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준(68).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확정되는 날(20일), 그를 찾아갔다.
YS(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공보수석과 환경부 장관을 지내고, 이회창 총재 시절엔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장을 지냈다. '선거기획통' '전략가'로 꼽히는 그는 지난 두 번의 총선을 진두지휘했다. 특히 2000년 16대 총선에서 이회창 총재를 설득해 당의 양대 세력(김윤환, 이기택)을 쳐서, '대학살'이라 불릴 정도의 개혁 공천을 이끌어 낸 장본인이다.
17대 총선에선 선대부본부장을 맡아 박근혜 대표와 함께 탄핵 역풍 속에서 선승을 이끌어냈다. 그런 뒤 그는 한나라당을 떠났다. 당직은 물론, 당원 자격도 스스로 버렸다. 그래도 여전히 그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 주로 정치인, 학자, 기자들이다. 그의 '감각'이 아직 살아 있기 때문이다.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의 선대본부장을 맡았고, 또 이번 경선에서 이명박, 박근혜 캠프 양측에서 '러브콜'을 받았지만 고사했다.
그는 자신의 정치노선에 대해 '진보적 보수주의자'라고 말한다. 이젠 보수도 평등, 분배와 같은 진보의 가치를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 보수를 향해 '혁신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아직 자신이 지지할만한 후보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손학규 전 지사에게 기대를 걸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단지 한나라당을 탈당해서가 아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실망이다.
그는 최근 '윤여준의 정치까페'(www.yooncafe.com)를 개설했다. 참신한 글이 많다.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 후보가 내놓은 '베이비 박스 의무공급' '가계부 혁명 정책 추진' '여성 큰 옷 제작 판매 의무화' 같은 생활밀착형 공약을 호평하며 정치권을 향해 "째째한 공약을 내놓으라"고 주문한다. 그런 점에서 그는 실용주의자다.
또한 히말라야 올랐다가 후배 동료와 '끈' 하나로 연결된 채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산악인 박정헌씨의 감동스토리를 전하며 이명박, 박근혜를 질타했다.
정치까페를 연 이유를 물었다. 공적 발언을 삼가온 그였다.
"지난 3년 동안 사생활 중심으로 살면서 젊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기회가 많았다. 주로 대학생, 30대, 40대 초반이었다. 자신의 장래를 암담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현실정치에 대해선 냉소적이고 비판적이었다. 이들을 이대로 두면 한국사회가 활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다. 그래도 IMF 때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지금은 공중에 뜬 비행기 같다.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다. 이대로 추락하면 회복이 어렵다. 위기다. 소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진보적 보수주의자"
이날 한나라당의 당선자 발표는 오후 4시 30분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오후 3시가 조금 안돼 여의도에 있는 그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한나라당의 후보가 확정되는 순간을 함께 지켜보며 그의 현장감 있는 해설을 듣고 싶었다.
이미 당락은 드러나고 있었다. 오후 3시가 지나자 여기저기서 그에게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이명박의 당선 배경을 묻는 기자들, 경선 이후를 염려하는 정치인들이었다. 인터넷 뉴스로 전해지는 개표 결과, 이어지는 박관용 경선관리위원장의 당선자 발표, 이명박·박근혜 두 후보의 수락연설까지 윤여준과 함께 했던 2시간을 공개한다.
#1. 오후 3시
인터뷰를 막 시작하려는 데 그의 핸드폰이 울린다. 모 언론사 기자란다.
"이명박씨가 기업하던 사람이니까 현실에 적응하는 능력은 있지 않겠나. 국민이 CEO형 리더를 원한다는 얘기도 있지만 나는 찬성하지 않는다. CEO는 사익을 극대화 하는 사람이다. 생산성과 효율성을 따진다. 하지만 국정은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다. 경제대통령이 먹히는 건 도덕성만 앞세우는 무능한 정권에 대한 반응이다. 그리고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이기려면 고정지지층만으로는 안된다. 플러스알파가 있어야 하는데 이명박이 중간지대를 유인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조선닷컴>에 '이명박 1832표 차로 박근혜 눌러'라는 기사가 떴다.
