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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정글북>의 작가 키플링에 관한 기사를 쓰면서 그가 최초의 영어권 노벨문학상 수상자란 영예와 제국주의 신봉자란 오명을 동시에 지닌 작가임을 알고 당혹스러웠던 적이 있다. 아마 누구나 한번쯤 이런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평소 좋아하던 작가가 알고 보니 친일파였다든지, 존경하던 작가의 정치적 성향을 알고 갈등에 빠진다든지.

그래서일까? 쇼펜하우어는 "독서는 타인에게 자신의 생각을 떠넘기는 행위" "독서를 많이 하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게 된다" "다독(多讀)은 인간의 정신에서 탄력을 빼앗는 일종의 자해(自害)" 등과 같은 말로 독서의 수동성, 타인 의존성을 비판하기도 했다.

쇼펜하우어의 지적처럼 책이든 신문이든 무비판적으로 읽는다면 자칫 주체성을 망각하고 사상이나 의사에 대한 결정권을 작가에게 내맡기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이때 작가와 독자의 관계는 주종 관계와 다를 바 없다. 그러므로 책이나 신문을 읽을 땐 차라리 데카르트와 같은 방법적 회의론자가 되는 편이 더 도움이 된다.

친일이란 꼬리표

키플링에게 "제국주의 옹호자"란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것처럼 이효석이란 이름 뒤엔 항상 "친일파"란 꼬리표가 붙어다닌다. 그로 인해 이효석의 작품을 읽는 독자들은 당혹감과 혼란을 느낄 때가 많다. 친일이란 굴레만 없었다면 한국 문학사에서 누구보다 환하게 빛나는 별로 당당히 자리매김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함께.

이효석도 자신의 처지가 무척 답답했을 것이다. 일제 식민치하의 무기력한 지식인이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죽음 아니면 구차한 삶 뿐이었으므로. 그리하여 그가 결국 의탁한 곳은 "자연과 문학"이었다.

그러나 이런 군색(窘塞)한 선택으로 친일의 굴레를 벗을 수는 없었다. 오히려 훗날 "우리 민족이 가혹하게 탄압받던 일제시대에 현실을 등진 채 꽃을 노래하고 생활의 즐거움을 향유했다"는 비난만 초래했을 뿐이다.

한마디로 그는 시대를 잘못 만난 천재였다. 그가 쓴 수필, 단편소설들이 다루고 있는 궁극의 주제는 아름다움(美)이었다. 자연의 아름다움, 꽃의 아름다움, 생활 속에서 발견한 아름다움, 사랑의 아름다움, 계절의 아름다움….

그러나 일제치하에서 그가 추구했던 아름다움은 현실 도피적이고 고답적인 예술세계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차라리 그가 일제시대가 아닌 요즘 세상에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랬다면 그의 삶과 문학에 대한 평가는 180도 달라졌을 테니까.

이효석 탄생 100주년

ⓒ 예옥출판사
올해는 이효석이 태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이효석의 작품을 읽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비교적 다작(多作)을 했던 작가임을 감안하면 몇몇 작품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에 대한 관심은 지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이효석은 36세란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그가 남긴 수필, 단편소설, 장편소설들은 웬만한 작가가 평생 쓸 분량에 해당할 만큼 많은 편이다. 따라서 이효석의 문학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선 좀더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지엽적이고 단편적인 접근법으로는 "친일"이란 굴레 너머에 위치한 이효석 문학의 본령(本領)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담없는 수필집으로 이효석 문학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 책에 담긴 40여 편의 수필은 간결하고 명징한 문장이 돋보이는 수작들이다. '낙엽을 태우면서' '청포도의 사상' '수선화' '화초' 등과 같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품은 물론이요 다소 생소한 작품들까지 알차게 수록되어 있다. 특히 이효석의 아내 이경원의 산문 2편도 실려 있어 더욱 의미 있다.

덧붙이는 글 | 이효석 산문집 <사랑하는 까닭에>, 예옥, 2007, 228쪽.
가격 9,800원.


사랑하는 까닭에 - 이효석 산문집

이효석 지음, 예옥(2007)


태그:#이효석, #친일, #10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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