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란 사람들이 살아가는 평지보다 높이 솟아오른 땅이다. 높은 만큼 하늘과 가까이에 있다. 하늘과 가깝다는 뜻은 하늘에 닿기 쉽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을 통해서 하늘과 통하려고 한다.
아니 산이 있어야 하늘과 통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은 바로 세계의 중심이며 그 가운데 우뚝 높이 솟아오른 산을 우주산이라 한다. 그래서 우주산은 세계의 중심에서 하늘과 통하는 산인 것이다.
신화에서 그런 예를 간단하게 찾아보자. 우리가 일상적으로 부르는 단군신화를 보면 하느님의 아들 환웅이 태백산 꼭대기로 내려온다고 하였다. 여기서 태백산은 우주산으로 하늘로 올라갈 수도 있고 반대로 하늘에서 내려올 수도 있는 곳이다.
그리스신화의 올림푸스산도 마찬가지로 하늘나라의 신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묘사되고 있다. 불교에서는 세계의 중심산을 수미산이라 한다. 수미산에는 사천왕천과 도리천이라는 하늘나라도 있고 그 위로 또 많은 하늘나라가 있다고 한다. 요약하면 우주산은 세계의 중심에 있으며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통로의 역할을 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단지 하늘과 통한다고 해서 우주산이라 하지 않는다. 산이 아무리 높아도 흙으로 만들어진 땅이다. 땅의 아래 즉, 지하세계와도 이어지는 곳이어야 한다. 지하세계는 어떤 곳인가? 밝음, 신, 깨달음 등의 긍정적인 의미를 가진 하늘과는 반대로 암흑, 죽음, 지옥 등 부정적인 의미가 떠오를 것이다. 그렇다면 우주산은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이 지하세계와 하늘나라 어디로도 갈 수 있는 소통로라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금강산 또한 우주산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화엄경>이라는 불교 경전에서는 법기보살이 상주하는 곳을 금강산이라 했다고 한다. 보살이란 쉽게 말해 신(神)이라 해도 무방한 존재이니 보살이 거주하는 금강산은 우주산이 틀림없을 것이다. 금강산의 다른 이름 봉래산 또한 도교에서 말하는 신선이 사는 산이 아니던가.
이 또한 사람의 영역이 아닌 곳이 분명하다. 금강산의 또 다른 이름인 개골산이나 풍악산이라는 이름은 바위나 바위가 가진 굳센 기운(氣運)을 말하고 있다. 풍수를 공부하는 사람은 바위는 기(氣)가 뭉친 곳이라 한다.
바위가 많은 산 즉, 좋은 기(氣)가 많이 뭉친 성스러운 공간을 뜻하는 이름과 다르지 않은 것이니 이 또한 우주산임을 상징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곳을 찾아가는 것이니만큼 속된 모습의 인간을 벗어버리고 성스러운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금강산을 향하여
7월 15일 새벽 5시가 조금 지난 시간, 부산에서 5살짜리 꼬마 한 명을 포함하여 5명을 태운 차량이 출발했다. 2박3일 중 이동에만 꼬박 하루를 소비하는 비효율적인 여행에다 꼬마 한 명까지 동행이라 썩 내키지 않는 기분이지만 그래도 천하제일명산 금강산으로 향한다는 마음으로 위안을 삼는다. 중앙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 그리고 7번 국도를 따라 올라간다.
사이사이 보이는 온갖 나무와 풀들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무궁화, 배롱나무, 자귀나무이다. 무궁화는 우리나라 꽃이니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 배롱나무는 답사랍시고 다니면서 이 나무를 모르면 뭔가 뒤처졌던 느낌을 가졌던 시절에 알았던 나무였다.
자귀나무는 우리나라에 지천으로 널려 있으며 언제부터인가 내 맘 속에 들어온 나무로 요즘 가장 애착이 가는 나무이다. 5살짜리 꼬마 연우한테는 너무 많은 것을 알려주는 것이 오히려 부담스럽다. 그래서 이 세 나무만 열심히 알려줬다.
점심을 먹고 화진포현대아산휴게소에 도착하여 자잘한 서류를 받는다. 많은 사람들을 한번에 처리해야하는 직원들은 방북절차나 분실 등에 대한 은근한 협박을 가해온다. 오래 전 머리 속 한 구석에 남아있는 북한에 대한 기억이 스멀스멀 기어 나와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시점이다. 차량을 타고 비무장지대를 통과하여 북녘 땅으로 들어가는 순간 여기도 역시 사람이 사는 곳임을 느낀다.
사람이 사는 곳이지만 시간은 25~30년 전의 내 과거로 되돌아가 있다. 회색빛 지붕과 담벼락, 울퉁불퉁한 자갈길, 그리고 밭일하는 나의 부모와 마을사람들, 간간히 뛰어노는 내 친구들의 모습들. 이제 겨우 불혹을 넘겼지만 나에게 이런 모습은 낯설지 않았다.
내 또래에 이런 기억을 가지지 않은 친구도 당연히 많을 것이고 10살만 어리다면 상상하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나는 대학시절 같은 나라에 살아도 서로의 어린시절 기억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대학 동기 녀석이 유치원과 초등학교 시절 피아노 학원 다니기 싫어 죽는 줄 알았다는 말을 할 때 시골에서 올라온 두 녀석은 그 어색함에 말문을 닫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로 돌아간 이 기분은 산의 의미는 뭔가라는 처음의 질문과 연계해서 보면 너무 우스운 답이 나와 혼돈스럽다. 산은 내가 사는 세속의 공간을 벗어나 하늘이라는 신령스런 곳으로 이어주는 길이었다면 그곳의 시간은 과거-현재-미래의 구분이 없는 영원(永遠)이어야 하는데 그냥 과거 속으로 매몰되어 버린 것이니 어찌 혼돈스럽지 않을까? 철조망 건너편의 어릴 적 나의 모습과 관광증인지 뭔지 가슴에 달고 있는 지금의 내가 서로 마주보는 황당함도 웃기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혼돈은 뒤로 하고 우리 꼬마 연우를 데리고 교예단의 공연을 보러 갔다. 갖가지 공연을 보면서 연우에게 묻는다.
"연우야, 재미있니?"
"응, 그런데 지우랑 함께 봤으면 더 좋겠다."
세 살짜리 동생이라 데리고 오지 않았는데 함께 하면 좋겠다는 녀석의 말에 기분은 좋아진다.
내금강에 들어가면서 사실 자료를 준비하지 않았다. <나의 북한문화유산답사기>라는 책을 준비한 친구, 겸재와 단원의 그림을 미리 공부해온 친구들도 있지만 나는 그냥 위의 질문만을 가지고 금강산에 들어왔다.
한편으로는 게으름의 소치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선입견 없이 있는 그대로의 금강산을 받아들이기 더 좋은 점이 있기 때문이다. 내일 아침 내금강으로 갈 마음의 준비와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