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순천청소년축제 2007동천벽화 그리기
순천청소년축제 2007동천벽화 그리기 ⓒ 안준철
세상에는 크게 두 부류의 사람이 존재합니다. 꿈꾸는 사람과 꿈꾸지 않는 사람. 여러분은 어느 편에 속하는 사람일까요? 잘 모르겠다고요? 어쩌면 그 말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꿈꾸는 사람과 꿈꾸지 않는 사람, 그 중간쯤에 있는 사람이 더 많을 지도 모르니까요. 세상에 부자와 가난한 자 두 부류만 있는 것은 아닌 것처럼.

그래도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가릴만한 잣대가 있을 수 있듯이, 꿈꾸는 사람과 꿈꾸지 않는 사람을 구별할만한 뭔가가 있을 것도 같기도 합니다. 그 용액이 알카리성인지 산성인지를 확실하게 판별해주는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말입니다. 아래의 문구가 바로 꿈꾸는 자와 꿈꾸지 않는 자를 구별해주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토끼를 깨워서 함께 가는 거북이가 되어야 합니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위 문구를 읽고 난 뒤에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진 사람은 꿈에 대한 양성반응을 보인 것으로 간주하시면 됩니다. 물론 그 미소가 조소나 비웃음에 가까운 것이라면 사정이 달라지겠지만 말입니다.

벽화 이야기-함께 가자 우리
벽화 이야기-함께 가자 우리 ⓒ 안준철
물론 꿈에 대한 양성반응을 보인 것이 꼭 옳거나 좋은 일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꿈꾸고 있네!"라는 말의 뉘앙스가 그러하듯, 현실감각이 좀 부족한 사람을 일컬어 '꿈을 꾸고 사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하니까요. 그러니 제 자신이 꿈에 대한 양성반응을 보였다고 해서 그것이 결코 자랑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어제(11일) 취재차 순천청소년축제위원회가 주관하는 '2007 동천 벽화그리기' 현장에 가보았습니다. 일주일이면 두 세 번씩은 산책삼아 찾아가는 동천의 일급수 맑은 물이 흐르는 조곡교 다리 아래로 멋진 벽화들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2002년도가 원년인 '동천 벽화그리기' 사업에 올해도 저는 구경꾼 노릇밖에는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구경꾼 노릇이라도 제대로 하자는 마음으로 벽화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그 문제의 문구를 접한 뒤 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 것입니다. 미소만 지어진 것이 아니라 고개까지 끄덕여졌습니다. 벽화에는 그것 말고도 마음에 깊이 새길만한 글귀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벽화 이야기-높은 곳에 있는 사람은
벽화 이야기-높은 곳에 있는 사람은 ⓒ 안준철
'높은 곳에서 일할 때의 어려움은 글씨가 바른지 비뚤어 있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낮은 곳에 있는 사람에게 부지런히 물어보는 방법밖에는 없다.'

'자동차로 빠르게 지나가는 사람에게 1m의 코스모스 길은 한 개의 점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에게는 가을을 남김없이 담을 수 있는 아름다운 꽃길이 됩니다.'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


이런 기막힌 문장을 생각해낸 사람이 누구일까 궁금했는데, '더불어 숲'이라는 제목의 벽화를 보고서 대강은 짐작이 갔습니다. 2002년 원년부터 벽화그리기를 함께 해온 박 아무개 교사에게 물어보니 신영복 선생의 서화에세이 <처음처럼>에서 따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순천청소년축제 2007동천벽화 그리기
순천청소년축제 2007동천벽화 그리기 ⓒ 안준철
꽤 오래 전에 아는 대학 선배로부터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에 대한 새로운 견해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데, 그때에는 선배의 다음 말이 참 신선하게 들렸습니다.

"토끼와 거북이를 같은 출발선상에 놓고 경주를 시킨 것이 잘못이야. 토끼가 도중에 잠을 잤기에 망정이지 어떻게 거북이가 토끼를 이길 수 있겠어?"

그 선배가 '토끼를 깨워 함께 가는 거북이가 되어야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합니다. 그가 약자인 거북이를 두둔했던 것을 보면 입가에 미소를 짓기는커녕 말도 안 된다고 버럭 화를 낼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선배는 지금까지 제가 만난 어떤 사람보다도 꿈에 대한 양성반응을 보일만한 사람이니 꼭 그렇게 단정할 일도 아닙니다.

순천청소년축제 2007동천벽화 그리기 (좌)보수작업을 하며 교사와 학생이 함께 협동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우) 올해로 3년째 벽화그리기 작업을 하고 있다는 두 여고생에게 소감을 물었더니 하나같이 "보람 있다!"고 맑고 분명하게 말한다.
순천청소년축제 2007동천벽화 그리기(좌)보수작업을 하며 교사와 학생이 함께 협동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우) 올해로 3년째 벽화그리기 작업을 하고 있다는 두 여고생에게 소감을 물었더니 하나같이 "보람 있다!"고 맑고 분명하게 말한다. ⓒ 안준철

순천청소년축제 2007동천벽화 그리기-어떤 일이든지 잔일이나 궂은 일이 있기 마련이다. 그 보이지 않는 일을 찾아서 하는 손길이 아름답다.
순천청소년축제 2007동천벽화 그리기-어떤 일이든지 잔일이나 궂은 일이 있기 마련이다. 그 보이지 않는 일을 찾아서 하는 손길이 아름답다. ⓒ 안준철
'토끼를 깨워 함께 가는 거북이가 되어야한다'는 주장은 사실 억지에 가깝습니다. 거북이 처지에서 보자면 토끼가 잠이라도 자야 그나마 이길 승산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거북이가 자고 있는 토끼를 깨우는 행위는 '말도 안 되는 웃기는 짓'이거나 '시건방진 짓'일 가능성이 큽니다. 또한, 거북이에게 그런 일을 강요하는 것은 경주를 포기하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정이 이런대도 왜 저는 미소를 머금었을까요? 그에 대하여 저도 뭐라고 딱히 할 말이 없습니다. 다만, 또 다른 벽화에 새겨진 다음 글귀에서 작은 단서라도 찾아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꾸어 갑니다.'