"개표가 끝났나? 1832표? 야아… 그 정도 차이로? 그럼 몇 % 차이지? 1% 조금 넘네. 박빙이다. 왜 이런 현상이 왔냐면 보통 선거란 게 투표 일주일 전이면 표 쏠림 현상이 생긴다. 아무개가 도저히 안 되겠구나 하는 판단이 서면 이기는 쪽으로 표가 쏠린다. 그 타이밍에 딱 도곡동 땅이 터진 거다. 결정적으로 쏠림현상을 막아준 거다."
- 시간이 좀더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그거 보면 검찰이 애매한 표현으로 그 타이밍에… 누가 머리를 썼다 말이지."
- 검찰이?
"뭐 검찰인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타이밍상으로 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근데 저거 후유증이 심하겠다. 오래 가겠다. 박근혜가 승복하려고 하겠나?"
- 이명박에게 문제가 더 터지면 '후보 교체론'이 나올 수 있다?
"금방 나오지."
- 법적으로 가능한가.
"(이명박) 본인이 스스로 사퇴한다면."
- 이명박 승리를 예상했나.
"박빙일 거라 봤다. 이명박 지지자들이 막판에 흔들렸다. '안되겠는데? 너무 지나친 게 아니야? 시장 재임 중에 그러는 건 심하지 않나? 이런 사람이 권력자가 되면 어떻겠어?' 그런 얘기가 나오는 걸 보면서 의외로 이명박의 지지층에 동요가 오겠구나 싶었다. 그렇다고 해도 박근혜가 열세를 우세로 가져가기엔 쉽지 않았다. 잘못한 게 있다. 네거티브를 세게 하면 상대에게 상처를 입힐 순 있지만 자기 쪽으로는 절대 오지 않는다. 같이 포지티브를 열심히 했어야 했다."
- 원칙과 정직 이미지를 강조하지 않았나.
"그런 이미지가 많이 깨졌다. 자기가 그 중심에 서지 않았나. 상당히 진솔하고 품위 있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아주 독하네, 표독스럽고. 평상시 박근혜 이미지는 많이 사라졌다. 박근혜도 이번에 상처 많이 받았다. 구체적으로 국민에게 희망이 되는 정책을 내놨어야 하는데…. 그런 건 금방 안나오지. 그냥 대선 레이스에 뛰어든 것 아닌가 싶어."
- 당 대표로 있으면서 사실상의 대선 행보를 해왔는데.
"나도 그게 불가사의하다. 정책이 무슨 표에 도움이 되냐 하는 인식이 있다. 당심만으로는 안되는데. 절망감에 빠져 있는 사람들과 자식세대에게 희망을 주는 일을 했어야지."
- 줄푸세(세금 '줄'이고 규제 '풀'고 법질서 '세'우자) 공약이 어필하지 못했나.
"전혀."
- 열차페리는.
"에이 그런 게 뭐."
- 그외 기억나는 공약은.
"없어요. 아무것도. 이명박쪽도 한 게 없는데 우세하니까 네거티브를 방어하는 쪽이었지."
- 이기더라도 '어떻게' 이기느냐가 관건이었는데 이정도 결과라면 상당히 암울하지 않나.
"투표율에서 이명박이 손해를 봤을 수 있다. 조직 말단의 세포들이 지지자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내는데 소홀했을 수 있다."
- 부정선거 시비가 있을 수 있을까.
"글쎄. 법정까지 갈 꺼리가 있나. 당이 관리했다면 굉장히 시끄러웠겠지만 중앙선관위가 했기 때문에 공정성 시비는 어렵지 않겠나."
- 정권교체를 위해 양 진영이 단합할 수 있을까.
"예측이 쉽지 않다. 우선 진 쪽을 어떻게 할 것인가 중요한데 경선 과정을 보면 감정의 골이 워낙 깊어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박근혜, 포지티브도 열심히 했더라면"
#2. 오후 3시 28분
한나라당 한 당직자의 전화다.
"당에 일하는 친구인데 이명박이 졌다는데? 여론조사로 이겼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명박의 조직이 얼마나 엉성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라고 말하네. 1998년 전당대회, 이회창 총재가 (당 대표) 선거에 나갔을 때 보니까 조직이란 게 참 모르는 거다. 국회의원, 지구당위원장이 압도적으로 많으면 다 된 것이라고 후보는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그 때 총재에게 내가 그랬다. '지금 이대로 가면 큰일 난다. 지금 경쟁자는 땅 밑을 파고 있다. 이러고 있다간 땅이 무너진다.' 총재는 '위원장들이 다 괜찮다고 하는데?' 그러더라. 내가 '대의원들 성분표 가지고 있냐'고 물었죠. 당연히 없지. 그 뒤 내가 조직을 맡아서 직접 사람들을 내려 보내 지역별로 대의원 성분을 조사했다. 그 결과를 총재에게 가져다주니까 얼굴이 하얘지더라."
