을 느낀다.

반면 난희는 결혼보다 우선 자신의 꿈이 먼저다. 그래서 선 자리에 나가도 대머리라며 싫다고 말하는 그녀다. 그리고 꿈에서 신춘문예 당선 꿈을 꿀 정도다. 즉, 그것은 그녀가 삼순이처럼 확고한 꿈을 이루었거나, 직업의 부재 때문이다.

삼순이는 파티셰로 자신의 직업에 어느 정도 자부심과 자신감이 있다. 다만 자신의 가게를 내고픈 꿈은 있다. 그래서 그녀는 우선 결혼이 먼저이다. 어떻게 보면 난희는 삼순이보다 어릴 수도 있다. 자신의 정체성과 꿈을 이루지 못하고 방황하기에 말이다.

이렇듯 <9회말 2아웃>을 <내 이름은 김삼순>의 아류작으로 봐서는 안 된다. 오히려 노처녀 이야기에 함몰될 수도 있는 소재를 30대의 연령으로 범주를 넓혔고, 그것을 야구 게임에 비교한 점은 작가의 탁월한 능력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야구게임에 비유한 <9회말 2아웃>은 경기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대로 난희와 형태의 이야기로 대입시켜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냈고, 동년배의 친구들의 이야기를 함께 보여주면서 30대의 이야기를 하고 싶음을 강력하게 어필하고 있다.

연기자들의 변신과 탁월한 연출력

이와 함께 <9회말 2아웃>은 회를 거듭하면 할수록 신선한 매력을 뿜어내고 있다. 바로 그것은 연기자들의 변신 덕분이다. 우선 난희 역을 맡은 수애는 그동안 청순 미인을 대변해왔다. 그러던 그녀가 실제 나이보다 세 살이 많은 난희로 분하면서 명랑성을 보여주고 있다.

확실히 이전과 다르다. 입에 욕을 달고 살며, 소심하면서도 명랑한 노처녀의 모습으로 선보이고 있다. 그리고 상대 파트너 이정진도 그동안 젠틀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보통 대한민국 남자의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그는 늘 '츄리닝'을 입으며, 일상의 연기에 힘을 싣고 있으며, 또 다른 상대 파트너 야구선수로 분한 김정주(이태성)는 혈기왕성한 20대 청춘 연기를 잘 소화해 내고 있다. 그래서 진부할 수도 있는 캐릭터가 살아났고, 신선한 캐릭터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감독과 작가의 노력이 <9회말 2아웃>의 재미에 한 몫을 하고 있다. 우선 감독은 과거와 현재의 순서를 교차 편집해 절묘한 타이밍을 만들어 내는 연출력을 보이고 있다. 그것은 그동안 드라마에서 잘 사용하지 않던 편집스타일인데, 1회 엔딩으로 외국으로 여행 다녀오겠다던 형태가 초췌한 몰골로 다시 돌아오는 장면에서 끝이 났다.

그리고 2회 때 드디어 그 비밀이 밝혀진다. 즉 교차 편집으로 다음 회에 궁금증을 유발하면서 지속적으로 시청자들의 채널을 고정시키는 역할을 해주고 있다. 이밖에 3회 때 벌어지는 난희와 형태의 우정 싸움은 그야말로 묘미였다.

둘이 동거에 들어가면서 부딪히며 감정의 골이 깊어진 뒤 폭발한 두 사람이 술집에서 술 내기를 하며 벌이는 대회에 육두문자가 그대로 방영되면서 현실에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친숙한(?) 언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지 같은 놈", "미친년" 등의 욕을 사용하면서 싸우는 장면이 등장했던 것이다.

그래서 보다 현실성이 가미되었고, 두 사람의 캐릭터를 단적으로 보여줄 수 있었다. 물론 육두문자를 사용해 현실성을 가미한다고 하면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센스 있게 심한 육두문자에는 "삐리리∼"를 사용해 애교로 넘어갈 수 있게끔 완급을 잘 조절했다.

이처럼 <9회말 2아웃>은 우리가 식상한 소재라 여겼던 '노처녀' 이야기가 아닌 30대의 이야기를 보여주고자 여러모로 노력하고 애를 쓴 흔적이 역력하다. 그래서 조금씩 시청률이 상승하는 <9회말 2아웃>의 역전 홈런 한 방이 기대되는 순간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데일리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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