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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달산성 입구, 좌측으로는 연개소문 촬영장 세트
ⓒ 이기원
아이들과 답사를 떠나는 것엔 특별한 즐거움이 있다. 교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벗어나 역사의 현장을 아이들과 함께 둘러보고 느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답사를 떠나기 전부터 첫 소풍 떠나는 아이처럼 들뜬 마음이 된다.

여름 장마철이라 날씨가 걱정이었는데 출발 무렵 비가 그쳤다. 아이들은 배낭 메고 가방 들고 하나 둘 모여들었다. 녀석들은 날씨가 궂거나 말거나 걱정이 없었다. 학교와 학원을 떠날 수 있다는 게 그냥 좋은 고등학생들, 마음 맞는 친구들과 어울려 여행을 떠날 수 있어 좋은 중학생들, 어려서부터 많은 걸 보여주고 싶은 엄마 아빠의 뜻 따라 참가한 초등학생들은 끼리끼리 옹기종기 모여 도란도란 얘기를 주고받았다.

버스가 출발했다. 구자훈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목걸이용 명찰을 나누어주었다. 황재연 선생님은 1박 2일간 진행될 '남한강 고구려 유적을 찾아서' 답사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다. 오늘은 온달산성과 단양적성비와 적성을 답사할 예정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나누어준 자료집을 뒤적이며 선생님의 설명을 들었다.

▲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가슴 아픈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 사모정
ⓒ 이기원
버스가 강원도를 벗어날 무렵부터 비가 다시 내렸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더니 단양에 들어서니 폭우로 변해버렸다. "이렇게 많이 오면 산성 답사가 어렵지 않겠냐?"며 황재연 선생님이 걱정했다. 일단 온달산성 입구에 가서 상황을 봐서 결정하자고 했다. 길 따라 흐르는 남한강 물이 짙은 황토색으로 변해 우당탕탕 흘러내리고 있었다.

온달산성이 가까워질 무렵 빗줄기가 약해졌다. 다행이다 싶었다. 답사 끝날 때가지만 잘 참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드디어 도착. 버스가 주차하고 아이들과 함께 내렸다. 가는 빗줄기가 우산 없이도 갈만한 정도였다. 그래도 우산 잘 챙겨 가자고 했다. 언제 다시 쏟아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올라가는 길이 꽤 가팔라. 비가 와서 많이 미끄러우니 뛰지 말고 조심해서 올라가."

황재연 선생님이 앞장서 아이들을 이끌고 나는 구자훈 선생님과 함께 맨 뒤에 따라갔다. 더러는 우산 쓰고, 더러는 펴지도 않은 우산 들고, 아이들은 끼리끼리 옹기종기 산성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산성 입구에는 드라마 연개소문 촬영장 세트가 설치되어 있었다. 주로 당나라 성이 많이 보였다. 드라마 세트장이지만 성에 대한 기본적 구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벽돌로 쌓은 당나라 성의 특징과 해자의 모습 등을 설명해주고 온달산성으로 향했다.

예상대로 산성 오르는 길이 만만치 않았다. 빗물에 젖은 데다 진흙까지 묻어 훨씬 미끄러웠다. 얼마 오르지도 않았는데 숨을 헐떡이며 뒤처지는 녀석들이 생겼다. 미끄러운 길 서두르다보면 다칠 수도 있어 천천히 올라가도 된다며 안심시키며 데리고 올라갔다.

비지땀 흘리며 낑낑대는 녀석들 데리고 오르다보니 내 입에서도 단내가 났다. 빗줄기도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오르는 거 포기하고 주저앉아 쉬었으면 하는 눈빛으로 날 쳐다보는 녀석들도 있었다. 운동화도 아닌 샌들 신고 온 녀석들은 더 힘들어했다. 그렇다고 아무데나 철퍼덕 주저앉아 쉴 형편도 못되었다. 어디나 골고루 빗물에 젖어 있었기 때문이다.

▲ 온달과 평강공주의 결혼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황재연 선생님
ⓒ 이기원
"힘들지?"
"네."

"우리 저기서 쉬었다 가자."
"어디요?"

"저기 사모정 보이지?"
"사모정이요?"

"죽은 온달장군의 관이 저기 있었는데 아무리해도 움직이지 않았다고 해. 그래서 평강공주가 와서 쓰다듬어주니 움직였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야."

사모정에는 먼저 올라온 아이들이 올라가 땀을 식히고 있었다. 다 모이자 황재연 선생님이 사모정의 유래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단지 유래에서 그친 게 아니라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결혼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바보였던 온달이 어떻게 공주와 결혼할 수 있었을까요?"

땀을 닦던 녀석들은 눈만 멀뚱거렸다. 황재연 선생님은 온달과 평강공주의 결혼의 가능성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했다.

▲ 온달산성에서 설명을 듣고 있는 아이들
ⓒ 이기원
신분제가 존재하던 삼국시대 전쟁을 주도한 세력은 왕족을 포함한 귀족이었다. 귀족들은 전쟁을 통해 공을 세우고 전쟁으로 거두어들인 전리품을 독점하면서 자신들의 세력을 확대했다. 고구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고구려의 영토가 점점 넓어지고 싸워야할 대상이 점점 많아지면서 귀족들의 힘만 가지고 그 넓은 지역을 지키고 방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신분은 낮지만 뛰어난 전투 능력을 갖춘 인재를 발탁하기 시작했다. 온달은 봄에 거행된 사냥대회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여 평원왕의 눈에 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 뒤로 전쟁에서 탁월한 공을 세워 벼슬과 함께 공주와 결혼하게 된 것이다.

신분이 낮은 온달이 급성장해서 왕의 사위까지 된 것을 귀족들이 달갑게 여길 리가 없었다. 그래서 온달과 평강공주의 결혼을 '바보와 울보의 결혼' 정도로 비하시켰다.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의 결혼과 관련해서 전해지는 전설은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설명을 듣던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설명이 끝난 뒤 간단한 사진을 찍고 산성으로 올라갔다. 비가 사정없이 쏟아졌지만 아이들은 싫다는 내색도 없이 잘도 따라 올라왔다.

더러는 비에 젖고 더러는 땀에 젖은 아이들은 온달산성 위에서 선생님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온달산성은 비안개에 몸을 맡긴 채 답사에 열중인 아이들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 비안개에 몸을 맡기고 말없이 서 있는 온달산성
ⓒ 이기원

덧붙이는 글 | 강원역사교사모임과 원주 YMCA에서 원주지역 초, 중, 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청소년 역사 캠프를 열었습니다. 올해는 남한강 유역 고구려 유적을 찾아서란 주제로 7월 21일부터 22일에 걸쳐 단양, 충주 일대의 유적지를 답사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7월 31일부터 8월 4일까지 진행된 전국 청소년 대상의 만주 고구려 유적 답사와 연결된 프로그램입니다. 이 과정을 기사로 쓸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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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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