#오후 3시 35분
또 전화다. 이명박·박근혜 양쪽 어디에도 줄서지 않은 '중심모임' 소속 의원이란다.
"걱정이 태산 같다. '아주 큰일입니다. 당이 온전하게 가겠습니까?' 그러네. 본선 역량이 (내부) 싸움으로 분산되면 아주 어려워지는데."
- 지금 당에 완충지대가 없죠. 원로도 줄을 섰고. 중심모임 소속 의원은 10명 정도.
"없죠."
- 이러다가 이회창 전 총재가 중재자로 나서는 것 아닌가.
"총재가 중재를? 어떻게? 저건 중재할 성격의 것이 아니다."
- '이회창 역할론'이 있다고 보나.
"당직을 맡거나 당무를 하는 협의의 정치 개념으로 보면, 글쎄 잘 모르겠다. 당도 그렇고 여론도 그렇고 쉽지 않은 상황 아닌가."
의원들의 태산 같은 걱정 "당이 온전히 가겠나?"
- 박근혜 지지층의 결속력은 상당하다.
"상대적으로 이명박의 응집력은 약하다. 박근혜는 확실한 18%의 지지층을 가지고 있다. 전부터 그랬다. 대한민국 정치인 중에 유일한 사람이다. 지역, 연령, 세태에 관계없이 지지가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
- 분명한 비토층도 있지 않나.
"그렇다. 그게 상당히 어려운 거다. 경선에서는 강점이지만 본선에서는 약점이다."
- 이명박 캠프의 규모는 메머드급인데.
"현장에서 그들의 행태를 유심히 봐야 된다. 열성적이지 않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동원되었으니까."
- 이명박은 당심보다 민심 아닌가.
"당내에선 아직 취약하다. 박근혜는 2년 동안 대표를 했다. 이명박이 민심으로 당심을 어떻게 해보려고 했는데 그게 센 네거티브로 힘들어졌다. 예상한 것만큼 지지율이 안 오르니까 당심에 영향을 덜 준거다."
- 여권에선 오히려 박근혜 보다 이명박이 상대하기 낫다는 얘기가 나온다.
"여권이 그렇게 봤다면 반대로 봐야지. 이명박이 후보가 안 되길 바라는 거니까."
- 앞으로 이명박의 전략은.
"근소하게 진 거면 당을 추스르는 게 급선무다. 선거는 당을 기반으로 치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칫 당심을 따르다가 민심에서 멀어질 수 있다. 당심은 늘 민심과 거리가 있어왔다. 딜레마다. 당심을 다지면서 어떻게 민심을 얻느냐! 상당히 정교하고 섬세한 전략이 필요하다. 쉽지 않을 것이다. 여권이 그걸 노릴 거고."
- 내년 총선의 이해관계가 겹치는데 물리적으로 화합이 불가능하지 않나.
"이긴 쪽에서 선언해야지. 이긴 쪽이든, 진 쪽이든 공천의 유불리는 없다고. 공천 심사는 객관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 당 혁신도 필요할까.
"지금까지 이 총재도, 박 대표 시절에도 혁신위원회 두고 온갖 혁신안을 내놓지 않았나. 별로 의미 없다. 국민이 감동 하겠나. 또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당을 혁신한다고 당에 큰 긴장이 온다. 지금까지 당을 이끈 것은 박근혜인데 잘못되었다고 바꾸면 지지자들이 가만히 있겠나. 당이 시끄러워진다. 그럼 대선 전력이 약해지니 함부로 못한다고."
- 이명박의 태도가 아주 공평무사해야겠다.
"물론. 국민을 바라보고 가는 수밖에 없다. 당을 어떻게 설득해 내느냐, 설득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국민과 함께 당의 변화를 이끌어내느냐가 관건이다."
"이명박, 국민 바라보며 당 설득해야"
- 박근혜가 제3의 후보를 지지할 가능성은.
