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9일 실시된 참의원선거에서 대승을 거둠으로써 일본 정치의 '태풍의 눈'으로 부상한 민주당을 좀더 깊게 들여다보기 위해 야마구치 지로(山口二郞) 홋카이도대 교수(정치학)를 1일 만났다.
야마구치 교수는 최근 여러 미디어를 통해 가장 활발히 정치평론을 펼치고 있는 야당 성향의 대표적 논객이다. 웹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일본판에는 그가 민주당의 '브레인'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는 이런 시각에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친한 몇몇 민주당 의원들에게 개인적으로 자문을 해주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인터뷰 도중 "지난 1년 반 동안 오자와 이치로 대표와 만나 여러 가지 어드바이스를 해왔다"고 스스로 밝혀 민주당의 정책방향 결정에 깊게 관여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민주당 노선 신자유주의 반대와 평화외교로 정리"
그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에서 아베 신조 총리로 이어지는 개혁정책의 본질을 '신자유주의'로 규정하고 "이번 선거를 통해 신자유주의 개혁의 문제점이 확실히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그는 앞으로 민주당의 정책방향에 대해 "오자와 대표 체제가 되면서 신자유주의 반대와 평화외교로 노선을 확실히 정리했다"면서 "여러 이념적 성향이 혼재해 있지만 주류는 그런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향후 개헌논의와 관련해서는 "아베 정권은 개헌 논의를 끌고 갈 자격을 잃어버렸다'면서 "적어도 앞으로 6년간은 개헌안 발의가 불가능해졌다"고 진단했다. 또 "민주당의 개헌에 대한 입장은 애매하지만 적어도 자민당 개헌 논의에는 동조하지 않을 것"이라며 "어느 정도 호헌에 가까운 입장"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일본에서의 정권 교체 가능성에 대해 "국민 사이에 야당이 집권하는 데 따른 불안감은 이제 없어졌다"면서도 "그러나 이번 선거결과가 정권교체에 대한 지지냐 라고 묻는다면 절반만 그렇다고 할 수 있다"고 유보적 입장을 밝혔다.
지난 50여 년간 자민당 1당 지배가 계속된 이유에 대해 그는 "자민당이 국가 통치기구의 일부로서 사회의 이익을 배분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서 "그러나 고이즈미 정권에 들어서 '자민당은 더 이상 산타클로스가 아니다'라고 선언했고, 그런 식의 이익배분 정치는 불가능해졌다"고 진단했다.
다음은 야마구치 교수와의 인터뷰 내용.
"신자유주의에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섞은 것이 아베 노선"
- 이번 선거결과, 어떻게 받아들이나?
"솔직히 기뻤다. 재작년 중의원선거 결과가 고이즈미 전 총리에 대한 열광적 지지로 나타났을 때는 절망했었는데…. 이 2년간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문제점이 확실히 드러났다. 고이즈미–아베의 정책에 대한 엄중한 평가가 나타난 것이다. 특히 자민당이 전통적 지지기반인 농촌지역에서 몰락한 것은 신자유주의 개혁의 그림자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 여러 가지 선거쟁점이 있었는데.
"연금기록 문제 등이 쟁점이었지만, 그것도 결국 고이즈미-아베 개혁에 대한 불신감의 표현이라고 봐야 한다. 고이즈미 정권 때 연금문제는 '100년 안심'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으나 아무 내용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아베 정권이 선거전 중반에 부랴부랴 연금대책을 내놓았지만 결국 본질적 개혁이 아니라는 것을 국민들이 알게 됐다."
- 고이즈미-아베 개혁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보나?
"한마디로 신자유주의, 미국 모델에 맞춰 일본 경제와 사회 시스템을 바꾼다는 것이다. 경쟁 요소를 도입하고 작은 정부를 만들어 복지분야를 점점 줄이는 것이다. 농촌과 지방의 재정지원을 줄이고, 의료를 비롯한 사회보장 분야를 삭감하는 것. 약자는 더욱 어려워지는 상황. 그것이 지금 개혁의 본질이다."
-아베 정권의 정책이 관념적이라고 비판했는데.
"아베와 고이즈미의 노선은 다소 차이가 있다. 신자유주의적인 측면은 같지만, 거기에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섞은 것이 아베 노선이다. 국가주의는 관념적일뿐 실제 정책으로 세상의 모순을 해결하는 접근이 아니다. '전통'이라든가 '아름다운 나라'라든가, 뜻 모를 개념을 내세워 국민 통합하고 설교하려 했던 것이다.
- 그게 결국 역효과를 낸 건가?
"아베가 교육기본법 개정, 헌법개정 위한 국민투표법 제정 등을 성과라고 자랑했지만, 국민들은 그런 데 거의 관심이 없었다."
