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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의 해당화와 길 너머로 바라보이는 갯벌과 바다풍경
길가의 해당화와 길 너머로 바라보이는 갯벌과 바다풍경 ⓒ 이승철
"낼모레까지 비가 많이 온다는데 이렇게 떠나도 되는지 모르겠네."

지난 8월 6일 아침 친구들과 함께 여름휴가삼아 떠나기로 한 여행길은 출발할 때부터 비가 내렸다. 목적지는 전북 부안의 변산반도를 거쳐 전남 영광과 무안, 그리고 목포를 경유하여 최종 목적지는 완도로 잡았다.

일기예보에선 호남지방도 6일과 7일 비가 내린다고 했다. 그래도 요즘 내리는 비는 한꺼번에 넓은 지역에 골고루 내리는 비가 아니어서 어쩌면 비를 피해 다닐 수도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며 일단 남쪽을 향해 출발했다.

그런데 우리들이 달리는 고속도로에서도 그런 국지성 비를 실감할 수 있었다. 안성을 지날 때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는데 약 3분쯤 달리자 아스팔트 도로가 보송보송해졌다. 전혀 비가 내리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3일간 여행하는 동안 계속되었다.

경치 좋기로 소문난 전북 부안의 변산반도 해안을 지날 때는 계속 비가 내려 채석강도 들르지 못하고 지나쳐야 했다. 곰소와 줄포를 지날 무렵에 잠시 그쳤던 비는 고창을 지날 무렵에는 다시 쏟아지는 바람에 선운사도 못 본 척하고 바로 영광으로 향했다.

"영광하면 법성포 아닌가? 법성포에서 점심 먹고 칠산 바다 구경하고 가도록 하지?"

일행 중 한 명은 별명이 움직이는 전국 지도다. 자영업을 하는 이 친구는 시간만 나면 부인과 함께 훌쩍 차를 몰고 전국을 누비는 사람이어서 전국 어느 곳이건 모르는 곳이 거의 없을 정도로 길이 훤한 것이다.

법성포 포구에 정박하고 있는 어선들
법성포 포구에 정박하고 있는 어선들 ⓒ 이승철

푸짐한 음식상
푸짐한 음식상 ⓒ 이승철
이 날도 승용차 두 대 중에 당연히 이 친구가 운전대를 잡은 차가 앞장을 서서 달렸다. 그런데 법성포에 들어설 무렵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선 점심을 먹기로 했다. 일찍 출발했기 때문에 아침을 부실하게 먹어 모두 배가 고팠다.

법성포, 그 옛날 흥청거리던 조기파시의 대단함은 사라졌지만....

법성포는 작은 포구가 아니었다. 비록 옛날 흥청거리던 조기파시의 그 대단함은 사라졌지만 포구와 시장은 여전히 주렁주렁 엮어 매달아 놓은 굴비들로 장관이었다. 우선 길가의 굴비가게에 앉아 있는 노인에게 점심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집을 소개해 달라고 하자 망설임 없이 두 집을 가르쳐 준다.

그 두 음식점 중에서 우리가 가고 있는 방향 앞쪽에 있는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식당 앞에 도착해보니 식당입구는 좁아 보이는데 식당 앞에 있는 주차장엔 많은 승용차들이 주차해 있어서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할 수 없이 안으로 들어가 종업원에게 물으니 바로 앞 포구 옆의 주차장을 가리킨다.

어렵사리 승용차를 주차해 놓고 식당 안으로 들어서보니 밖에서 바라보던 것과는 달리 엄청난 규모의 식당이었다. 안쪽으로 깊숙이 이어진 복도 양쪽으로는 크고 작은 방들이 즐비한데 빈방이 거의 없이 손님들이 꽉 들어차 있는 것이 아닌가.

"우와! 이 식당 이거 밖에서 보던 것과는 아주 딴판이군, 이 정도면 한꺼번에 몇 백 명의 손님도 받을 수 있는 규모잖아?"

큰 도시도 아닌 지방 포구에 있는 식당으로서는 가히 파격적인 규모였다.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자리를 잡고 자리에 앉자 주문을 하란다.

맛이 끝내주는 조기매운탕
맛이 끝내주는 조기매운탕 ⓒ 이승철

점심 먹는 일행들
점심 먹는 일행들 ⓒ 이승철
"일곱 분이면 12만 원짜리와 16만 원짜리가 있습니다. 어느 걸로 하시겠습니까?"

두 가지 메뉴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니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값이 조금 약한 12만 원짜리로 주문했다. 값이 다른 것은 굴비구이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였다.

잠시 기다리자 음식들이 나오는데 가짓수가 장난이 아니다. 대부분 생선요리 종류였지만 모두 다른 것들이었다. 식탁에 모두 벌여 놓은 다음에 또 들여온 음식들은 놓을 자리가 없어 먼저 놓은 음식 위에 포개어 놓기도 한다.

"우선 위에 놓은 음식부터 드십시오. 밑에 있는 것들은 밥반찬이기 때문에 조금 짭짤합니다. 밑에 있는 반찬들은 식사하실 때 드시면 됩니다."

상냥하고 친절한 여성종업원은 자상하게 음식 먹는 법까지 설명을 해준다. 우리들은 우선 위에 놓인 접시 위의 음식들을 먼저 먹었다. 모두 감칠맛 나는 음식들이어서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잠시 후에 밥과 조기 매운탕이 나왔다. 우선 숟가락으로 매운탕 맛을 보니 맛이 일품이다. 어느 곳에서도 맛보지 못한 감칠 맛 나는 맛이었다. 그 매운탕과 함께 먹는 점심 맛이라니.

