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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만은 해가 질 때까지 책을 읽었다. 사방이 트인 병영에서 소리 내어 글을 읽기에는 무안하여 묵독을 하는 바람에 집중이 덜 되긴 했지만 바깥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는 기분은 조유만에게 나쁘지 않았다.

“내 이럴 줄 알았어. 여긴 사냥을 하고 싶어도 사냥감이 없지 않나.”

사냥에서 빈손으로 돌아온 박산흥이 챙겨두었던 꿩고기를 내어놓았고 다른 한량이 술병을 꺼내들었다. 모두가 두어 잔씩 마시면 더 이상 없는 양이었지만 그들로서는 취하기 위해 마신다기 보다는 결의를 다지기 위한 의미로서 술이 필요했다.

“강초관은 안 올 모양이군. 이보게 유만이! 자네도 책만 보지 말고 이리 오게!”

박산흥은 꿩고기를 굽기 좋게 나뭇가지에 끼워 한량들이 죽 모여든 작은 화톳불에 구웠다.

“이 사람들 이제 보니 술 먹을 핑계로 날 부른 것이구만.”

한량들이 돌아보니 강창억이 전립을 차려입은 채 그들을 굽어보고 있었다. 그는 병졸 두 명을 데리고 진영을 순시 중이었다.

“술이라니 무슨 말씀이오. 이건 승리를 위한 보약이외다. 어서 이 잔 받으시오.”

강창억은 한량들의 술판을 더 이상 탓하지 않고 술잔을 받아 단숨에 쭉 들이켰다.

“그래 내게 할 말이라는 게 뭔가?”

박산흥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책을 덮은 채 멍하니 앉아 있는 조유만을 가리켰다.

“저 친구 말이외다. 지금이라도 보내 주실 수는 없겠소이까? 초관께서는 이제 저 친구의 앞뒤 사정을 잘 알게 되었으니 드리는 말씀이외다.”

강창억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 되네.”

“그렇게 아니 될 것도 없지 않소?”

강창억은 쭈그리고 앉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들은 저자거리에 소문이 자자한 협객들이니 친구를 위하는 마음이 극진한 것은 이해 할 수 있네. 허나 아니 되는 이유가 있네.”

“그게 무엇이오?”

한량중 하나가 참을성 없이 다시 물어보자 박산흥이 그의 입을 막았다. 강창억은 그런 한량들의 태도에 신경 쓰지 않고 다시 일어나 말했다.

“내가 얘기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네. 내일은 힘든 하루가 될 터이니 일찍 자두게나.”

강창억이 간 후 여전히 눈치를 채지 못한 한량이 박산흥에게 물었다.

“저게 무슨 소리인가?”

“몰라서 묻나? 왜군이 상주에 있지 않고 이미 조령을 넘어섰다는 말이 정말인가 보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나아갈 수도 물러 설 수도 없는 곳에 들어선 셈이야.”

멀리서 한량들의 말을 듣고 있던 조유만은 조용히 다가와 빈 술잔을 들었다.

“한 잔 주게나.”

“허! 이 친구 마음에 심란한 건 알겠네만 이건 독한 술이네.”

조유만의 주량을 아는 박산흥이 술잔을 빼앗으려 했지만 다른 한량이 술병을 들어 재빨리 조유만의 잔을 가득 채워 주었다.

“자네말대로 신나게 말을 달려 싸워서 이기면 되는 거 아닌가. 싸워서 이긴 후 당당히 고향으로 가는 걸세. 혹시 아나? 성균관 유생이 전공을 세워 벼슬을 받는다면 이는 전례에 없는 일이니 내 이름 석자가 집안 대대로 전해질지도 모를 일이지.”

말을 마친 후 조유만은 술잔을 들어 박산흥과 한량들을 한번씩 둘러 본 후에 술을 죽 들이켜 목안으로 털어 넣었다. 잠시 후 조유만의 정신은 조금씩 가물가물 해지기 시작했다.

“이보게 괜찮은 건가?”

조유만은 술 한 잔에 빙글빙글 도는 정신을 가누며 벌떡 일어나서 크게 소리쳤다.

“아무렴 싸워서 이겨 살아 돌아가면 되는 거 아닌가! 성균관 샌님이라고 깔보지 말게나!”

“어허! 이 친구 이러다가 일내겠구먼!”

조유만은 손을 들어 괜찮다는 뜻을 전하려 했지만 그의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마침내 조유만은 그 자리에 스르르 엎어져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덧붙이는 글 | 1. 두레마을 공방전
2. 남부여의 노래
3. 흥화진의 별
4. 탄금대
5. 사랑, 진주를 찾아서
6. 우금치의 귀신
7. 쿠데타


#연재소설#결전#최항기#탄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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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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