"모든 가능성이 다 있다. 앞으로 갈등요인이 많을 거다. 가령 당직 비율도 5 대 5로 하자 그럴 거고. 진 쪽에서 응분의 보상을 받지 못했다고 판단하고, 불만이 생기면… 내가 여권의 전략가라면… 이건 상상이다(웃음). 박근혜를 유혹하겠다. 선거의 기본 구도는 나는 연대, 상대방은 분열이다. 자기들은 오만 쇼를 하면서 연대, 통합을 하면서 이쪽은 갈려 놓으려는 게 예상되는 (범여권의) 전략이다. DJ(김대중 전 대통령) 선생님이 왜 양자 구도를 만들려고 하겠나. 양자 구도가 되면 균형 심리가 생겨서 격차가 줄어든다. 그럼 캠페인 능력이 중요해 진다. 그건 자기들이 낫다고 판단하는 거다. 또 여권이기 때문에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이 있다.
호남의 절대지지 속에 비호남 출신의 후보로 호남의 절대지지 속에 서부벨트를 묶는다. 수도권은 반분이라고 보고, 영남에서 20% 이상 가져오면 이긴다고 보는 거다. 어떻게? 카드를 써야지. 빤하다. 박근혜가 나간다고 치자. 명분이 생겨서 나가는 상황을 가정해 보면, 내가 DJ라면 박근혜에게 '영호남 지역 화합과 산업화, 민주화 세력의 화해를 통해서 민족화해협력, 평화통일로 나가자. 그럴 정치인은 당신 밖에 더 있냐' 그러면 마음이 안 흔들리겠나. 이보다 더 좋은 명분이 어디에 있나."
- 나라면 흔들릴 것 같다(웃음).
"나 같으면 그렇게 꼬시겠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 모르지만, 박 대표가 들으면 화낼지 모르지만 내가 여권의 전략가라면 해보겠다."
- 단지 선거공약이 아닌 시대적 명분을 깔고 있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나는 여권이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킬 것이라고 봤다. 선거 그 자체에는 영향을 미치지는 않겠지만 기폭제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후속조치까지 취한다면 분위기와 형태는 만들 수 있다. 그런 뒤에 딱 때리면? 범여권이 낙승할 것이라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물론 한나라당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많은 궁리를 해야 된다."
#오후 4시 30분
인터넷 생중계창에서 팡파르가 퍼졌다. 박관용 위원장이 나와서 개표결과를 발표했다. 최종 2452표차다. 1.5%. 이명박 후보가 한나라당 제17대 대통령 후보로 공식 선포되었다. 우리는 이명박과 박근혜의 수락연설을 기다렸다. 윤여준 전 의원은 "박근혜 연설이 더 관심거리지"라고 말한다.
이명박의 연설이 시작되었다.
- 목소리 톤과 발음이 호소력이 떨어진다.
"사실 오디오, 비디오 다 안 되죠(웃음). 박근혜는 원래 모노톤이었다. 고조와 장단이 없어서 굉장히 지루했다. 그런데 요즘은 바꾼 모양이더라. 잘한다."
- 연설에서 '통합'과 '경제'를 강조하고 있다.
"경제로 국민이 불행하고, 통합은 시대적 요청이니까."
- 이명박·박근혜 둘 중에 어떤 후보가 한나라당의 정권재창출에 낫다고 보나.
"박근혜는 본선이 굉장히 힘든 후보다. 선거구도가 아주 고약해 진다. 상속적 권력의 성격 때문에 여권에서 구도를 만들기 아주 쉽다. 이명박은 비리가 많이 나왔지만 선거구도로만 보면 여권 상대하기가 수월하다. 박근혜가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은 역사적 인물이 되었으니 역사적 평가에 딱 맡겨버리면 되는데. 그리고 '저는 새로운 리더십으로 가겠습니다' 해야 하는데 자꾸 아버지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는 건 문제다."
- 본인의 '신념'인 것 같더라.
"딸로서 아버지를 부정하라는 게 아니지 않나. 대통령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다르지 않나. 경선 전략을 왜 그렇게 가져갔는지 모르겠다."
'백의종군' 뒤에 숨은 무서운 뜻
박근혜 연설이 시작됐다. 박 후보가 "오늘부터 저는 당원의 본분으로 돌아가 정권교체를 이루기 위해 백의종군 하겠다"고 말하는 순간, 윤 전 의원은 딱 한 마디를 집어냈다.