-결국 국민이 관심 없는 분야에 힘을 허비했다는 얘기인데.
"바로 그렇다. 그런 만큼 민주당이 '생활 제일'을 슬로건으로 내건 것은 매우 적절했다. 지방으로 갈수록 고용, 중소기업 경영. 농가 수입 등의 문제가 중요했다. 지방에선 생활 자체가 위협받는 현실이다. 그런 것이 투표행동으로 연결됐다. 내셔널리즘, 헌법, 그런 얘기들은 생활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 그래서 결국 개헌은 어떻게 될까?
"당연히 향후 6년간은 불가능해졌다. 적어도 참의원은 개헌안 발의가 가능한 조건이 아니다. 아베는 개헌논의를 끌고 갈 자격을 잃었다. 아베가 지향하는 국가주의적 개헌에 찬성하는 국민은 압도적으로 소수다. 개헌 일반론에 대해서는 찬성이 많지만, 9조는 지켜야 한다는 여론이 과반수다.
"민주당 집권, 국민들이 마음의 준비 하는듯"
- 이번 선거결과 민주당에 대한 지지라고 봐야 하나?
"어려운 질문이다. 자민당의 실망이 민주당으로 갔다. 사민, 공산당은 오히려 의석이 줄었다. 절반은 민주당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정권교체에 대해 기대하는 지지냐 라고 하면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 가까운 장래에 민주당이 집권하게 될까?
"그런 마음의 준비를 국민들이 하고 있는 것 같다. 아베 같은 능력 없는 정치인도 총리를 하는데, 민주당에 정권 담당 능력이 없다는 주장은 통용되지 않는다.
- 안심하고 민주당에 정권을 맡길 수 있게 됐다는 건가?
"안심은 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아베도 했다면 민주당이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다. 상대적 의미에서의 안심감이다."
- 민주당이란 일본 정치에서 어떤 존재인가? 지지기반이 어디에 있다고 봐야 하나?
"이야기하자면 길다. 원래 사회당 우파, 즉 사회민주주의 그룹과 자민당을 뛰쳐나온 개혁파와 합쳐서 만든 정당이다. 그간 이합집산의 과정이 있었고, 민주당을 통해 새로 정치에 입문한 정치인도 있다.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에 민주당 들어온 젊은 정치인들은 다양한 구성이다. 관료 출신부터 샐러리맨, 여성, 변호사, 시민운동 등 일본의 전통적 정치인과 다른 배경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다. 정책적으로도 폭이 넓다. 미국 유학해서 미국식 경제정책 추종자가 있는가 하면, 사회민주주의적 그룹도 있다. 안보문제도 대미 협력 위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도 좋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헌법 9조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 폭이 넓다는 게 정당으로선 장점보다 약점이 될 텐데.
"다만 오자와가 대표가 된 후 노선이 정리됐다. 나도 오자와 대표에게 지난 1년 반 여러 어드바이스를 했다. 자민당이 대미 협력 노선을 선택했으니 민주당은 존재감을 어필하려면 다른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경제 면에선 신자유주의 반대이고, 대외적으로는 평화외교이다. 오자와가 90년대 초 저서 '일본개조개혁'을 썼을 때는 대미 협력의 안보관을 주장할 때도 있었으나, 그는 정책의 일관성 보다는 정권교체 실현에서 일관성 찾는 정치인이다. 정책은 매우 유연하다. 이번 선거에서 신자유주의 반대를 명확히 했고, 헌법에 대한 입장은 애매하지만, 적어도 자민당 개헌 논의에는 동조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정도 호헌에 가까운 입장이다."
- 민주당이 강해져서 대 한반도 정책에도 변화가 있을까?
"민주당 내에도 강경파는 있다. 반공주의의 전통이 남아있는 세력이다. 그러나 대세를 보면 아시아 연대 중시, 즉 한국, 중국과 연대해서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길 밖에 없다는 입장이 민주당의 주류이다."
"자민당은 중국 공산당과 비슷한 존재"
- 1당 지배 시스템에 변화가 초래되고 있다는 견해인데, 그렇다면 지금까지 일본에서 1당 지배가 계속된 이유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어려운 질문이다. 2차대전 이후 일본에서도 민주주의가 확립됐지만, 자민당은 국가 통치기구의 일부였다. 정부뿐 아니라 자민당도 거기에 준하는 기구였다. 왜 자민당은 국가예산을 움직여 사회의 이익을 배분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계속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시골로 갈수록, 자민당은 국가의 일부였으며 자민당을 대체할 공간이 오랫동안 없었다. 국가예산으로 복지서비스를 받고 싶은 사람은 자민당을 지지하지 않으면 안됐다. 그런 점에선 중국 공산당과 비슷한 존재다. 여야가 고정화됐고, 여당은 국가 재원을 이용함으로써 정치적으로 유리한 입장에 섰다."
