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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4>
책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4> ⓒ 미래M&B
소심하며 까탈스럽고 허약한 내가 절대 가지 못할 여행지를 꼽으라면 아마도 '네팔'이 아닐까 싶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아찔해지는 에베레스트, 고산 지대가 가져다 주는 현기증, 따뜻한 샤워 한 번 제대로 할 수 없는 지독한 추위. 이런 걸 떠올리게 하는 곳, 네팔.

자신을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라고 칭하는 김남희씨는 이런 나라를 어떻게 여행했을까? 그녀의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은 대한민국 방방곡곡, 중국, 라오스, 미얀마, 스페인 산티아고 거쳐 네팔에 이른다. 이곳은 세상 모든 산악인들의 꿈이자 평범한 자들의 동경 대상이다. 그만큼 가보기도 힘들 뿐더러 산행을 감행하기란 더더욱 어렵다.

그녀를 만날 기회가 있다면 여자 혼자 다니니 무섭지 않더냐는 물음을 꼭 던지고 싶다. 그만큼 그녀는 용감하다. 그는 왜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곳을 찾아 다닐까? 그건 아마도 다른 여행자들과 다를 바 없는 '세상을 발견하고 자신을 알기 위해서'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

김남희씨보다 더 소심한 나는 책을 통해서 네팔의 에베레스트, 안나 푸르나를 간접 체험한다. 그녀의 여행기를 읽다 보면 마치 내가 그곳에 가 있는 것처럼 주변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거대한 설산을 눈앞에 두고 서 있는 듯한 느낌, 차가운 밤공기 속에 차 한 잔을 마시고 침낭 속에 지친 몸을 뉘이는 마음.

그녀의 여행기는 화려한 미사여구나 멋드러진 사진들로 꾸며지지 않는다. 조금은 무미건조하면서 사실적 묘사에 충실한 글은 소박하지만 읽는 이의 마음을 끈다. 그 이유는 아마도 '건강한 진실'이 주는 묘미 덕분일 것이다. 건강한 한 여성이 세상을 향해 씩씩한 여행을 하고 그 과정에서 느끼고 본 많은 것들을 전해주는 미학적 가치란 조금 메마를지언정 감동을 준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날은 화창하게 개었다. 우선 복장부터 새롭게 무장한다. 그동안은 내의 위에 플리스 천을 안으로 덧댄 겨울바지를 입고 다녔는데 오늘은 고소내의 한 벌을 더 입는다. 양말은 세 켤레를 껴 신었다. 위에는 플리스 티셔츠 두 개, 그 위에 폴라텍 보온 자켓, 다시 윈드 스토퍼 방풍 점퍼를 입고 마지막으로 고어텍스 방수 점퍼를 걸친다. 내 모습이 뒤뚱거리는 북극곰 같아 보인다는 걸 알지만 어쩔 수 없다. 없는 맵시 내느라 동사의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으니."

에베레스트에 오르기 위해 준비하는 장면을 이리도 길고 자세하게 묘사하는 여행기도 참 드물 것이다. 이처럼 세밀한 설명을 덧붙인 여정은 사실감과 현장감을 준다. 나처럼 산행에 대해 문외한인 사람에게도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일이 얼마나 험난한 것인지를 생생하게 느끼도록 한다.

이런 사실적 묘사들을 통해 작가는 자신이 거쳐온 길고 험난했던 '홀로서기 여행'의 쓸쓸함, 어려움, 심적 평온함과 육체적 고통을 전한다. 여자 혼자서 포터도 없이 커다란 배낭을 메고 낑낑거리며 산을 오르는 장면은 마치 내가 그러는 것처럼 힘겹다. 하지만 그 여행을 통해 한 조각 큰 깨달음을 얻는 것처럼 독자인 나도 그녀의 힘든 여행을 따라 다니며 여행이 주는 가치를 간접적으로나마 얻는다.

포터에게 등산화를 사주라며 큰 소리치는 독일 아줌마와 한판 승부를 벌이는 모습이나 그런 포터를 소개하고 임금을 떼어먹은 가이드를 찾아내어 해결 짓는 집요함은 저자의 '까탈스러움'을 그대로 느끼게 한다. 이토록 까탈스러운 여자가 어찌하여 일주일 내내 제대로 씻지도 못하는 산장에 머무르며 산을 오를 수 있었을까?

그 힘은 아마도 여행이 주는 무한한 감동일 것이다. 단순한 국내 여행부터 시작하여 네팔 트레킹까지, 모든 여행은 각각의 멋과 매력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떠나기 위해 짐을 꾸리고 길 위에 서서 많은 생각에 잠긴 채 하늘을 바라 본다. 자기가 떠나온 그곳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하고 보다 풍요롭고 너그러운 마음 한 자락을 얻기도 한다.

어린 아이를 키우면서 이 책의 저자처럼 혼자 여행을 떠나는 기회는 저 멀리로 가버렸다. 하지만 언젠가 그녀처럼 바람을 따라 떠나는 여행을 꿈꾸어 본다. 저자처럼 직접 발로 뛰며 험난한 산기슭을 기어 올라가는 여행은 아닐지라도 먼 훗날 네팔이라는 나라에 가서 안나푸르나의 산 자락과 에베레스트의 설경을 느끼고 싶다.

여행 서적들은 이렇게 현실에 머무르는 자들을 꿈꾸게 한다. 그 꿈을 실현하는 모든 여행객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들이 남겨 놓은 여행의 흔적과 언어, 사진 몇 장은 두고두고 남아 사람들의 가슴에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 떠남의 기회와 간접적인 체험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행 서적을 읽는지도 모르겠다.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4 - 네팔 트레킹 편

김남희 글.사진,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2007)


#네팔#에베레스트#여행#김남희#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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