"백의종군이라고 하잖아. 선대위원장 안 받겠다는 거 아냐. 저게 '야마'야. 백의종군!"
그러고 나서도 박근혜의 연설은 끝까지, 집중해서 듣는다.
"백의종군하겠다는 게 핵심이야. 다른 건 수사야. 며칠 전에 이명박이 선대위원장 맡아달라고 했던데 사실상 거부한 거다."
- 박근혜 오늘 연설 좋네요. 깨끗하게 승복하는 모습도.
"박근혜가 정치인 중에 참 진솔한 사람이다. 지난 17대 총선 치르면서 곁에서 지켜봤는데 개인적인 자질은 출중하다. 한국 정치인이 갖지 못한 좋은 자질을 가지고 있다."
- 그런데 아버지 부분이 아킬레스건?
"30, 40대랑 얘기하다 보면 박근혜가 어떤 사람이든 나는 지지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왜? 어떻게 유신의 후예를 지지할 수 있냐는 거다. 그 때 학교 다닌 사람들은 그게 안 되는거다. 박근혜에겐 부담이 큰 문제다. 아버지를 극복하는 리더십을 보여야 하는데. 나이든 분들에겐 호소력이 있을지 몰라도 젊은이들은 아니다."
- 박근혜 보다 이명박이 낫다고 보나.
"기본 요건이 유리하다. 절대 비토층이 없으니까."
- 당 수습이 급선무겠다.
"쉽지 않을 것이다. 하루 빨리 안정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후보의 리더십이 흔들린다. 국민을 기준에 두고 외연을 확대하는 길로 가야 한다."
- '이명박, 박근혜로는 안 되겠다'면서 제3지대 보수신당 얘기도 나온다. 영남에선 이수성씨가 움직인다는데.
"이수성이 영남 신당의 구심이 되나? 영남에 물어봐라. 경선에서 둘이 하도 싸우니까 둘만 믿고 있다가는 우리만 망하겠다 싶어서 대안을 찾아보자는 건데. 실제 그런 움직임이 있는 걸로 아는데 지금 상황에선 폭발력을 가지기 어렵다. 국민적 지지를 받을 여건은 아니다."
- 손학규에 대한 기대는 완전히 접었나.
"자기 정체성을 자기가 부정했다. 자기 분열이다."
- 한나라당을 탈당했기 때문인가.
"탈당할 때까지만 해도 이해는 하려고 했다. 문제는 그 뒤의 행동이다. 대통령이 된들 뭣하겠나."
그는 손학규 후보가 설훈 전 민주당 의원을 캠프 참모로 들인다는 소식을 듣고 긴급기자회견을 열었었다. 설 전 의원은 대선을 앞둔 2002년 4월 최규선씨가 이회창 전 총재에게 전달해 달라며 윤여준 전 의원에게 20만 달러를 줬다고 폭로했다가 허위 사실 유포 등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바 있다.
- 다른 누구 점찍은 사람은 없나.
"거의 못봤다."
- 이번 대선은 어떻게 보낼 셈인가.
"조용히 보내다가 한 표 찍으면 되지 않겠나."
- 이명박 캠프에서 요청이 오면.
"가장 유력한 후보가 도와달라고 하는데 가볍게 생각할 수는 없다. 나는 양쪽 참모들과 다 가깝다. 경선 때는 도와달라고 했지만 안한다고 했다. 경선 끝나면 도와달라고 했는데 '그 때 봅시다'라고 말하고 말았다."
"이제 시작이다"
# 오후 4시 47분
또 전화다. 이번엔 부산의 모 교수라고 한다.
"박 대표가 승복한다고 합디다. 아주 깨끗하던데? 여자가 남자보다 낫다.(웃음)"
오후 5시경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기사에 참조하라며 데스크가 토스한 정보다. 박근혜 캠프의 한 핵심 참모와 전화통화로 나눈 대화라면서 전해준다. 딱 세 마디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철저하게 (이명박을) 도와 줄 거다."
"그런데 이명박 (스스로) 못 버틸 거다."
범여권의 검증 공세에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얼마나 버틸 수 있겠냐는 시각이다. 박근혜쪽의 '무서운 협력'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