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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의날개
글쓰기는 일종의 복식호흡과 같습니다. 얕은 숨만을 쉬다가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깊은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그런 준비된 자세에서만 하는 호흡은 아닙니다. 글쓰기는 긴장하지 않은 상태, 덜 준비된 상태 그대로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글쓰기의 시작을 쉽게 만들어주고 작업을 촉발시켜 주기도 합니다. 그렇게 진행된 글쓰기는 마음을 풀어주는 작업이 됩니다.

<화해의 기술>은 그렇게 마음을 풀어가는 작업을 서술해 놓은 책입니다. 꼭 집어 말한다면 '가족 구성원으로부터 단절을 경험한 사람들의 마음 치유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무척 협소한 분야의 상담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지은이 마크 시켈의 나라 미국이라는 나라에서는 낯선 것이 아닌 낙태, 동성애, 인종주의, 종교 차별, 폭력 등으로 인해 겪게 되는 가족 불화와 단절이 우리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쯤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책을 끝까지 읽으면서, 본질적인 문제에서는 그 치유법이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로서도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치유되는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당장 가족간의 단절로 인한 문제로 고민하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자신과의 화해'라는 문제만큼은 누구나 경험하고 경험해야 하는 절실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족 불화를 극복하는 문제도 바로 자신과의 화해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가족끼리 인연을 끊고 사는 이들도 우리 중에 많이 있을 것입니다.

먼저, 이 책을 읽을 독자가 또한 읽었으면 하는 책을 우선 소개하겠습니다. 독일의 심리 치료사 배르벨 바르데츠키의 <따귀 맞은 영혼>이라는 책입니다. '마음의 상처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은, 크게는 가까운 이로부터 받은 상처 특히 가족으로 인해 생긴 트라우마 즉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내용을 담았다는 점에서 <화해의 기술>과 같은 부류의 책입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중에 마음 가는 곳을 또 한 번 읽었습니다. 연신 밑줄을 그으면서요.

일명 '게슈탈트 심리 치료'라는 치료법에 대한 내용인데 마음의 상처를 입은 이가 "스스로 책임을 떠맡도록 돕는 것"입니다. 즉 "정신 못 차리게 뒤흔들려 쏟아져버렸던 능력들을 다시 추슬러 잘 쓸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 그런 내용이 나옵니다. "자기야말로 자신을 가장 심하게 비난하는 사람"이며, "자신에게 높은 목표를 설정해놓고 어떤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장본인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이라고요.

위 내용과 관련된 책 하나를 더 소개하겠습니다. 안젤름 그륀이라는 신부가 지은 <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라는 책입니다. 이미 제목에서 모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주된 요지는 "자기 자신 외에 상처 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입니다. 즉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있으면 어느 누구로부터도 상처받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화해의 기술>에서 언급하는, 수많은 관계 절연의 당사자들은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너무 에둘러 왔네요. <화해의 기술>은 어쨌든 미성숙한 가족의 일원에게서 절연당하고서 마음의 상처를 깊게 받은 이들을 위한 책입니다.

<화해의 기술>은 모두 10단계의 스텝으로 되어 있어 스텝을 한 걸음씩 밟아가듯 읽으면 됩니다. 그 첫 스텝이 "충격을 인식하고 대처하라"인데 '따귀 맞은 영혼'이 된 이들의 마음 속 트라우마를 살펴보고 그 대처법을 말합니다. 그리고 지은이는 두 번째 스텝에 벌써 회복방안을 내놓습니다. "지금 당장 생기와 웃음과 행복을 회복하라"라고요. 이를 위해서 '나의 가치 있는 특성들 체크 리스트'를 작성해 보라고 합니다. '친절하다', '관대하다', '공감을 잘 한다' 식으로요. 자존감이 약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사항입니다.

스텝 3 "가족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발견하라"에서 놀라운 내용을 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 안에서 '피해의식으로 가득 찬 사람' 아니면 '비위 맞추는 사람'의 역할을 연기한다는 것입니다. 성숙되지 않은 사람은 이 두 가지 역할 중 하나를 계속함으로써 아픈 가족의 역사를 계속 써내려간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단언합니다. 드라마를 다시 쓰라고! '강하고 단단하고 능력 있는' 역할로 말입니다.

그렇다면 성공적인 가족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스텝 5에서 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사항이 소개되어 있지만 그중 인상 깊은 내용은 가족간에 '적절한 경계선을 유지한다'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경계선은 '거부'라는 개념이 없는, 서로 존중하면서 조화롭게 사는 수단으로서의 개념입니다. 언젠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건강한 가족은 각자가 가정 안에서 자기만의 영역이 있다고.

가족간에 서로 안 좋은 상황에 있다 하더라도 스텝 7에 나오는 한 글쓰기 교사의 말처럼 "서로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마치 작문을 고쳐 쓰듯 다시 고쳐 나갈 수 있"으면 됩니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요. 사실 작문 즉 글쓰기는 제게도 큰 힘이 되는 도구입니다.

글쓰기는 상상에 의존하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글쓰기는 자기 속에 뭉쳐있던 생각을 끄집어내고, 얽혔던 생각을 풀고, 새로운 생각까지 만들어주는 ‘마음 이완 운동’입니다. 투자한 시간에 비해 써놓은 글의 양이, 질이 보잘것없더라도 말입니다. 운동과 마찬가지로 글쓰기도 ‘우선 쓰기 시작하는 것’이 시작이 됩니다. 그러면 제 경험상, 드러나지 않았던 생각들도 줄줄이 나오기도 하지요. 마음의 상처를 감싸고 위안하는 작업으로 글쓰기는 아주 훌륭한 도구가 됩니다. 요즘 많이 대두되는 심리치료 기법인 미술치료, 음악치료도 마찬가지의 도구일 것입니다.

이런 작업은 지금 무언가에 몰두하는 것인데 그건 일시적으로 자기를 잊는 일이고, 고통을 상대화할 수 있는 작업입니다. 몰두의 예는 많습니다. 간호사가 환자에게 몰두하는 것, 내리는 비에 마음을 적시는 것, 책을 읽고 저자와 상상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 모두 자기를 잊는 노력이며 자기 치유의 좋은 방법이 됩니다.

스텝 9에서 지은이는 중요한 미덕을 제시합니다. "인정하기는 감사하기의 사촌쯤 된다"라고 표현했는데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인정하고 감탄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그리고 감사는 "우울증, 자기 연민, 두려움, 그 외 모든 정신적인 고통에 최고의 치료약"이라고 말합니다.

행복은 가까이에 있습니다. 행복은 사람들에게 다가가려고 애씁니다. 사람들 곁에 머물고 싶어 합니다. 그 행복을 오늘 만나야 하겠지요. 행복은 아주 커다란 손을 가졌습니다.

제 글의 제목을, 제 글 속에 소개한 다른 책 <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로 정해서 조금 겸연쩍네요. 괜찮지요? <따귀 맞은 영혼>과 이 책 <화해의 기술>에 공통적으로 소개하는 기도문으로 끝을 맺을까 합니다.

"하느님, 제게 제가 바꿀 수 없는 일은 받아들일 느긋함을 주소서. 변화시킬 수 있는 일은 변화시킬 용기를 주소서. 그리고 두 가지를 서로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화해의 기술

마크 시겔 지음, 조은숙 옮김,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2006)


#화해의기술#마크시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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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번역가이자, 산문 쓰기를 즐기는 자칭 낭만주의자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여행, 책 소개, 전시 평 등의 글을 썼습니다. 『보따니스트』 등 다섯 권의 번역서가 있고, 다음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https://brunch.co.kr/@bruno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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