순천청소년축제 2007동천벽화 그리기- 방학도 반납한 채 학생들과 함께 돈도 안 되는 벽화그리기에 매달리고 있는 우직한 두 미술 선생님들.
순천청소년축제 2007동천벽화 그리기- 방학도 반납한 채 학생들과 함께 돈도 안 되는 벽화그리기에 매달리고 있는 우직한 두 미술 선생님들. ⓒ 안준철
순천청소년축제의 주인공은 청소년들입니다. 이 말은 너무도 당연하면서도 참 귀하고 중요한 말입니다. 세계적인 청소년 축제를 표방하는 순천 인근 지역의 축제가 그 실상을 알고 보면 청소년들을 들러리 세우거나 대상화하는 축제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서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축제를 아이들이 와서 즐기는 것은 청소년 축제의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 것입니다.

축제를 향유하는 것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축제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땀을 흘리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현실적인 계산과는 거리가 먼 우직한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일컬어 '어리석다'라고 말할 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잣대로 보자면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꾸어 가는 것이지요.

순천청소년축제 2007동천벽화 그리기-글자 한 자만 쓰면 끝!
순천청소년축제 2007동천벽화 그리기-글자 한 자만 쓰면 끝! ⓒ 안준철
지난 8월 5일부터 시작하여 오늘(12일) 마감하는 '2007 벽화그리기'는 여느 해에 비해 비교적 기간이 짧았습니다. 그럼에도 일주일 동안 30여 명의 청소년들과 교사, 그리고 시민들이 오후 2시부터 7시까지 구슬 같은 땀을 흘리며 일한 보람으로 어둑한 회색공간이었던 동천 조곡교 다리 밑이 마치 파란 하늘과 햇살을 들인 듯 화사해졌습니다. 멀리서 보면 그림이 아름답고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글이 아름답습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와 집에서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의 새로운 버전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이 글을 쓴 이는 분명 세상이 아름다워지기를 꿈꾸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그런 유형의 사람이라면 글을 다 읽고 난 뒤에 분명히 입가에 미소가 지어질 것입니다.

순천청소년축제 2007동천벽화 그리기 -즐거운 간식시간
순천청소년축제 2007동천벽화 그리기 -즐거운 간식시간 ⓒ 안준철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

옛날 옛날에 토끼와 거북이가 살았더래요.
거북이는 모르고 있었지만... 토끼는 거북이를 사랑했답니다.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토끼의 소중한 마음이었죠.
어느 날... 토끼는 거북이의 모습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거북이는 느린 자신에 대해 자책하고 있었거든요.
너무나 느리고 굼뜬 자신에 대해서요.

토끼는 거북이를 사랑했습니다.
거북이에게 자신감을 주고 싶었습니다. 어떻게든...
"어이~ 느림보 거북아! 나랑 경주해보지 않을래?
너 따위는 내 상대가 절대 될 수 없지만 말야~ 어때?"
"토끼야, 내가 비록 느리지만... 너와 경주를 하겠어.
빠른 것만이 최고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겠어!"
토끼는 기뻤습니다. 바보같이...

동천의 백미-꽃은 망종화인데 새는 고니?
동천의 백미-꽃은 망종화인데 새는 고니? ⓒ 안준철
경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저 높은 언덕 꼭대기까지의 경주였습니다.
물론... 거북이는 토끼를 따라잡을 수 없었습니다.
토끼는 어느새 저만치 앞서가고 있었죠.
'거북이가 쫓아올까? 설마 포기하는 건 아닐까?'
앞서가는 토끼는 달리면서도 거북이만을 생각했습니다.
어느새 너무나 차이가 나버렸습니다.
토끼는 거북이를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었죠.
토끼는 길가에 누워 자는 척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거북이가 다가와 자신을 깨워주기를 바랬습니다.
그래서... 함께 달리기를 원했습니다. 둘이서...

님도 그 다음은 아시죠?
거북이는 길가에 잠든 토끼를 추월해서 경주에 이겼답니다.
그렇지만 모르시겠죠... 잠든 척 누워있던 토끼의 눈물을...
경주가 끝나고... 거북이는 근면과 성실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반면, 토끼는 자만과 방심의 낙인이 찍혀버렸죠.
그렇지만 토끼는 그 비난을 감수했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거북이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으니까요.
옛날 옛날에 토끼와 거북이가 살았더래요.
거북이는 모르고 있었지만... 토끼는 거북이를 사랑했답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999년부터 순천지역 청소년들과 함께 해 온 순천청소년축제가 2007년 9회 축제를 시작합니다. "도시 동화 - 바람 기대 그리고 마주이야기"를 슬로건으로 보다 많은 청소년들과 함께 하고자 합니다. 청소년들이 바라는 것과 기성세대가 청소년에게 거는 기대, 그 둘을 조화시키려면 마주해서 이야기를 통해 풀어가야 하리라 봅니다. 결국 사랑한다는 것은 한 곳을 함께 보는 것이니까요. 그렇게 될 때 도시는 동화처럼 아름다운 곳으로 바뀔 수 있겠지요. 순천청소년축제에서 그 동화를 읽어주고 함께 듣는 소중한 경험들을 나눠보시기 바랍니다. 

- 순천청소년축제위원회 홈페이지(http://www.teenfestival.com)에서


#순천청소년축제#동천벽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