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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의 북극해 국기 이벤트에 동원된 쇄빙선 '로시야호'
ⓒ 러시아정부
마치 1969년 아폴로 우주선의 달 착륙 장면을 다시 보는 듯 했다.

핵추진 쇄빙선 로시야호를 앞세워 1~2미터 두께의 얼음판 수천Km를 깨뜨리며 북극점에 도달한 러시아 탐사대는 4천미터 깊이의 심해에 잠수정 2대를 내려 보냈다. 해저 샘플 채취를 마친 탐사대는 이윽고 티타늄으로 제작된 러시아 국기를 해저의 북극점에 고정시켰다.

지난 8월 2일 섭씨 영하 40도 혹한의 북극점 한 가운데서 벌어진 일이다.

▲ 북극권. 빨간선으로 표시된 구역이 현재의 결빙 지역
ⓒ USGS
도발에 가까운 러시아의 깜짝쇼에 북극해의 주변국들은 허를 찔렸다는 반응이다. 북극해를 둘러싼 영토분쟁에 얽힌 당사국은 러시아 외에 캐나다, 미국, 덴마크, 노르웨이 등 총 다섯 개 국가.

러시아의 이번 이벤트를 단순히 상징적인 깜짝쇼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은 북극해가 석유자원의 보고로서 그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컨설팅 업체 우드 맥킨지는 최근 보고서에서 전 세계 원유 및 가스 매장량의 25%가 북극해에 묻혀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곳에 현재 확인된 매장량만 2330억 배럴에 달하고 추가로 1660억 배럴이 발견될 것으로 보인다는 것.

물론 만년빙과 영하 40도를 밑도는 혹한 탓에 지금까지는 감히 북극해 개발에 나서려는 나라가 없었다.

오일 메이저들의 계산에 따르면 북극해의 석유채굴단가는 멕시코만에 비해 무려 5배 이상 높다.

하지만 지구온난화가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오일 메이저들의 계산법은 이제 서서히 달라지고 있다. 북극해의 만년빙이 급속하게 녹아내리면서 시추선의 접근이 갈수록 용이해지고 있기 때문.

우드 맥킨지는 지금과 같은 속도로 지구 온난화가 진행될 경우 "금세기 말까지 북극해의 항해 가능일수가 현재의 20~30일에서 120일로 늘어날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북극해의 석유탐사 및 채굴비용도 획기적으로 낮아진다는 것.

도이치방크의 에너지문제 전문가 아담 시민스키는 "유가가 배럴 당 20달러라면 북극해 석유개발의 경제적 타당성이 없지만 배럴당 50달러에 육박한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고 지적한다.

북극해가 해빙되면 러시아만 횡재?

한편으로 오일 메이저들이 북극해에 눈독을 들이는 지금의 상황은 환경보호단체 입장에서 보면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들이 지금 북극해에서 석유를 개발할 엄두를 낼 수 있게 된 것은 순전히 온실가스로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서 북극해의 만년빙이 녹아내리고 있기 때문.

환경전문 뉴스사이트 'ENS'는 "북극해 자원개발에 큰 이해관계가 걸린 러시아 경제인들이 심지어 지구온난화를 은근히 반기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러시아로서는 숙원인 부동항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

북극해가 해빙되면 러시아는 석유 외에도 태평양과 대서양을 직결하는 '북서 통항로'라는 또 하나의 횡재를 얻게 된다.

북극해가 열리면 한국, 일본 등 극동지역에서 출항하는 상선은 태평양 대신 '북서 통항로'를 거쳐 바로 북유럽으로 항해할 수 있다. 이 경우 기존 항로에 비해 1/3 가량 항해 일수를 줄일 수 있다는 것.

'유엔해양법조약'은 대륙에서 뻗어나간 해저 대륙붕 역시 영토로 인정하고 있다. 이를 의식한 러시아는 100여명의 과학자를 동원 북극해의 약 1995Km에 달하는 로모노소프 해령이 러시아에서 뻗어나간 것임을 입증하려 하고 있다.

석유개발권과 북서통항로 관할권이라는 어마어마한 이권이 걸린 북극해 영유권을 러시아가 독차지하도록 주변국가들이 호락호락 두고 볼 리가 없다.

캐나다가 70억 달러를 투입해 8척의 북극해 순시선을 건조하는 등 영유권 사수에 나설 예정이고, 미 의회 역시 3척의 쇄빙선 운영비를 포함 87억 달러 규모의 예산을 편성해 해안경비대를 지원할 계획이다. 덴마크와 캐나다는 또 북극해의 작은 바위섬인 '한스'를 두고 몇 년 전부터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북극해 주변국의 영유권 분쟁이 자칫 무력충돌로까지 번질 수도 있다며 우려하고 있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궁극적으로 유엔산하 국제기구의 중재를 통해 북극해 영유권 분쟁이 조정될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급속하게 진행되는 지구온난화를 결국 막을 수 없다면 한 세기 후 우리의 후손들은 지금 우리가 아는 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지도를 갖게 될 전망이다. 21세기 말이면 북극해가 태평양과 대서양을 제치고 세계의 주요 통상로로 부상할 것이 분명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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