- 그런 구조에 변화가 초래된 이유는?
"10년 불경기를 겪으면서 배분할 이익이 줄었다. 고이즈미가 그 부분은 확실히 부쉈다. 관에서 민으로,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는 것. 자민당은 더 이상 산타클로스가 아니라고 선언한 것이다. 또 냉전시대에는 정권교체가 있을 수 없었다. 사회당으로서는 불행이었다. 일본 좌익이 더 빨리 마르크스-레닌 주의와 결별했다면 더 빨리 변화가 왔을 수도 있었는데, 너무 오래 거기에 손을 담그고 있었다. 냉전이 끝나자 어느 정권이 돼도 큰 변화는 없다라는 안심감이 생겼다."
- 분배할 자원이 줄었다고 했는데 이번 선거를 보면 오히려 오자와 대표가 농가에 대한 현금지원 등 분배형 공약을 하고 다녔다.
"바로 그 점이 어려움이다. 신자유주의로는 약자가 더 고통을 겪기 때문에 보다 친절한 정부가 돼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그 재원이 어디서 나오는가에 대해서는 논의를 피했다. 그게 민주당의 가장 큰 문제다. 정부의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겠다고는 했지만 그것으로 필요한 재원을 다 채울 수는 없다. 결국 증세에 대한 논의를 했어야 하는데 그 부분을 이번에 피했다."
"자민당에 책략가 있다면 민주당 분열 공작에 나설 것"
- 사실상 최초의 '여소야대' 정국이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금 국회는 상당히 재미있는 구조다. 참의원에서 부결돼도 여당이 중의원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꼭 통과시키려는 법안은 통과 된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당은 참의원에서 안심하고 부결시킬 수 있다. 여당에게 '너희들이 꼭 하고 싶으면 중의원에서 결의하면 되는 것 아니냐' 라고 말하면 된다. 그러나 참의원이 거부한 것을 중의원에서 밀어붙인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현실적으로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서로 법안에 대해 왜 찬성인가, 반대인가 국민 앞에서 주장하게 될 것이다. 정책 논쟁이 본격적으로 전개될 수 있는 구조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낙관한다. 민주당도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면 지지 얻을 수 없다. 왜 반대하는지 이유를 제대로 설명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좋은 훈련이다."
- 기본적 구조는 민주당은 강하게 대립해서 존재감 발휘하려 할 것 같은데.
"그렇다. 이 정도로 자민당을 비판해서 선거에 이겼으니까, 안이한 타협은 불가능하다."
- 아베 총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올 것 같은가? 민주당과 대립인가, 협력인가?
사안에 따라 다르겠지만, 가령 정치자금 문제에서 새로운 규칙 만들기는 여야당 협조가 이뤄질 것이다. 그러나 명백히 정책이 대립하는 노동규제완화, 농업정책, 이런 것은 타협의 여지가 없다. 외교안보 분야도 타협의 여지가 적다. 대립하는 이슈로 보면 중의원, 참의원에서 서로 다른 결의가 나오는 일이 많을 것이다. 그러면 국민에게 묻는 수밖에 없다. 결국 '중의원 해산, 총선거'가 예상보다 빨라질 것이다."
- 그 과정에서 정계개편도 있을 수 있는 시나리오인데.
"민주당도 자민당도 내부에 여러 요소가 섞여있는 잡탕식이다. 이런 상황은 어디선가 해소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이념과 정책에 따라 확실히 갈라지는 재편이란 잘 없다. 물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번 임시국회에서 테러특별조치법 처리가 대미 관계의 커다란 시금석이 될 것이다. 자민당은 대미 협조노선을 분명히 하고 있다. 여기서 오자와 대표가 파견된 자위대를 철수시키고,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호헌적 입장 확실히 취하면 민주당 내에서 이탈세력 생길지도 모른다. 자민당 내에 책략가가 있다면 민주당을 깨는 공작에 나서지 않을까?"
- 자민당이 분열될 가능성은 없을까?
"없다. 지금 여당에서 나올 사람은 없다고 본다. 자민당 상황은 진흙탕이지만, 거기서 바다로 뛰어드는 것은 더 위험하다고 생각들 하고 있다."
- 90년대 초처럼 일시적으로 야당에 정권이 넘어갔다가 다시 자민당 지배 시스템이 복원될 가능성도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 그건 다음 총선거 결과에 달려있다."
- 1당 지배체제가 무너진 것은 아니라는 얘기인가?
"아직 무너진 것 아니다. 반은 무너졌지만,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