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무휼 민무회 형제가 귀양을 떠났으나 조정의 여론은 잡잠해지지 않았다. 형조와 대간에서 연이어 상소가 올라왔다.
“민무회는 세자에게 감히 불령(不逞)한 말을 하였으니 본디부터 세자와 임금을 업신여기는 마음이 있었음이 드러난 것입니다. 또한 염치용과 함께 사실무근한 말을 꾸며 내어 성상의 덕에 누(累)를 끼치려고 하였으니 반역의 마음을 품은 것이 여실히 나타났습니다. 전하께서 대의로 결단하여 민무회와 민무휼의 죄를 밝게 바루소서.”
태종은 윤허하지 않았다. 형조와 사헌부 그리고 사간원에서 줄지어 상소가 올라왔다.
“공신·정부·육조에서 소장을 올려 민무휼·민무회의 죄를 바로잡기를 청한 것이 이미 여러 날이 되었는데 전하가 다만 사사로운 정리로써 유윤을 내리지 않고 형제로 하여금 경기도 전장(田庄)에 평상시와 다름없게 하였습니다. 이는 천지 사이에 용납할 수 없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는 종사(宗社)의 대계를 생각하여 대의로 결단하여 신 들로 하여금 국문하여 죄를 바로잡게 하소서.”
국문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현대적으로 풀이하면 고문을 허락해 달라는 얘기다. 국문이란 말이 심문이지 원하는 답을 받아내는 요식행위이다. 정강이를 때리는 형문에서부터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압슬형에 이르기 까지 피가 튀고 뼈가 으스러지는 형문을 가하면 사육신처럼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 아니고서는 견디어 낼 수 없는 비인간적인 형문이다.
임금과 대간의 힘겨루기가 시작되다
임금은 상소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형조, 사헌부, 사간원 삼성의 대간들이 사직해버렸다. 임금과 신하들의 힘겨루기가 시작된 것이다. 태종은 경기도 관찰사 구종지로 하여금 민무휼 민무회의 귀양지에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도록 명하고 대간들이 출사하기를 종용했다. 이를 지켜보던 조정의 원로 하륜이 편전으로 임금을 찾아왔다.
“여러 번 장소를 올려 민무휼·민무회의 죄를 청하였으나 윤허를 얻지 못하였고 또 대간·형조에서 그 청한 것을 얻지 못하여 모두 사직하였습니다. 법을 집행하는 관원은 하루라도 비울 수 없으니 바라건대 그 청한 것을 윤허하고 명하여 직사에 나오게 하소서. 민무휼·민무회는 죄가 더 클 수 없으니 조선의 신자(臣子)로서 누가 성토하기를 원하지 않겠습니까?”
“대간의 청이 옳지 않은 것은 아니나. 다만 내가 즉시 청단(聽斷)하지는 못하겠다. 이미 밖에 나가 있게 하였으니 더 이상 추죄할 수 없다.”
“대부인께서 민무휼 형제가 있는 해풍에 계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습니다.”
대부인(大夫人)이 귀양지에 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하륜은 아연실색했다. 대부인이 누구인가? 임금님의 장모님이시다. 임금의 장모가 귀양 간 아들과 같이 있다면 이거 보통일이 아니다. 임금이 모르고 있을까봐 귀 뜸해주는 말이다.
“대부인께서 아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자 하므로 내가 뜻을 굽히어 따랐다.”
“대부인이 어찌 한 나라 모의(母儀)의 영화로운 봉양(奉養)을 버리고 도리어 불충한 자식에게로 나아갈 이유가 있겠습니까?”
“대부인이 함께 있고자 하므로 내가 인정에 못 이겨 굳이 말리지 못하고 받들어 보냈다.”
“대부인이 두 아들을 따라서 해풍에 나가 있으면 훗날 사책(史冊)에 대부인이 아들과 죄를 함께 하여 밖에 쫓겨 나가 있다고 할 것이니 청컨대 한양으로 돌아오도록 명하소서.”
“대부인을 아들과 함께 있게 한 것은 과인의 뜻이다.”
하륜은 난감했다. 대부인이 해풍 귀양지에 있는 것은 무언의 시위다. 아들을 애처롭게 생각하는 깊은 모정이지만 ‘아들은 죄 없으니 돌려보내라.’는 항의 표시다. 약자를 동정하는 백성들은 나이 많은 장모를 유배생활 시킨다 할 것이다. 그것을 간과하고 사사로운 정에 이끌려 허락한 임금이 안타까웠다.
군주 앞에서 세 과시는 금물이다
하륜의 소청도 무위로 끝났다. 허탈한 마음으로 하륜이 편전을 물러났다. 거의 동시에 이숙번이 나타났다. 3각의 한 모서리를 점하고 있는 이숙번의 등장이다. 좌하륜 우숙번이라 부르리만큼 태종의 막하다.
하륜이 단기로 들어온 것과는 달리 이숙번은 병조판서 박신, 이조판서 박은, 예조판서 이원을 대동하고 편전으로 들어와 민무휼·민무회의 죄를 청했다. 세 과시다. 그럴만도 하다. 지방의 일개 군사(郡事)에서 병조판서에 이르고 안성군(君)에 진봉했으니 목에 힘줄만하다.
허나 군주 앞에서 세(勢) 과시는 금물이다. 찍힌다. 오늘날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군(郡)에서 군(君)이라? 수직 상승은 수직 추락의 치명적인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을 모르고 날뛰던 민가(家)는 몰락했고 이숙번이 불나방이 되었다. 역시 하륜은 노회하다.
모이면 흩어지고 흩어지면 모이는 것이 세(勢)라 했던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하여 정도전과 방석을 칠 때는 끈끈하게 뭉쳤다. 그러나 태종 이후 차세대 포석에서는 서로의 이해가 엇갈려 흩어졌다. 세력의 속성이다.
차세대를 겨냥한 세력판도에서 양녕을 옹위한 민씨 가문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었다. 무서운 기세로 세력을 넓혀가던 민씨 아성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3각 편대는 때론 공조하고 때론 경쟁하며 불꽃 튀는 접전을 벌였다. 그 회오리의 중심에 풍전등화와도 같은 민무휼 민무회 형제가 있는 것이다.
중심에는 바람이 없다. 고요하다. 하지만 세력균형이 깨지면 강풍이 몰아친다. 걷잡을 수 없는 비바람에 등불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꺼질 수 있다. 그것이 자연의 순리이고 정치의 생리다.
태종 재위 18년 동안 수많은 사건이 있었지만 대체로 예측 가능한 통치행위였다. 허나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음모와 배신, 술수와 책략이 난무하는 가장 드라마틱한 정치의 결정판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 이방원을 알고 싶다면 지금부터 주목해야하고 태종의 왼팔 하륜과 우익 이숙번을 모른다면 눈을 똑바로 뜨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