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4월 9일 이른바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원회 사건 관련자 8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도예종 여정남 김용원 이수병 하재완 서도원 송상진 우홍선. 전날 사형 선고가 확정된 뒤 불과 18시간밖에 지나지 않아서였다. 유신정권은 그들이 북한 노선에 따라 움직였던 '빨갱이들'이라고 강변했지만 당시 국제법학자협회는 이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규정했다.
그로부터 27년이 지난 2002년 9월 의문사진상조사위는 "인혁당 사건은 중앙정보부의 조작이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올해 1월 8명은 32년만의 재심에서 무죄선고를 받았고, 또 지난 21일 국가가 유족들에게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판결문의 일부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국가는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해 국민 개개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할 임무가 있는데도 오히려 국가권력을 이용해 사회 불순세력으로 몰아 소중한 생명을 빼앗음으로써 8명 및 그 가족들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엄청난 고통을 줬다."
1975년 당시의 '국가'는 그랬다. 사법의 이름으로 살인조차 서슴지 않았다. 인혁당 사건 재판과정은 '사법살인'을 위한 한 편의 연극이었다.
이제 젊은 연극인들이 그때 그 사건 그 사람들의 얘기를 진짜 연극, 정확히는 뮤지컬로 재구성해 무대에 올린다. 극단 락성의 뮤지컬 <4월 9일 죽은 자들의 기록>(연출 최현우ㆍ이하 4월 9일). 8월 24일-26일 사흘간 대학로 마로니에극장에서 공연한다.
락성은 계원예고 연극영화과 졸업생들이 주축이 된, 올해로 창단 3년째를 맞는 젊은 극단이다. 극단원 모두가 갓 스물을 넘겼다. 당연히 모두 인혁당 사건 이후 10여년이 지나 태어났다. 부모님 세대 얘기라 부담감이 큰 게 사실이다. 하지만 TV에서 우연히 인혁당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고 우리의 비뚤어진 과거사를 같은 세대들에게 바로 알리고 싶다는 열정으로 직접 대본을 쓰고 노래를 만들었다.
뮤지컬 <4월 9일>은 재심공판을 시작으로 당시의 재판이야기와 한 가족의 사연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기획 조재희씨는 "소재는 무겁지만 젊은 감각으로 무대를 채우기 위해 노력했다"며 "이번 무대가 조금이나마 인혁당 사건을 기리고 피해자들과 아픔을 공유하고 진한 여운을 가지고 갈 수 있는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뮤지컬 <4월 9일>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천주교 인권위원회 등에서 후원한다. 토요일(25일) 공연 때는 인혁당 사건 유족들도 단체 관람할 예정이다. 관람료는 전석 1만원. 예매는 인터넷 티켓박스(www.ticket-box.com)에서 할 수 있다.
한편 인혁당 사건은 이미 몇 차례 걸쳐 연극으로 다뤄진 바 있다. 가장 먼저 1988년 극단 연우무대가 사건 당시 각종 기록들을 바탕으로 연극 <4월 9일>을 연우소극장 무대에 올렸다. 지난해 4월에는 광주극단 토박이가 <장미여관 208호>를, 올해 6월에는 대구극단 '하늘과 꿈'이 <심연>을 각각 공연하기도 했다.