"오늘 점심 정말 끝내주는군, 이 조기매운탕 맛 정말 맛있는데."

모두들 조기매운탕이 맛있다고 한 마디씩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렇다고 모든 음식들이 다 맛이 좋은 건 아니었다. 고추장에 졸인 굴비살과 통통하게 먹음직스러운 갈치는 사실 맛이 별로였기 때문이다.

칠산 바다와 해안풍경
칠산 바다와 해안풍경 ⓒ 이승철

칠산 바다로 나가는 뱃길이 썰물로 갯벌을 드러냈다
칠산 바다로 나가는 뱃길이 썰물로 갯벌을 드러냈다 ⓒ 이승철
그래도 나머지 음식들이 대부분 맛이 좋으니 이만하면 맛좋은 진수성찬이 틀림없었다. 모두 맛있게 배불리 먹고 밖으로 나왔다. 그 사이 제법 많이 내리던 비는 그쳐 있었다. 다음 코스는 칠산 바다를 보러 가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조기어장인 칠산바다

칠산 바다는 포구에서 백수해안도롤 따라 달리는 오른 편으로 펼쳐져 있었다. 마침 썰물이어서 법성포로 들어오는 바닷길은 바닷물이 빠져 넓은 갯벌이 드러나 보인다. 그러고 보니 법성포는 육지 안쪽으로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백수 해안도로변에는 해당화가 많이 있었는데 철늦게 핀 꽃들이 바다를 끼고 달리는 도로와 그 아래로 펼쳐진 바다와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당화가 핀 해안도로를 잠깐 달리자 바닷가에 쉼터 겸 전망대가 세워져 있다. 또 왼편 언덕 위에도 날아갈 듯 멋진 팔각정이 세워져 있어서 경관이 아름답기 짝이 없어 보인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칠산 바다는 망망대해다.

이 바다가 바로 우리나라 최고의 조기어장이라는 칠산 바다다. 매년 춘분 경부터 약 2달 동안 연평도로 북상하던 조기들이 바로 지금 바라보이는 이 바다에서 산란을 하기 때문에 이 시기가 황금 조기어장으로 이름을 떨쳤던 것이다.

칠산 바다라는 이름은 이곳 영광 법성포에서 대하 새우로 유명한 낙월도 가는 중간 지점에 일곱 개의 섬이 모여 있어서 근처 바다를 통칭하여 칠산 바다라 부른다. 또 영광 안마도에서 군산 임자도나 비안도에 이르는 바다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칠산 바다 해역은 굉장히 넓은 편이어서 속담에도 '칠산 바다처럼 큰 바다. 사람 마음이 칠산 바다처럼 넓어야 한다'는 말이 생겼을 정도다.

절벽 위의 멋진 전망대
절벽 위의 멋진 전망대 ⓒ 이승철

칠산 바다풍경, 옛날엔 물반 고기반의 조기 황금어장이었다
칠산 바다풍경, 옛날엔 물반 고기반의 조기 황금어장이었다 ⓒ 이승철
"칠산 바다에 돈 실러 가세.
수수억만금을 벌어서
우리청춘 만대라도 먹고 살게
돈 실러 가세,
영광 법성포에 돈 실러 가세
한물거리에 천여동이고
두 물거리에 만여 동이 잡히네."


예부터 전해오는 칠산 바다의 조기잡이 노래다. '한물거리'는 썰물이 한번 지나가는 동안의 시간을 말한다. 또 한 '동'은 고기 천 마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니 천여 동은 100만 마리를 말하는 것이고, 만여 동은 천만마리를 말하는 것이다. 과장이 있긴 하겠지만 얼마나 엄청난 조기를 잡았다는 말인가.

옛날에는 실제로 조기가 하도 많이 잡혀서 그물이 물 위로 둥둥 떠올랐다고도 전한다. 그래서 칠산 바다는 "물 반. 조기 반" "영광법성포에서는 개도 만 원짜리 돈을 물고 다닌다더라"는 우스갯소리와 "사흘 동안의 조기잡이로 일확천금을 하여 일평생을 잘 먹고 잘 산다"는 사흘칠산 이란 말이 떠돌기도 했다 한다.

그래서 옛날 어부들은 칠산 바다에 조기 잡으러 간다고 하지 않고 돈 실러 간다고 말했다. 청춘 만대라도 먹고 살게 칠산 바다에 돈 실러 간다고 희망에 들뜬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바닷가 비탈의 작은 밭
바닷가 비탈의 작은 밭 ⓒ 이승철
"이곳 칠산 바다가 옛날에는 조기잡이로 밤에도 불야성을 이뤘던 곳이라는데 이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경치도 정말 끝내주는구먼."
"정말 그러네, 점심에 먹은 조기매운탕 맛도 그만이었는데 말이야."

일행들은 점심에 먹은 조기매운탕맛과 함께 이곳 칠산 바다의 아름다운 풍광에 또 한 번 매료되고 있는 모습이었다. 영광 법성포의 조기매운탕과 칠산 바다. 빗속을 뚫고 떠난 3일간의 여행 중 첫날 한나절은 맛과 풍경에 취한 멋진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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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법성포#칠산바다#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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